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성주에 배치된 사드. 성주=뉴시스
문재인 정부 시기 국방부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환경영향평가를 추진하기 위한 평가협의회 구성을 수 차례 건의했으나 묵살된 정황이 2019년~2021년까지 작성된 내부 보고 문건으로 새롭게 포착됐다. 실무 차원에서 수차례 사드 환경영향평가의 절차를 밟으려 노력했으나 청와대가 “중국과의 고위급 교류 등이 예정돼 있다”는 등의 이유로 이를 수용하지 않은 것이다. 국민의힘은 이에 대해 ‘국기 문란’, ‘안보 농단’이라며 당시 안보라인 문책이 불가피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국방부 “협의회 구성요건 검토하고 공문 발송하자” 수차례 건의
20일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신원식 의원이 국방부로부터 제출받은 ‘성주기지 환경영향평가 추진 계획 보고(2020년 7월 31일)’에 따르면 당시 국방부 군사시설기획관은 국방부 장관에게 “주민들이 위원추천 요청을 거부하는 경우 평가협의회 구성요건에 대한 환경부 법령해석을 요청해야 한다”고 보고했다. 국방부 군사시설기획관이 2020년 7월 31일 작성해 국방부 장관에게 보고한 ‘성주기지 환경영향평가 추진 계획 보고’의 일부. 평가협의회 구성 요건에 대한 법령 해석을 요청하고 공문을 발송해야 한다는 내용과 시한이 함께 적시돼 있다. 국민의힘 신원식 의원실 제공
환경영향평가법 시행령 제4조는 환경영향평가협의회를 구성할 때 ‘해당 계획 또는 사업지역 관할 지방자치단체에 거주하는 주민대표’가 들어가도록 하고 있다. 국방부가 법령 해석 검토를 했다는 대목은 강경하게 반대하는 사드 기지 주변 소성리 주민들 대신 성주군 내에 다른 마을 주민대표를 세우거나 인근 영향지역인 경북 김천 등 주민대표를 세울 수도 있다고 보고 법적 검토에 들어가려 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문재인 정부는 결과적으로 환경영향평가를 위한 평가협의회를 구성하지 않았다.
또한 국방부는 같은 문건에서 “주민, 시민단체가 설명회 참석을 거부하는 경우 시한을 명시한 위원추천 요청 공문을 각 기관에 발송(9월 넷째주)하고 협의회를 구성해야 한다(10월)”며 구체적인 시한들을 명시해 공문을 보내야 한다고 판단했다. 국방부 내부에서 협의회에 대한 필요성을 여러 차례 제기했고 2019년 12월부터 청와대와 국가안보실에 지속해서 전달했지만 청와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국방부의 우려는 앞선 2019년 12월 4일 작성된 국방부의 ‘환경영향평가 평가협의회 구성시기 관련 과장급 협의결과 보고’ 문건에도 드러나 있다. “정부가 평가협의회 위원 추천을 요청하는 법적 절차 진행을 시도조차 안 하면 국회 질의시 정부 입장이 곤란해진다”거나 2020년 4월 총선과 인접할 경우 불필요한 이슈 생성이 가능하다고 명시돼 있다.
● “전자파 무해” 판단, “3불1한은 ‘양국 합의’”도 명시
국방부가 2021년 6월 청와대 시민사회수석비서관에 보고한 ‘성주기지 관련 현안보고’ 문건에는 문재인 정부가 전자파 영향이 없음을 인지한 사실이 드러나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이같은 내용을 공개한 적은 없었다. 국민의힘 신원식 의원실 제공
문재인 정부가 경북 성주의 사드 기지에서 측정된 전자파가 인체와 주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없다고 판단한 내용이 적시된 내부 문건도 확인됐다. 국방부가 2021년 6월 작성해 당시 방정균 청와대 시민사회수석비서관에게 보고한 ‘성주기지 관련 현안보고’ 문건에는 ‘전자파는 순간 최대값이 인체 보호기준 대비 약 0.03%로 전자파 영향이 없음’이라고 적시돼 있다. 전자파 최대값 비율 공식 집계가 공개된 것도 처음이다. 청와대가 전자파 최대치가 인체보호 기준에 미달되는 사실을 알고도 발표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근거자료라는 게 여권의 설명이다.
신 의원은 “사드 전자파 및 소음이 인체에 무해함을 파악했음에도 전자파 및 소음 측정 결과를 공개하지 않은 것은 ‘갈등 조정’을 핑계로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실이 직무유기한 것에 해당한다”며“ 당시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실 등 관계자에 대한 조사와 감사가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국방부 ‘성주기지 환경영향평가 추진 계획 보고’에 나오는 3불 1한 대목. 국민의힘 신원식 의원실 제공
또 문재인 정부가 줄곧 사드 3불(MD참여, 사드 추가배치, 한미일 군사동맹을 하지 않겠다)+1한(사드 운용 제한)에 대해 중국과 합의한 적 없다고 했지만 실상 ‘양국이 합의한’이라는 표현을 쓴 정부 내부 문건도 확인됐다. ‘성주기지 환경영향평가 추진 계획 보고’에 따르면 군사시설기획관은 “중국은 양국이 합의한 3불 1한이 유지돼야 한다는 입장이며, 지상반입에 대해서는 큰 거부감을 보이지 않았음”이라고 국방부 장관에게 보고했다. 지난해 8월 9일 박진 외교부 장관과 왕이 외교부장 간의 한중외교장관회담에서 처음 불거진 1한 논란이 양국 합의의 결과였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 “안보농단” 감사 촉구에도 ‘한중관계 관리’ 명분 들어 소극 대응도
20일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최고위원회의에서 김기현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는 20일 최고위원 회의에서 사드 환경영향평가 고의지연 의혹에 대해 “중국몽, 북한몽에 취해 안보 농단을 자행한 인사들에 대해서는 신분과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성역 없는 감사원 감사와 수사당국의 수사가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사드 운용 정상화를 고의 지연한 것도 모자라 국민 앞에 뻔뻔하게 ‘3불 1한’ 약속의 존재를 부정하는 거짓말을 하고 은폐하기까지 한 불법 행위는 결코 묵과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윤재옥 원내대표도 “사드 배치와 관련한 전 정부의 대응은 의혹 투성이”라며 “이것이야말로 국기문란이며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일”이라며 “철저한 감사원 감사와 검찰 수사가 불가피해 보인다”고 비판했다. 박대출 정책위의장도 “도대체 누구의 지시로 이런 안보 농단이 벌어졌느냐”라며 “혼밥 방중을 되풀이하지 않으려고 중국에 줄 선물이 필요했던 것이냐”라며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답변을 촉구했다.
국민의힘은 국방위원회 외에도 외교통일위원회를 중심으로 외교부에 한중관계 개선 실무협의나 미국과의 의견 교환 관련 문건들이 다수 있을 것으로 보고 감사원 감사 청구를 위한 최대한 자료 확보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여권 일각에선 한중관계 관리 및 국익을 두루 고려해 외교문서까지 공개하는 것은 피하자는 의견도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