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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병력 감축 나선 美 해병대… 미국 의존해온 한국 해병대 위기

입력 | 2023-07-15 10:46:00

美 대형 수송함 등 기동자산 감축… 韓 해병대 독자적 상륙 역량 갖춰야




3월 29일 경북 포항시 앞바다에서 한미 해병대가 연합 상륙훈련 ‘쌍룡훈련’을 하고 있다. [뉴스1]

대한민국 해병대는 미국, 중국, 러시아에 이은 세계 4위 규모의 군단급 상륙작전부대다. 병력 수는 2만8000명이 넘고 예하에 2개 사단과 2개 여단을 두고 있다. 이 가운데 제1사단은 상륙사단으로 평시에는 국가전략기동부대 역할을 하고, 유사시에는 적 후방 해안에 상륙하는 공세 전력을 맡는다. 제1사단 예하에는 3개 해병여단과 이를 지원하는 포병여단이 편성돼 있다. 각 해병여단은 공정(空挺)·기습·유격 임무를 부여받은 특화대대를 각각 하나씩 가지고 있다. ‘공정’은 말 그대로 입체 상륙작전의 한 유형으로, 수송기를 이용해 적 후방에 낙하산을 타고 진입하는 부대다. ‘기습’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형태의 해안 상륙작전을 수행하는 부대다. ‘유격’은 상륙함에서 헬기를 타고 출격해 적 해안 방어선 바로 후방에 투입돼 적 방어선의 배후를 치는 임무를 수행한다.




‘입체기동부대’ 대한민국 해병대

오늘날 세계에서 사단 규모의 상륙작전 부대를 운용하는 나라는 대한민국이 사실상 유일하다. 미 해병대에 사단 편제가 있기는 하지만 그 실상은 행정조직에 불과하다. 최근 급격히 덩치를 불리는 중국 해군육전대도 실제 전력은 여단 편제 중심으로 운용하고 있다. 러시아의 경우 우크라이나 침공 때 해군육전여단을 묶어 한번에 투입한 사례가 확인됐으나, 실제로는 상륙전 부대가 아닌 일반 차량화보병부대로 변질된 지 오래다. 각국에서 사단급 상륙부대가 사라진 이유는 대규모 상륙전을 수행할 필요가 없어진 데다, 전력 유지에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이런 추세에도 한국은 특수한 안보 환경으로 사단급 이상의 상륙부대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 북한이라는 안보 위협이 상시 존재하기 때문이다. 북한의 남침으로 전면전이 펼쳐지거나, 급변 사태로 평안도와 함경도 지역 핵·미사일 시설을 급히 통제해야 할 경우 적 후방에 신속 투입할 수 있는 입체기동부대가 필수다. 그래서 한국은 대규모 해병대 조직을 유지하고 있는데, 문제는 이 전력을 유사시 작전 지역에 빠르게 투입할 기동자산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한국 해군 고준봉급 상륙함 비로봉함. [뉴시스]

한국 해군 천왕봉급 상륙함 일출봉함. [해군 제공]

해병대는 군함과 항공기를 통해 적 후방에 침투하는 부대다. 그런데 현재 한국군에는 해병대를 실어 나를 군함과 항공기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가용한 상륙함을 살펴보면 대대급 상륙부대를 실어 나를 수 있는 독도급 2척, 2개 중대급 수송 능력을 갖춘 천왕봉급 4척, 고준봉급 4척 등 10척이 전부다. 이 10척을 전부 끌어모아도 1개 여단 병력과 장비를 겨우 상륙시킬 수 있는 수준이다. 고준봉급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차상륙함(LST) 개념을 거의 그대로 채택해 현대 상륙작전에는 적합하지 않다. 신형이라는 천왕봉급도 초수평선 상륙작전을 위한 공기부양정 탑재 능력이 없다. 실제 상륙작전이 펼쳐지면 적 지대함미사일·해안포 사정거리까지 접근해야 하는 시대착오적 상륙함인 것이다.

한국 해병대는 항공 전력도 턱없이 부족하다. 해병 제1사단에 3개 공정대대가 있으나 이들을 전담할 수송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공군이 보유한 C-130·CN-235 수송기는 몇 대 되지 않을뿐더러, 유사시 특수부대 후방 침투와 고가치 자산 수송에 우선 배정된다. 최근 해병대 항공단이 창설돼 상륙기동헬기 30여 대와 상륙무장헬기 24대가 도입될 예정이기는 하다. 다만 항공단 전력을 총동원해도 동시 투입 가능한 병력은 200명 남짓이다.



미 해병대, 10년간 구조조정
얼마 되지 않는 수송자산으로 적 해안에 상륙해 교두보를 만들었다고 치자.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한국군은 지원 전력이 부족해 독자적으로 교두보를 유지, 확장할 수 없다. 교두보 유지를 위해서는 상륙해안 일대의 제해권·제공권을 완벽하게 장악해야 한다. 교두보 외곽에 지속적으로 화력도 투사해야 한다. 그와 동시에 전차와 장갑차, 포병 전력이 신속하게 상륙할 필요가 있다. 현재 지구상에 그런 능력을 가진 군대는 미군뿐이다. 미군은 항공모함과 대형 강습상륙함은 물론, 전차·자주포·중장갑차를 하역 시설 없는 해안에 신속히 양륙할 수 있는 자산을 모두 갖추고 있다. 문제는 미군이 언제까지 이런 능력을 갖추고 있을지 모른다는 점이다.

미 해병대는 2020년 3월 사령관인 데이비드 버거 대장이 직접 나서 ‘포스 디자인 2030(Force Design 2030)’이라는 계획을 발표했다. 향후 10년간 미 해병대의 체질을 바꾸는 파격적인 구조조정 프로젝트다. 이에 따라 미 해병대는 1만9000명 규모의 병력을 줄이고, 상륙작전 및 해외 신속 전개 임무에 초점을 둔 기존 부대 구조를 완전히 갈아엎고 있다. 기존 24개였던 보병대대는 21개의 경량화 보병대대로 바뀌고, 21개에 달했던 포병대대는 5개로 축소돼 상륙부대 화력 지원 임무를 사실상 포기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축소되는 보병대대는 과거 ‘해병 보병’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개념의 경보병 부대로 재편된다. 기존 해병연대는 3400여 명 규모로 편성됐고 예하 해병대대는 1000명 정도의 병력으로 구성된 ‘강화 보병대대’ 편제였다. 새롭게 바뀐 해병연안연대(MLR)는 병력 규모가 2200여 명으로 줄어들고, 예하 해병대대도 직능별 소대급 조직으로 구성된 연안전투팀(LCT)으로 개편된다. 여기에 미 해병대의 전차 전력도 폐기될 예정이다.

미 해군 샌안토니오급 상륙함. [뉴시스]

이에 따라 미 해군도 해병대 전략·편제 변화에 맞춰 건함 계획과 상륙함 운용 교리를 바꾸고 있다. 우선 상륙함 성격이 강했던 개방 갑판형 강습상륙함이 하나 둘씩 ‘라이트닝 캐리어(Lightning carrier)’, 즉 F-35B 20여 대를 탑재하는 경항공모함으로 바뀌고 있다. 이 상륙함에 탑재되던 공중 기동자산들은 샌안토니오급 도크형 상륙함 (2만5000t급)으로 옮겨져 운용되고 있다. 샌안토니오급은 현재 11척이 건조됐으며 2척을 추가 건조 중이다. 노후화된 위드비 아일랜드급 상륙함(1만6100t급)과 하퍼스 페리급 상륙함(1만6600t급)을 전량 교체하기 위한 모델로, 향후 건조 계획에 상당한 변화가 예상된다. 샌안토니오급을 대량 건조하기로 한 기존 계획은 경량상륙전함(LAW)으로 명명된 4000t급 소형 상륙함 프로젝트로 대체될 것이다. 대형 RO/RO(roll-on/roll-off: 차량이 자력으로 승하선할 수 있는 구조) 수송선들로 구성된 사전배치 함대는 차세대 해상사전배치선(Maritime Pre-positioned Ship) 사업, 즉 MPS(X) 사업을 통해 소형 수송선으로 대체될 예정이다.




미 해병대 “전·평시 효율적 선박 운용”

이 같은 상륙함 건조 계획의 대대적 변화와 관련해 숀 브로디 미 해병대 역량개발국 해상원정작전부국장은 6월 현지 안보 전문매체와 인터뷰에서 “대형·중속(中速) RO/RO 선박은 대량의 물자를 수송하는 데 유용하지만, 일상 작전에선 효용성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전통적인 사전배치선의 경우 일선에서 타이어를 보내달라고 하면 한 품목을 보내기 위해 큰 배를 여럿 움직여야 한다”며 “우리는 전시는 물론, 평시에도 선박을 효과적으로 운용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전통적인 대형 상륙함과 사전배치선 대신 소형함을 다수 건조해 여러 지역에 분산 배치 및 운용하겠다는 미군의 장기 계획을 밝힌 것이다.

지금 같은 추세라면 2030년대 중반부터 미군의 대형 상륙함과 사전배치선은 크게 줄어들거나 용도 변경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미군의 전략 개념이 대(對)중국 작전에 초점이 맞춰지는 현 상황에서 이 같은 움직임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문제는 한국이다. 미군이 상륙함과 사전배치선 전력을 감축하면 이는 곧 한국 해병대의 상륙작전 능력 저하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한국은 군단급 규모의 해병대를 보유하고 있지만, 상륙작전 수행 능력은 여단급에도 미치지 못한다. 지금까지 연합자산으로 동원되는 미군 상륙함과 수송선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해왔다. 향후 미군의 해군·해병대 운용 개념이 바뀌고 전력이 개편되면 더는 미군 자산에 의존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미 해군·해병대의 운용 전략 변화는 지난 수십여 년 동안 이어진 미국의 증원 자산 감소 문제를 더 심화할 것이다. 과거 미국은 ‘작전계획(작계) 5027’을 통해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하면 90일 내로 병력 60만 명, 항공모함 5척과 전투함 160여 척, 군용기 2500여 대를 보낼 것이라고 공약했다. 2015년 새로 작성된 ‘작계 5015’는 기존 재래식 전쟁 위협에 더해 북한의 급변 사태와 국지전 시나리오를 추가 반영했다고 발표된 바 있다. 그러나 이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드러난 것처럼 미군의 재래식 전쟁 수행 능력은 크게 약화된 상황이다. 유사시 미국이 공약한 대로 대규모 군사력을 한반도에 보내리라고 믿기가 어려운 것이다. 이제 한국은 그간 미군 증원 자산에 의존해온 여러 분야에서 홀로 서기를 해야 하고, 남은 시간은 10여 년에 불과하다.



국가 차원 해군·해병대 전력 강화 필요

한국은 대규모 상륙작전 능력을 포기할 수 없는 나라다. 북한과 전면전 가능성이 언제나 존재한다. 전면전이 발발했을 때 북한 지역 후방에 상륙작전을 실시해 적 지휘·군수 체계를 신속히 마비시키지 않으면 전쟁은 장기화될 수밖에 없다. 그만큼 우리 측 피해도 크게 늘어날 것이다. 이처럼 작전 소요는 명확한데, 이를 수행할 연합자산이 크게 줄어들 예정이다. 한국은 연합자산을 대체할 상륙함·수송선은 물론, 이를 지원할 해군·해병대 전력도 확보해야 한다.

병역 자원이 급격히 감소하고 있는 지금, 해군·해병대 전력의 양적 팽창은 불가능해 보인다. 그렇다면 질적 성장을 꾀해야 한다. 물론 새로운 군함을 만들고 부대 편제를 바꾸는 개혁에는 큰돈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해군·해병대 전력 강화는 군 차원이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 추진돼야 한다. 한국에 남은 시간은 많지 않고, 안보 위협은 시간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사실을 국가 지도부가 하루빨리 깨닫기를 바란다.


〈이 기사는 주간동아 1398호에 실렸습니다〉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