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통보제 실시로 ‘병원 밖’ 출산 가능성 생겨 아이 익명으로 낳는 보호출산제도 병행돼야 출산 고민하는 임부 위한 상담 서비스도 절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출생통보제를 시행하게 되었다. 출생통보제의 성공 가능성은 익명보호출산제(보호출산제) 운영과 더불어 높아진다. 그리고 두 제도의 시너지 효과는 일명 임신갈등상담소(상담소)에서 출발하는 임신·출산 지원 사회서비스 체계가 확립될 때 나타날 수 있다. 최근 우리 사회에 충격을 준 ‘그림자 아이’(미신고 아동)의 존재를 최소화하려면 ‘출생통보제-보호출산제-상담소 기반 사회서비스’라는 삼각편대를 형성해야 한다는 의미다. 왜 그럴까?
부모가 숨기면 알 수 없었던 아이의 존재를 드러내는 첫걸음이 출생통보제다. 2021년부터 시행하기 시작한 제4차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에도 출생통보제 도입 관련 내용이 있다. 다만 출생 통보 주체 관련 논쟁이 있었다. 병원의 지나친 부담이 논쟁의 중심이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병원으로부터 출생 기록을 넘겨받아 지자체로 출생 통보를 하는 방식이 대안으로 나왔다. 게다가 2015년부터 2022년까지 임시 신생아 번호를 받았지만 출생신고를 하지 않은 아동이 2236명이고 그중 임의 조사 아동 23명 중 3명이 사망한 충격적 사실이 알려졌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채 세상을 떠난 아이 수는 지금도 늘어나고 있다. 신속하게 가족관계등록법을 개정하고 출생통보제를 도입하게 된 배경이다.
그러나 출생통보제로 인하여 병원 밖 출산 증가 가능성이 생긴다. 산모와 영아의 건강, 심지어 생존이 위협받게 된다. 그래서 산모가 익명으로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보호출산제가 대안으로 나온다. 기관의 보호하에 출산하기 때문에 산모와 아이의 건강과 생명을 보장받는다. 반면 아이에게 생모는 익명으로 남는다. 출생의 뿌리를 알고자 하는 아이의 기본권 침해다. 2012년 입양 전 친생부모의 출생신고를 의무화한 입양특례법과도 상충된다. “아이가 행복하게 성장할 수 있는 친생부모 중심 가족 구성을 쉽게 포기하도록 하고 입양만 늘릴 수 있다”는 가능성도 있다.
어떤 산모는 한부모의 길을 선택할 수 있다. 다른 산모는 아이와 자신이 서로 알 수 있음을 전제로 하면서도 입양에 동의할 수 있다. 반면 많은 산모가 자신의 존재를 알리지 않은 채 입양을 선택할 수도 있다. 그들 중 마음이 바뀌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끝까지 자신의 존재를 숨기고 싶은 산모도 있을 것이다. 아이 입장도 마찬가지다. 입양 아동들 중 대다수는 굳이 생모의 존재에 관심이 없다. 그러나 뿌리를 찾으려는 아이의 선택도 존중해야 한다. 보호출산제를 도입할 것이냐 말 것이냐는 논쟁은 지나치게 교조적이다. 찬반 의견을 존중하면서 다양한 선택을 가능케 하는 보호출산제를 만들면 된다. 독일의 신뢰출산(vertrauliche Geburt)에서 비교적 다양한 선택 가능성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출생 통보나 보호 출산은 모두 아이가 태어난 시점, 즉 ‘10개월’의 종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출생신고와 입양 여부 결정의 출발은 임신 이후 갈등 상황이다. 사라진 아이 이전에 임신 갈등 상황에 빠진 여성의 존재가 있다. ‘유령 아이, 미신고 아이’를 찾아내려면 먼저 그 여성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10개월의 미래’를 친생부모와 함께 준비하는 과정이 선행돼야 한다. 그래야만 사라지는 아이들의 수가 최소화된다.
보호출산제 시행에 앞서 임신갈등상담소를 먼저 구축한 독일 사례가 있다. 1992년 낙태의 부분 합법화 과정의 결과로서 상담소다. 상담소에 찾아오는 여성이 낙태와 출산 사이에서 결정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고 필요한 서비스를 연계하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아이 낳을 결심을 한 여성과 출산 때까지 상담소가 동행한다. 익명이나 기명으로 입양을 보낼지 혹은 한부모가 될지는 그 과정에서 선택하면 된다.
출생통보제는 첫걸음이다. 임신갈등상담소에서 시작하는 사회서비스 체계 구축을 해야 한다. “이런 서비스가 있다. 그러니 와서 결정해라. 낙태를 할지, 낳아서 직접 키울지, 아니면 익명이든 기명이든 입양을 보낼지.” 국가와 사회가 이 정도 선택권을 줄 수 있는 변화를 기대해 본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