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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장원재]지하차도 50cm 침수 규정, 이렇게는 안 된다

입력 | 2023-07-21 23:48:00

합리적·보편적이지 않고 설명도 엉터리
참사 반복 막으려면 적당주의 버려야



장원재 사회부장


15일 충북 청주시 오송읍 지하차도 참사 발생 직후 충북도는 “매뉴얼상 지하차도 중심에 물이 50cm 이상 차올라야 교통 통제를 하는데 제방 붕괴 전 그런 징후가 없었다”고 해명했다. 제방이 무너지고 순식간에 강물이 밀려들면서 미처 통행을 제한할 수 없었단 취지였다.

나중에야 50cm 침수 규정이 통제 요건 5개 중 1개일 뿐이며 다른 요건 일부를 충족해도 교통 통제가 가능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하지만 필자에겐 충북도의 해명에 포함된 50cm라는 수치가 공직사회의 적당주의를 여실히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째, 충북도는 논란이 되자 “승용차 타이어 반 바퀴인 50cm를 교통 통제 기준으로 정했다. 그 이상이면 차량 운행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 설명은 엉터리였다.

국내 승용차 타이어의 최대 지름(외경)은 60∼70cm이고, 그 절반은 30∼35cm다. 또 행정안전부 재난안전관리본부는 타이어 ‘절반’이 아니라 ‘3분의 2 이상’ 물이 차면 엔진룸으로 물이 들어가기 때문에 운전이 어렵다고 설명하고 있다. 충북도 기준대로 50cm 침수될 경우 이미 승용차 대부분 엔진룸에 물이 들어간 다음이라 대피할 수 없다는 뜻이다. 필자와 통화한 35년 경력의 재난 전문가도 “옆 차를 보고 타이어 절반(30∼35cm)이 잠기면 대피 준비를 하고, 3분의 2(40∼46cm)가 잠기면 차를 버리고 나와야 한다”고 했다.

둘째, 수심이 50cm인 경우 이미 지하차도로 진입한 자동차 운전자들이 차를 버리고 대피하기 어렵다. 재난안전관리본부에 따르면 성인 기준으로 남성은 수심 70cm, 여성은 50cm, 그리고 초등학교 5∼6학년은 20cm 이상이면 보행이 곤란하다. 이 때문에 수심이 20cm 이하일 때 대피를 권고한다. 이번처럼 경사진 지하차도 위에서 대량의 물이 세차게 밀려드는 경우 보행 가능 수심은 더 낮아질 수밖에 없다. 2014년 국립재난안전연구원 실험에선 무릎 높이에 해당하는 45.5cm 이상 침수된 상태에서 계단을 오를 경우 남녀를 불문하고 대피할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셋째, 참사가 난 지하차도는 상습 범람 하천인 미호강과 불과 300∼400m 떨어져 있다. 이번처럼 미호강이 범람할 경우 지대가 낮은 해당 지하차도는 급속히 침수될 수밖에 없는데, 다른 지하차도처럼 50cm 침수 여부를 따지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지자체가 교통 통제 기준을 정하더라도 하천 인근 지하차도에는 별도 기준을 적용하는 게 맞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충북도의 50cm 규정은 합리적이지도 않지만 보편적이지도 않다. 지하차도 통행 제한 수심은 서울은 10cm, 부산은 10∼15cm다. 서울시 관계자는 “서울은 인구가 많은 만큼 피해를 줄이기 위해 선제적 기준을 정한 것”이라고 했다.

이번 참사를 두고 지난해 경북 포항 아파트 지하주차장 참사, 3년 전 부산 초량지하차도 참사와 판박이란 말이 나온다. 제 역할을 못 한 관리자, 급속히 유입된 물, 부실했던 방재 설비 등 공통점이 많기 때문이다. 차이가 있다면 희생자 수가 3명, 7명, 14명으로 갈수록 커졌다는 것이다.

앞으로도 지하공간 침수 사고는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지하공간 활용이 늘어나는 동시에 극한호우 등 이상기후가 일상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향후 지하에서 대형 참사가 벌어지는 걸 막기 위한 시작은 50cm 침수 규정에서 보여지는 적당주의를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면밀한 검토를 통해 보다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방재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



장원재 사회부장 peacechao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