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복식문화사’ 학술회의 겹겹의 속치마 대신한 말총 속치마 명나라 ‘패션의 도시’ 남경까지 유행 “제주-中강남지역 문화교류 보여줘”
조선후기 풍속화가 신윤복의 ‘미인도’ 속 여성이 입고 있는 한복 치마는 우산을 활짝 펼친 것처럼 풍성한 모습이다(왼쪽 사진). 이에 비해 당나라 때 그림 ‘잠화사녀도(簪花仕女圖)’ 속 여성과 일본의 병풍 ‘화하유락도(花下遊樂圖)’ 속 여성, 베트남 전통 옷을 입은 여성(왼쪽에서 두 번째 사진부터)의 복식은 흘러내리는 ‘H라인’ 형태로 유사하다. 간송미술관·동북아역사재단 제공
“마미군(馬尾裙·말총으로 만든 속치마)은 조선에서 시작돼 경사(京師·수도)로 유입됐다. 처음에는 부유한 상인과 귀공자, 기생들이 입었는데 이후 귀천을 막론하고 마미군을 입는 사람이 날로 많아져 정부 고위 관료들까지 입었다.”
명나라 관료 육용(1436∼1497)의 문집 ‘숙원잡기(菽園雜記)’의 한 대목이다. 겉치마를 우산처럼 펼쳐지게 만드는 조선의 속치마 마미군이 당대 명나라에서 대유행했음은 여러 사료를 통해 잘 알려져 있다. 이 마미군이 전통적 한중관계의 외곽에 놓였던 제주와 중국 강남 지역의 직접적 문화 교류를 보여주는 귀한 사례라는 분석이 나왔다.
구도영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명나라의 조선 드레스 열풍과 조선 전기 여성 한복’이라는 발표문에서 “제주의 마미군이 중국의 ‘강남 스타일’이 됐다”고 분석했다. 구 연구위원은 동북아역사재단과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21일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공동주최하는 학술회의 ‘한국복식문화사: 한국의 옷과 멋’에서 이 연구 결과를 발표한다.
조선인이 합법적으로 갈 수도 없던 소주에서 마미군이 유행했던 까닭은 무엇일까. 1488년 경차관으로 제주에서 배를 탔다가 표류해 중국 강남 지역에 도착한 최부에게 한 중국인은 “종의(鬃衣·말총으로 만든 옷)가 있느냐”고 물었다. 그보다 앞서 1482년 같은 지역에 표류해 왔던 제주의 수령 이섬은 마미군을 팔았다는 것이었다. 구 연구위원은 “15세기 제주와 명나라 사이 해상 교류가 지속적으로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마미군은 조선 치마의 고유한 특징을 보여주는 의복이다. 중국 치마가 볼륨감이 없는 ‘H라인’ 중심이었던 데 비해 조선은 풍성한 ‘A라인’ 치마가 유행했다. 내륙에선 겹겹의 속치마를 껴입었지만 말총이 흔했던 제주에선 마미군을 만들어 받쳐 입는 게 훨씬 경제적이었다. 구 연구위원은 “19세기 유럽에서도 치마를 풍성하게 연출하기 위해 말총을 활용해 페티코트(속치마)를 만들었는데, 동아시아의 말총 페티코트는 조선에서 탄생했던 것”이라며 “중국은 주변국에 문화를 전파하기만 한 것처럼 설명하는 경우가 많지만 마미군을 통해 문화는 상호 교류하는 것임을 재확인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학술회의에서는 우리 고대 복식이 북방 유라시아 전역에 퍼져 있던 스키타이계 문화권에 포함돼 있었다고 본 ‘한국 복식의 원류와 삼국시대 복식’(김문자 수원여대 명예교수), 복잡한 외교 관계 속 고려의 복식문화를 조명한 ‘고려시대 복식과 고려양(高麗樣)’(김윤정 서울역사편찬원 전임연구원), ‘동아시아 문화의 공유와 변용, 조선의 단령’(이은주 안동대 교수), ‘조선 후기 여성 패션과 아름다움’(이민주 한국학중앙연구원 연구원), ‘갓과 모자의 나라, 조선’(이주영 동명대 교수) 등이 발표된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