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화가들에겐 성공을 가져다준 결정적 그림이 있기 마련이다. 프랑스 화가 오노레 도미에를 유명하게 만든 건 ‘가르강튀아’(1831년·사진)였다. 16세기 소설에 등장하는 거인 왕을 묘사한 이 흑백 판화는 그에게 명성을 안겨줬지만 옥고도 치르게 했다. 무엇 때문일까?
도미에가 활동했던 시기는 1830년 7월 혁명부터 1870년 나폴레옹 3세가 세운 제2제국의 몰락까지 프랑스 사회의 정치적 격변기였다. 가난한 노동자 집안 출신인 그는 거의 독학으로 화가가 되었다. 인정받는 역사화를 그리고 싶었지만 생계를 위해 캐리커처나 판화에 몰두해야 했다. 가끔 파리 살롱전에 유화를 출품했으나 비평가들에게 무시당했다.
이 판화는 1830년 창간한 잡지 ‘라 카리카튀르’를 위해 제작한 것으로, 1831년 12월에 실리며 논란이 됐다. 거인 왕 가르강튀아로 묘사된 이가 바로 프랑스 국왕 루이 필리프였기 때문이다. 빨래판처럼 긴 혀를 가진 왕은 왕좌에 앉아서 가난한 백성들에게 착취한 금화를 먹어 치우고 있다. 얼마나 많이 먹었는지 배가 임신부처럼 튀어나왔고, 늘어난 볼살로 얼굴은 삼각형이 됐다. 의자 밑으로는 각종 훈장과 작위, 임명장을 배설 중이다. 권력에 아부하는 특권층이 그 배설물을 차례로 받아 가고 있다.
도미에의 의도는 분명했다. 대부분의 국민이 빈곤 상태에 놓여 있는데, 왕은 부자들에게 훈장과 작위를 남발하며 호의호식하는 것을 그림으로 고발한 것이다. 실제로도 필리프 국왕은 1800만 프랑 이상의 연봉을 자신에게 책정했다. 이는 나폴레옹 1세의 37배, 미국 대통령보다 약 150배나 많은 액수였다. 비록 큰 곤욕을 치렀지만, 도미에는 시대를 꿰뚫는 풍자화의 대가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이은화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