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를 영화로 읊다]〈62〉기생의 우정
영화 ‘게이샤’에서 빚 때문에 게이샤가 된 에이코(왼쪽)는 선배 게이샤 미요하루로부터 도움을 받는다. 가도카와 제공
한시에서 우정은 사랑보다 즐겨 다룬 주제였다. 하지만 여성들의 우정을 읊은 한시는 찾아보기 어렵다. 특수 신분인 기생의 우정은 더욱 그렇다. 1879년경 팔도 각지에서 온 여덟 명의 기생은 한양에서 수계(修禊) 모임을 갖고 우정을 기리는 시를 남겼다. 월하(1860∼?)의 시는 다음과 같다.
미조구치 겐지 감독의 영화 ‘게이샤’(원제 ‘기온바야시(祇園囃子)’·1953년)에선 기생처럼 특수한 신분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게이샤의 신산한 삶을 보여준다. 게이샤들이 오가는 골목 풍경은 공간의 깊이가 강조돼 그들의 폐쇄된 처지와 삶의 질곡을 암시한다. 게이샤들의 우의는 고민을 공유하는 어린 견습생 간에도 드러나지만, 선배 게이샤인 미요하루와 그의 보살핌을 받는 신세대 에이코와의 관계에서 더 잘 드러난다. 자신들의 처지를 잘 아는 미요하루는 기예와 웃음은 팔아도 자신을 팔지는 않겠다는 당돌한 에이코를 지켜주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
제도적 질곡 아래서도 팔선루의 기생들은 연대 의식을 통해 자신들의 존재를 긍정했다. 그들의 수계는 남성 문인을 흉내낸 것이지만 우정을 통해 고난과 불행에서 빠져나오려는 몸부림이기도 하다.(박영민) 그들의 시는 후일 모임의 막내 소운의 연인인 미산거사의 도움을 받아 ‘팔선루집(八仙樓集)’이란 시집으로 엮어진다. 기생들의 희귀한 모음 시집을 통해 그들만의 우정을 마주한다.
임준철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