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이면 학교 앞까지 딸을 태워다주는 편이다. 요즘은 매일 비가 와서 아침마다 태워다주고 있다. “비 오니까 우산 챙겨라!” 귀에 딱지가 앉도록 얘기해도 딸은 우산을 잘 챙기지 않는다. 하긴 나도 중학교 다닐 때 엄마 말 잘 안 들었으니까, 딱히 나무랄 입장은 못 된다. 그래서 나는 차에 예비 우산을 몇 개 가지고 다닌다. 어제도 우산을 안 챙겼길래 트렁크에 있는 우산을 줬는데 오늘 또 우산을 안 챙긴 딸. 난 아무 말 안 하고 트렁크에서 새로운 우산을 또 챙겨 줬다. 고맙다고 윙크를 하고 뒤돌아서 뛰어가는 딸을 보니 초등학교 5학년 때가 떠올랐다.
그날은 탄금대로 가을 소풍을 간 날이었고, 아침에는 날씨가 좋았기에 선생님이나 학생이나 아무도 우산을 챙기지 않았다. 그런데 오후가 되면서 갑자기 먹구름이 밀려오더니 소나기가 내렸다. 보물찾기를 하는 와중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장대비가 쏟아지자 학생들은 비를 피하기 위해 박물관이 있는 건물 처마 밑으로 몰려들었다. 선생님들이 모여서 잠시 회의를 하시더니, “소풍 행사를 종료할 테니 모두 집으로 돌아가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우리는 삼삼오오 모여서 버스 정류장 쪽으로 걸어갔는데, 탄금대 앞에는 이미 많은 부모님들이 우산을 들고 서 계셨다. 아들, 딸 이름을 부르며 우산을 건네주시는 엄마 아빠들. 나는 목을 빼고 주위를 둘러봤지만 우리 엄마는 그 자리에 안 계셨다. 나는 괜히 심통이 나서 한 시간 넘게 비를 맞으며 집까지 걸어왔다. 소풍 간다며 아침에 나간 아들이 물에 빠진 생쥐 꼴로 집에 들어오니 엄마는 놀란 얼굴로 수건을 갖다주시며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셨다. “다른 엄마들은 다 우산 갖고 와서 기다리는데 엄마는 왜 안 왔어! 다른 애들은 다 우산 쓰고 집에 가는데 나만 우산 없어서 비 다 맞고 걸어왔잖아!” 나는 엄마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하고는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가 대성통곡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왜 그렇게 모질게 말했나 싶은데, 그때는 나도 어렸고, 사춘기였고, 내 마음이 내 마음이 아니었던 시절이었다. 그날 이후 엄마는 비 소식만 있으면 “비 오니까 우산 챙겨!”라는 말을 빼놓지 않으셨다.
나는 그 일이 그렇게 일단락된 줄 알았다. 그런데 엄마가 나이가 드시고 흰머리 수북한 할머니가 되셨을 때 문득 그 얘기를 꺼내셨다. “나는 너한테 아직도 미안한 게 있어.” “미안한 거요?” “너 5학년 때 탄금대로 소풍 갔던 날, 갑자기 비가 내렸을 때 그때 엄마가 우산 못 갖다준 게 아직도 미안해.” “아휴, 그건 그냥 제가 어렸으니까 투정 부린 거죠.” 나는 대수롭지 않게 흘려보냈는데 엄마는 이후에도 세 번을 더 말씀하셨다. “엄마는 너 5학년 때 소풍 가서 비 왔을 때 우산 못 갖다준 게 아직도 제일 미안해.” 마지막으로 말씀하신 건 돌아가시기 1년 전, 눈물샘이 말랐는지 더 이상 눈물도 나오지 않는 눈으로 엄마는 또 말씀하셨다.
그때는 몰랐다. 부모 마음이 이런 거라는 걸. 그 작은 우산 하나 못 갖다주신 게 평생 마음에 남아 사과하시고 또 사과하시는 그 마음이 부모님 마음이라는 걸. 우산을 쓴다고 비를 안 맞는 건 아니다. 우산을 써도 바짓단은 다 젖고 신발도 젖는다. 그러나 쏟아지는 빗속에서 그 작은 우산이라도 하나 씌워주고 싶고, 한 평도 안 되는 그 작은 공간이 부모가 줄 수 있는 최소한의 마음이라는 걸 그때는 알지 못했다. 어쩌면 내일도 비가 오고, 우리 딸은 또 우산을 안 챙길지도 모르지만 나는 기꺼이 새 우산을 챙겨 줄 마음이 있다.
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