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길 먼 반려동물보험 활성화
정부는 4일 발표한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서 반려동물 산업 활성화 정책의 일환으로 펫보험 제도를 정비하고 관련 시장을 키우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하지만 보험업계에선 단기간에 펫보험 시장을 성장시키긴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험사들은 2007년부터 펫보험 상품을 출시했지만 손해율이 100%를 넘어서면서 2010년부터 2년여 동안 판매를 중단한 바 있다. 당시 보험 가입자와 보험회사, 동물병원 간에 정보 공유가 원활하지 않은 점, 동물병원 진료 체계가 표준화되지 않은 점 등이 문제로 지적됐다. 이 같은 문제들은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해결되지 않았다는 게 보험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 0.9%에 그치는 펫보험 가입률
보험사들은 현재 체계에선 정확한 보상 심사가 어려워 지원 한도를 늘리기 어렵다고 설명한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현재는 반려동물이 실제 보험에 가입된 동물인지 가려내기가 어려워 심사가 제대로 되지 않고 보험사들도 보상 폭이 큰 상품을 선뜻 출시하지 못하고 있다”며 “보상 폭이 작으니 가입자가 늘지 않고, 가입자가 적으니 새로운 상품을 출시하기 어려운 악순환이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려동물 등록제가 더욱 활성화되는 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마이크로칩 등으로 반려동물 고유번호를 등록하는 반려동물 등록제는 2008년 시범 도입 후 2014년부터 의무화됐다. 하지만 2021년 기준으로 등록률은 54%로 여전히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 진료기록부 발급, “수가 산정 위해 필요” vs “임의 진료 가능성”
펫보험이 활성화되기 위해선 진료기록부 발급 의무화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 수의사법에 따르면 수의사는 동물 진료 후 진료기록부를 발급할 의무가 없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수의사가 진료기록부를 내주지 않아 가입자가 동물병원에서 결제한 카드 영수증을 보험사에 보내기도 한다”며 “진료 내용 없이 금액만 적힌 영수증을 가지고는 손해사정이 어려워 적정 보험금을 지급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러나 수의사 측은 진료기록부 발급을 위해서는 제도 정비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대한수의사회 관계자는 “동물 진료는 처방전 없이도 구할 수 있는 의약품이 대부분이라 진료기록부를 발급하게 되면 이를 가지고 보호자가 의약품을 산 뒤 마음대로 약을 먹이거나 해 더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동물 의약품에 대해서도 관리를 강화하는 등 제도가 먼저 정비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현재 동물병원 진료기록부 발급을 의무화하는 내용의 수의사법 개정안 4건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보험업계는 법안이 통과되면 과잉 진료와 보험사기를 막고 합리적인 손해사정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현재는 펫보험 상품을 설계할 때 일본 등 해외 국가의 데이터를 사 와서 만들고 있다”며 “이러한 비용이 보험 가입비에 반영되는 경향이 있는데, 국내 데이터가 만들어진다면 가입비를 낮추면서 국내 현실에 맞는 보험 설계가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 정부, 진료비 표준화 작업 개시
정부는 현재 진단명 및 진료 행위 표준화를 위한 사전작업으로 전국에서 2명 이상의 수의사가 운영하고 있는 동물병원의 진료비를 전수 조사하고 있다. 조사 결과는 이르면 이달 중 발표될 예정이다. 농식품부 반려산업동물의료팀 관계자는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진료비를 표준화하는 작업이 진행되면 진료비를 합리적으로 비교할 수 있는 기준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했다.
수의사 측은 진료비 표준화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대한수의사회 관계자는 “유럽이나 미국 등 동물보험이 활성화한 나라의 사례를 봐도 진료비를 통일하는 나라는 없다”며 “진료 품질에 따라 진료비 차이가 발생할 수 있는데, 이를 간과하고 진료비를 표준화하면 고급 진료를 하려는 병원이 없어져 전반적인 동물의료의 질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정부는 진료비 표준화가 특정 진단명마다 진료비를 모두 동일하게 맞추는 방식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예컨대 중성화 수술 과정이 A, B, C 단계로 이뤄진다고 하면 각각의 과정에 대해 진료비 책정 근거를 마련하는 셈”이라며 “중성화 수술을 A, B 단계까지만 실시한 병원에 비해 A, B, C 단계를 모두 실시한 병원은 더 높은 진료비를 책정할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펫보험 가입률이 40%에 달할 정도로 세계에서 펫보험이 가장 활성화된 스웨덴의 경우 1900년대 초부터 관련 보험이 시작됐다. 보험 전문가들은 펫보험 산업은 무리하게 속도를 내기보단 충분한 시간을 갖고 관련 제도를 정비해 나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한다. 제도 정비 없이 섣불리 시장 확대에 나설 경우 보험사 손해율 상승으로 판매가 중단되는 사례가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김경선 보험연구원 건강보장연구센터 센터장은 ‘반려동물보험 시장의 현황과 과제’ 보고서에서 “과거 판매 중단 사례로부터 알 수 있듯이 펫보험은 (보험사, 수의사 등) 이해관계자 간 정보 비대칭 해소와 손해율 관리를 위한 제도적 기반이 중요하다”며 “진료체계 표준화, 진료기록부 발급 의무화를 통해 진료 기록 관리를 강화할 필요가 있으며 나아가 표준수가제 도입 가능성도 검토할 수 있다”고 했다.
세종=조응형 기자 yesbro@donga.com
세종=송혜미 기자 1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