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자립도 45%에도 지자체 흥청망청 사업성 검증 강화하고 교부금제 손봐야
정임수 논설위원
경남 거제시 조선해양문화관 광장에 있던 120t짜리 거북선이 결국 지난주에 철거됐다. 2011년 경남도의 ‘이순신 장군 기념사업’ 일환으로 제작됐지만 아무런 활용도 못 하다가 땔감과 고철만 남기고 폐기된 것이다. 국비와 지방자치단체 예산 16억 원이 투입된 프로젝트의 한심한 결말이다.
철거된 거북선은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남해안 일대 지자체들이 앞다퉈 ‘이순신 마케팅’에 뛰어들고, 임진왜란 당시 활약한 거북선보다 더 많은 거북선을 만들어 낼 때 편승한 사업이었다. 게다가 제작업체가 국내산 목재를 쓰겠다는 계약을 어기고 외국산을 사용한 게 드러나 ‘짝퉁’ 꼬리표가 붙었다. 승선 체험 등 관광용으로 쓰려고 바다에 띄웠지만 물이 새고 기울어져 뭍으로 끌어올려야 했다. 지상에서도 배가 뒤틀리고 부서지는 사고가 잇따랐다. 엉성한 계획으로 출발해 부실한 시공과 관리감독으로 이어진 지자체 전시행정의 전형적인 사례다.
문제는 이처럼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워 수십억, 수백억 원의 세금을 낭비한 사업이 널려 있다는 사실이다. 서울시가 1100억 원을 들여 만든 세운상가 공중보행로는 개통 1년 만에 철거 논란에 휩싸였다. 전임 시장이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추진했지만 통행량이 당초 예측의 5∼17%에 불과한 탓이다. 충북도가 ‘내륙판 자갈치시장’을 표방하며 바다도 없는 괴산군에 조성한 수산단지는 파리만 날릴 지경이다. 사업성을 도외시한 이 역발상 행정에 230억 원이 투입됐다.
전국 243개 광역·기초지자체의 재정 자립도는 평균 45%에 그친다. 전체 예산 중 지방세 같은 자체 수입이 절반도 안 된다는 뜻이다. 재정 자립도가 30%를 밑도는 지자체는 190곳이 넘는다. 이런데도 지자체마다 보여주기식 행정에 돈을 펑펑 쓸 수 있는 건 국세에서 자동 이전되는 지방교부금이 있기 때문이다. 선출직 지자체장들이 중앙정부가 내려보내는 지방교부금을 쌈짓돈 삼아 치적 쌓기나 선거용 사업을 밀어붙이고 있는 것이다. 인사권과 예산 편성권, 인허가권을 쥔 지자체장이 결정하면 공무원들은 따라갈 수밖에 없다.
상당수 지자체가 재정 혁신 노력은 게을리한 채 인기 영합식 정책을 남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올해도 지자체 186곳이 19조 원이 넘는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했는데, 이 중엔 공짜로 해외여행을 보내주거나 탈모 치료비를 지원하는 식의 선심성 사업이 적지 않다. 지자체의 흥청망청 예산 낭비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올해 역대급 세수 펑크가 예상될 정도로 나라 살림이 비상이라는 점에서 우려를 더한다.
국가채무가 1000조 원을 넘어선 상황에서 중앙정부에서 매년 수십조 원을 받아 쓰는 지자체의 세금 낭비는 나랏빚 부담을 가중시킬 뿐만 아니라 지방자치 시스템 자체를 뒤흔들 수 있다. 각 지자체의 예산 낭비를 막을 제도적 장치가 필요한 이유다. 중앙정부의 지자체 사업 타당성 검증을 강화하고, 전문가와 지역주민들이 불필요한 사업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사업 선정 과정과 예산 집행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시스템도 필요하다. 지방재정의 건전한 자립을 위해 60년 넘은 지방교부금 제도를 대수술하는 작업도 서둘러야 한다. 지자체의 방만 재정으로 혈세가 줄줄 새는 일이 더는 없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