“생성형 AI가 외모-목소리 도용” 제작사에 ‘디지털 초상권’ 보장 요구 넷플릭스 등 수익 배분 확대도 쟁점… 맷 데이먼 등 주요 배우들 동참 영화 제작 멈춰 5조원 손실 예상
미국 할리우드 배우들이 미국작가조합과 동반 총파업을 하겠다고 밝힌 13일(현지시간) 작가조합 조합원들이 미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 위치한 넷플릭스 스튜디오 앞에서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다. 로스앤젤레스=AP 뉴시스
배우들이 작가들과 동반 파업에 나서게 된 1차적인 이유는 재상영분배금과 기본급 인상이다. 넷플릭스·디즈니·아마존 등 OTT 스트리밍 시대가 도래하면서 이들 대형 플랫폼의 수익이 커지고 있지만 대형 제작사들이 과실을 독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생성형 AI 도입에 따른 배우와 제작자 간 갈등이 핵심 뇌관으로 떠오르고 있다. 배우들은 AI가 생성하는 이미지에 자신들의 외모나 목소리가 무단으로 도용될 가능성이 있다며 ‘디지털 초상권’을 보장해줄 것을 요구했으나 제작자 측은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 “AI 대책 마련하고 재상영분배금 인상해야”
AI 관련 협상도 입장 차가 크다. 제작자연맹은 “배우의 디지털 초상권을 보호하는 획기적인 대안을 제시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배우조합은 “제작자 측 AI 제안서에는 연기자들이 하루 일당만 받고 촬영을 하면, 그 이미지를 회사가 소유한 상태로 배우들의 동의나 보상 없이 영원히 사용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고 반박한다.
서로 다른 영상이나 이미지를 합성하는 딥페이크 기술 또한 중대한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해 10월에는 러시아의 한 기업이 배우 브루스 윌리스의 동의 없이 그의 얼굴을 합성한 딥페이크 영상으로 광고를 만들었다가 물의를 빚기도 했다.
영화·방송작가들은 공들여 쓴 대본이 챗GPT를 통해 순식간에 만들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챗GPT가 기존 내용을 짜깁기해 작가들의 지식재산권이 침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부 제작사들이 AI를 활용해 대본 초안을 만든 뒤 작가에게 저임금으로 각색을 맡기는 사례도 있다.
제작 현장에 AI가 도입되면서 상당수 스태프들도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특수효과나 비용 절감 등에서 AI는 이미 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다”며 “할리우드의 많은 기업이 영화 자막에 AI 툴을 사용하고 있으며, 그 시장 규모가 26억 달러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 할리우드 제작 멈춰 5조 원 손실 예상
CNN은 이번 동반 파업으로 할리우드에서 진행 중인 대다수의 영화와 방송 프로그램 제작이 중단돼 40억 달러(약 5조 원)의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배우들의 파업 동참으로 주연 배우들이 촬영이 완료된 영화 시사회에 참석하지 않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13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영화 ‘오펜하이머’ 시사회에선 맷 데이먼, 에밀리 블런트 등 배우들이 사진만 찍고 시사회장을 떠나기도 했다. 맷 데이먼은 “우리는 배우들이 공정한 협상을 이뤄낼 수 있을 때까지 강하게 버텨야 한다”고 공개 발언하는 등 유명 배우들의 파업 지지 선언도 이어지고 있다.작가조합이 5월 파업을 시작한 이후 미국 TV 심야 토크쇼 역시 과거 프로그램만 재방송 중이었는데 배우들까지 파업에 가세하며 방송·케이블 채널도 비상 상황을 맞게 될 것으로 보인다.
미 배우방송인조합과 작가조합이 마지막으로 함께 총파업을 한 것은 1960년이다. 텔레비전 산업 초창기였던 당시 파업에서 작가들과 배우들은 TV에서 영화 재상영 시 보상 문제를 놓고 방송국과 씨름을 벌였다. 파업 결과 배우들과 작가들은 영화 및 TV 프로그램의 재방송에 관한 수수료를 보장받게 됐으며 연금 등 복지 혜택도 받게 됐다. 당시 영화배우로 활동하며 SAG 위원장을 맡았던 레이건 전 대통령은 이 파업을 계기로 정계에 진출해 1967년부터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지냈고, 이후 1981년 대통령에 당선됐다.
1980년에도 할리우드 배우들이 총파업에 나선 적이 있다. 당시 비디오 및 유료 텔레비전 채널 등의 확산으로 집에서 즐기는 방식으로 소비 행태가 바뀌자 배우방송인조합은 제작사, 방송국 등이 독점하던 수익을 배우 및 방송인들에게도 분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파업으로 당시 대다수의 영화, TV 프로그램 제작이 중단됐으며 수많은 영화 개봉이 미뤄졌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