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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모래성” 제방과 침수 경고 무시가 낳은 최악 지하차도 참사

입력 | 2023-07-17 00:12:00

15일 오후 미호천 범람으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한 충북 청주시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 진입도로에서 소방당국이 구조 작업을 벌이고 있다. 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중남부 지방을 강타한 기록적 폭우로 산사태와 하천 범람이 속출하면서 대규모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산사태 피해가 컸던 경북에서만 사망 및 실종자가 30명 가까이 나왔다. 충북 청주시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는 인근 미호강의 범람으로 침수돼 차량 15대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고립된 채 집단참사를 당했다. 예보된 호우에 정부도 “과도할 만큼 선제 대응”을 다짐했지만 이번에도 대규모 인명과 재산 피해를 막지 못했다.

특히 15일 오전 발생한 역대 최악의 궁평2지하차도 참사는 지하 공간이 침수 사고에 얼마나 취약한 곳인가를 무섭게 보여준다. 지하차도에서 가까운 미호강 임시 제방이 무너지면서 강물이 순식간에 밀려들어와 길이 436m의 지하차도 터널이 천장까지 잠기기까지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임용고시를 보는 처남을 차로 바래다 주던 새신랑과 아침 청소 일을 나가던 70대 노모를 포함해 10여 명이 빠져나오지 못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참사를 막을 몇 차례 기회를 번번이 놓쳤다는 점이다. 지하차도가 침수되기 2시간 10분 전 하천 수위가 심각 단계에 도달하자 금강홍수통제소는 청주시 흥덕구청에 “주민 통제 조치를 내려 달라”고 전달했다. 침수 40분 전에는 인근 미호천교 확장 공사의 감리회사 단장이 “궁평 지하차도 침수 우려가 있으니 차량을 통제해 달라”고 경찰에 신고했다. 원래 이 지하차도는 하천과 가까운 데다 주변 논밭보다 지대가 낮아 침수 사고 가능성이 높은 곳이다. 유관 기관의 잇단 요청에도 교통 통제가 제때 이뤄지지 않은 경위가 무엇인가.

이번 참사의 직접적 원인은 임시 제방 붕괴다. 그런데 제방을 “허술하게 모래로 쌓고 방수포로 덮었다”는 것이 주민들 증언이다. 빗물 자동 차단시설은 없었고 배수펌프도 작동하지 않았다. 2020년 3명이 숨진 부산 초량 지하차도 침수 사고 때와 달라진 것이 없다. 당시 정부는 재발 방지 대책으로 자동 차단시설 구축을 발표했는데 궁평 지하차도는 올 9월에나 설치될 예정이었다고 한다. 침수 우려 지역임에도 설치가 늦어진 이유가 무엇인가. 전국의 다른 침수 우려 지하차도 144곳은 안전한가.

단시간에 쏟아진 극한 호우였다고는 하나 기습적인 폭우도 아니고 예보된 폭우에 인명 피해를 이렇게 키울 일이었는지 안타깝기만 하다. 기상 예보에 따른 하천과 도로 통제, 주민 대피라는 단기적 대응은 물론 장기적 재해 방지 대책에 소홀함은 없었는지 돌아봐야 한다. 이번에 산사태로 20명 가까운 사망자와 실종자가 발생한 경북 예천군의 경우 일부 지역은 군이 지정한 산사태 취약 지역에서 벗어나 있었다. 기후 위기로 재해 규모와 양태가 달라지고 있는 만큼 위험 예측과 재난 대비 매뉴얼도 상황 변화에 맞게 수시로 개선해야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