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환경영향평가가 끝난 경북 성주 사드기지 전경. 성주=뉴시스
손효주 기자
문재인 정부가 경북 성주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부지 환경영향평가(환평)를 지연시키려고 압력을 행사했을 것이라는 일각의 주장은 사실일까. 사드 배치와 환평에 깊숙이 관여한 전·현직 국방부 관계자들 이야기를 들어봤다.
“환평 하지 말라고 뜯어말리는 사람은 없었다. 다만 청와대에 가서 수시로 논의했는데 그때 ‘주민들을 충분히 설득하는 일이 먼저’라고 하긴 했다. 그게 지침이라면 지침이었다.”(A 씨)
“누가 ‘환평 하면 가만히 안 두겠다’고 대놓고 말하겠나. 대신 환평에 나서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는 있었다. 국방부가 나서면 안 된다는 암묵적인 규칙 같은 것 말이다.”(B 씨)
취재를 하며 전 정부에서 사드 문제로 고초를 겪은 이들은 물론이고 당시 국방부 고위직을 맡아 친문 인사로 분류되는 이들 이야기도 두루 들었다. 2017년 10월 국방부는 사드 부지에 대한 일반 환평 용역 계약을 하고도 5년 가까이 이를 진행하지 않았다. 환평 협의회 구성의 핵심인 주민대표를 성주군에서 추천받아 환평에 착수한 건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뒤인 지난해 8월부터였다.
친문 인사들은 “환평 지연은 고의가 아니다”라고 했다. 사드 배치 부지가 성주로 결정된 2016년부터 성주는 군수가 혈서를 쓰는 등 사드 배치 결사반대 분위기로 바늘 하나 들어갈 틈이 없었다. 이런 분위기를 뻔히 알면서 환평을 하자며 주민대표 추천 공문을 성주군에 보내는 건 더 크게 분노하라며 불쏘시개를 던지는 격이었다는 것. 당시 국방부 고위직을 지낸 D 씨는 “환평이 지연됐지만 북한 미사일 방어를 위한 사드 작전 운용에는 문제가 없었다”며 “환평을 강행했다가 충돌이 발생해 현지 노인들이 다치면 그 책임은 누가 질 것이냐”고 했다.
그러나 이들도 부정하지 못하는 사실이 있었다. 당시 국방부 손발이 묶여 있었다는 사실이다. “국방부가 자체적으로 뭘 할 수 있었겠느냐”는 무력감이 기저에 깔려 있었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는 집권 직후인 2017년 5월 말 사드 발사대 4기가 국내에 반입된 사실을 국방부가 청와대에 보고하지 않았다며 돌연 진상조사를 지시했다. ‘사드 발사대 반입 보고 누락’ 파문이었다. 문 대통령은 취임 직전인 같은 해 4월 발사대 4기를 실은 트럭이 고속도로를 달리는 모습이 언론에 생중계된 것을 계기로 발사대 반입은 다 알려진 사실임에도 “충격적”이라며 대로했다. 이 사건으로 2017년 1월 취임하는 바람에 정작 2016년 사드 배치 및 발사대 반입 결정 등에 별다른 관여를 하지 않았던 위승호 당시 국방부 국방정책실장은 적폐로 몰려 직무배제 조치됐다.
취재 내용을 종합하면 현재까지는 “환평을 해선 안 된다”고 직접적이거나 위압적으로 말한 청와대 관계자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정식 수사가 시작돼야 명확해지겠지만 환평 지연과 관련해 직접적인 청와대 지시가 담긴 문건도 국방부에 남아 있는 게 없다는 것이 국방부 관계자 설명이다.
분명한 건 정권 초반 보고 누락 사건으로 국방부가 위축된 뒤엔 “주민 설득이 우선”이라는 부드러운 말 몇 마디도 환평에 나서지 못하게 하는 위압적인 방패 역할을 하기에 충분했다는 것이다. 국방부 내에선 “전 정부 국방부 관계자들이 환평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던 건 정권 초기 치밀하게 설계된 가스라이팅의 결과물”이라거나 “보고 누락 사태 이후 사드에 대한 방향성은 별다른 압력 없이도 ‘정상 절차대로 가면 안 된다’는 것으로 확고하게 정해진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보고 누락 사건으로 큰 충격을 받은 건 청와대가 아니라 국방부였다는 것이다.
여권은 연일 전 정부가 환평 고의 지연으로 사드 기지 정상화를 방해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감사기관과 수사기관은 세련되게 진화해 실체가 모호한 압력 아닌 압력의 행사 주체를 밝혀낼 수 있을까. 환평 지연이 결국 국방부 관계자들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벌인 치열한 눈치싸움의 결과물로 결론 날 가능성도 있다. 환평 지연 기조를 만들어낸 이들을 찾아내는 길은 꽤 험난한 과정이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