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산사태 피해] 관리 부실에 산사태 비극 되풀이 피해 큰 예천 4곳 모두 미지정 주민들 “산태골 불려도 지정 안돼”
17일 오전 경북 예천군 감천면 벌방리에서 한 주민이 산사태로 쏠려 온 나무 더미를 넘어가 창문을 통해 집 안을 살펴보고 있다. 소방 당국은 이 마을에서 15일 산사태로 실종된 주민 2명을 수색하고 있다. 예천=뉴시스
“우리 마을은 예전부터 ‘산태골’이라고 불렀다.”
17일 오전 경북 예천군 효자면 백석리의 한 주민은 예로부터 골짜기가 깊고 가팔라 산사태 우려가 큰 동네여서 ‘산태골’로 불렸다며 이같이 말했다. 백석리에선 15일 일어난 산사태로 4명이 숨졌고, 사흘째인 이날까지 실종자 1명의 흔적을 찾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백석리는 정부의 산사태 취약지구로 지정되지 않은 상태라 제대로 점검이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 산사태 발생 마을 10곳 중 1곳만 취약지역 지정
산사태가 일어나기 쉬운 세 가지 요건을 다 갖췄음에도 산사태 취약지역으로 지정되지 않은 것을 두고 산림청은 인력 부족 등의 현실적 문제를 거론한다.
산림청에 따르면 전국 산림 100만여 곳 중 매년 약 1만8000곳에 대해 산림 기초조사를 하고 있다. 약 55년이 걸려야 전국 산림을 모두 조사할 수 있는 것. 기초조사가 이뤄지지 않으면 기초자치단체, 국유림관리소 등을 통해 산사태 취약지역으로 지정될 수 있다. 산림청 관계자는 “인력 부족 등 현실적인 문제로 산사태 위험지역 조사가 어려운 실정”이라고 했다.
● 산사태 취약지역 실효성 높여야
경북 산사태 마을 중 유일하게 취약지역으로 지정됐던 풍기읍 삼가리 마을 주민들은 대부분 취약지역 지정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한 삼가리 주민은 “외지 사람들이 오면 주민들이 대번에 아는데 정부에서 점검했다는 말을 못 들어봤다”며 “마을 뒷산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주민들의 목소리도 들어봐야 제대로 된 점검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산사태 취약지역을 지정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주민들에게 관련 교육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경북의 사고 지역 마을 대부분이 대피방송과 안내문자를 접했지만 실제 산사태가 일어날 것을 예측해 대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동엽 대구대 산림자원과 교수는 “취약지역에 대해선 정기적으로 주민들에게 홍보하고 위험 신호가 갔을 때 대피할 수 있는 대피시설 경로 등을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안전의식은 단기간에 높아질 수 없기 때문에 정부와 지자체 등이 홍보와 계도 활동을 지속적으로 하고 대피 훈련도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후 변화로 집중호우 피해가 커지는 상황에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북의 한 공무원은 “예측 불가능한 기상 이변이 많아지면서 산사태 취약지역의 실효성이 떨어지고 있는데 지금보다 훨씬 세밀한 지정과 관리가 필요하다”고 했다.
예천=명민준 기자 mmj86@donga.com
최원영 기자 o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