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부산항에서 출발해 일본 규슈지방을 다녀오는 3박4일짜리 크루즈선 여행을 했다. 나가사키와 구마모토에서 각각 하루씩 기항을 하고 부산항으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일본 나가사키 항구.
나가사키는 1571년에 포르투갈선이 처음 입항했던 항구로, 쇄국정책을 펼치던 에도시대 때 유일하게 외국에 개방한 도시다. 오페라 ‘나비부인’의 배경이 된 서양인들의 주거지였던 글로버가든, 유황 온천수가 솟아오르는 운젠지옥계곡 등을 구경할 수 있다. 또한 구마모토에서는 가토 기요마사의 성으로도 유명한 구마모토성과 수전사 공원 등이 관광 포인트다. 기항지 항구에 내려서 자유롭게 시내를 도보로 걸으면서 쇼핑을 하는 사람도 있고, 관광버스를 타고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점심식사가 포함된 패키지 여행을 하기도 한다.
나가사키 항구에서 크루즈 승객들을 환영하는 현지 연주자들.
나가사키 항구에 배가 정착하니 유서깊은 서양식 석조건물과 근대적인 항구도시 유적이 어우러져 있었다. 아침부터 비가 내리는 가운데 크루즈선에서 입국수속을 끝내고 관광버스를 타러 가는데, 일본의 전통 의상을 입은 남녀 연주자들이 환영의 음악을 연주했다. 보라색 의상을 입은 남자는 북을 치면서 쇠를 울리고, 기모노를 입은 여성들은 피리와 나팔, 서양의 관악기까지 불어가며 나긋나긋한 음조의 노래를 연주한다. 이들은 한국에서 온 크루즈 관광객들을 향해 “안녕하세요~” “곤니치와~”하며 손을 흔든다. 비가 오는 날에도 밝게 웃으며 연주를 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참 인사성이 밝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 크루즈 관광객에게 인사를 하는 현지 연주자들.
그런데 나가사키 관광을 마치고 오후 5시경 다시 크루즈선인 코스타세레나호로 돌아오는 데 이번에는 현지 고등학생들로 구성된 오케스트라가 마중나왔다. 배가 정박해 있는 항구의 앞 마당에서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 수십명이 트럼펫, 호른, 트럼본 등 금관악기와 팀파니, 드럼, 베이스 등 타악기와 전자악기를 갖춘 밴드를 형성해 공연을 하기 시작했다. 고교생들은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커다란 깃발을 휘두르며 춤을 추고, ‘오페라의 유령’ ‘캣츠’ 등 뮤지컬 음악과 팝송까지 연주하며 흥겹게 율동을 선보였다. 크루즈 승객들은 객실 창문 발코니에서, 갑판 위에서 일본 고교생들의 공연을 흥미롭게 지켜보며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그러면서도 계속해서 드는 의문. 고등학생 밴드들까지 동원해서 왜 이렇게 친절하게 환영을 해주는거지?
나가사키 항구에서 크루즈선이 정박해 있는 앞마당에서 환영 연주를 들려주는 일본 고교생들.
구마모토 항구에서 크루즈 승객들을 환영하는 동네 주민 오케스트라.
크루즈선이 기항하는 일본의 지자체와 항구도시의 주민들은 왜 이렇게 크루즈 승객들을 극진히 환영의 인사를 하고 있는 것일까? 바로 크루즈의 경제적 효과 때문이다. 기항지에 내린 승객들은 적게는 200~3000명, 많게는 5000명이 넘는 승객이 동시에 내려서 5~7시간 동안 짧고 굵게 돈을 쓰고 간다. 크루즈선 1대가 기항지에 입항하면 승객 200여 명이 타는 대형 비행기 10대 이상에 맞먹는 효과를 낳게 된다.
나가사키 시내 전경.
크루즈 승객들은 이름난 자연경관과 문화유산만 관광하고 가는 것이 아니다. 나가사키, 구마모토의 관광코스 곳곳에는 면세점과 쇼핑센터가 활황이다. 크루즈의 특성상 공항 면세점을 이용할 수 없기 때문에, 관광객들은 배에 오르기 전에 쇼핑센터에 들러 과자, 초콜릿, 사케, 위스키, 건강식품, 전자제품 등을 구입해 양손 가득 선물을 사서 배에 오른다.
나가사키 항구의 오래된 서양인 거주지였던 글로버가든. 오페라 ‘나비부인’의 배경으로 알려진 이 저택에서는 항구의 전경이 훤하게 들어온다.
1863년 영국의 상인 토마스 블레이크 글로버 일가가 살기 위해 지었던 구 글로버 저택.
글로버 가든에 세워져 있는 오페라 ‘나비부인’의 작곡가 자코모 푸치니 조각상.
오페라 ‘나비부인’의 초초상 역을 2000회 이상 연기했던 일본 소프라노 미우라 타마키(三浦環)의 동상.
우리나라의 경우 부산, 인천, 속초, 여수, 제주, 서산 등 6개 지자체에서 크루즈선 입항을 유치하려고 하고 있다. 국내 크루즈선 입국자는 2019년 한해에만 27만 명을 기록했지만, 코로나 19 확산에 따른 크루즈선 입항 전면금지로 관련 산업이 큰 타격을 입었다.
팬데믹 이후 전세계에서 크루즈 여행이 다시 본격화하자 아시아 시장에서도 각국 지자체들의 기항지를 선점하려는 유치 경쟁이 심해지고 있다. 아시에서는 현재 엔저를 타고 일본이 기항지로 가장 인기라고 한다. 대만~오키나와를 오가는 크루즈는 벌써 활황이고, 한국~일본~대만을 오가는 노선, 싱가포르, 필리핀, 태국 등도 본격적인 유치경쟁을 벌이고 있다.
나가사키항에 정박한 크루즈선 코스타세레나호.
구마모토성.
●크루즈 여행정보올해 여름과 가을 시즌에는 부산, 속초, 제주 등지에서 일본 규슈, 홋카이도, 오키나와, 대만 타이베이 등으로 가는 다양한 크루즈선이 출발한다. 겨울 시즌에는 따뜻한 홍해 크루즈가 인기다. 홍해 크루즈는 이집트, 요르단, 사우디아라비아 등 3개국을 10일간 여행하는 코스다. 출발은 올해 11월 24일, 12월 8일, 22일, 내년 1월 26일 등 4차례. 항공편으로 카이로로 이동한 후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를 체험한 뒤 수에즈만 인근의 수크나항에서 크루즈여행을 시작한다. 요르단의 페트라와 알아카바, 사우디아라비아의 제다, 이집트 룩소르 등지를 여행한다. 9만2000t 규모에 길이가 290m에 이르는 ‘MSC오케스트라’호에는 승객 2600명, 승무원 900명이 승선한다.
나가사키·구마모토=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