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젠장, 내 콜레스테롤 수치가 어때서” 미국 대통령 건강검진 기록 들춰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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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통 때문에 치과 치료를 받은 조 바이든 대통령. 치통은 아이스크림 때문으로 추정된다. 백악관 홈페이지
The press said, ‘Well, was he unconscious?’ Unfortunately, no, I was wide awake.”
(언론이 ‘그는 의식을 잃었느냐’라고 묻던데 미안하지만 아니다. 나는 정신이 또렷했다)
요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치통 때문에 고생이 많습니다. 치통은 아이스크림 등 단 음식을 즐기는 식습관 때문으로 추정됩니다. 얼마 전 치과 치료를 받느라 공식 일정을 줄줄이 연기했습니다. 대통령이 치료를 받으면 백악관은 관련 정보를 공개해야 합니다. 보도자료에는 아픈 치아 번호(29번), 치료 방법(신경치료), 치료 장소(백악관 내 치과 수술실), 치료팀 이름(월터 리드 국군병원 대통령 치과팀), 치료 기간(이틀), 통증 수준(예상범위), 환자 반응(잘 이겨냈음) 등이 자세히 실려 있습니다.(언론이 ‘그는 의식을 잃었느냐’라고 묻던데 미안하지만 아니다. 나는 정신이 또렷했다)
치료를 마친 뒤 공식 행사에 나타난 바이든 대통령은 “언론은 내가 의식을 잃었는지 묻던데 나 멀쩡했거든”이라며 웃어넘겼습니다. 국부마취여서 정신을 잃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be 동사 다음에 ‘awake’(깨어있는)가 나오면 ‘의식이 있다’라는 뜻입니다. 의미를 강조하고 싶다면 앞에 ‘wide’를 넣으면 됩니다. 이럴 때는 ‘넓은’이라는 형용사가 아니라 ‘온전히’ ‘진짜’라는 부사입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간단한 치과 치료에 언론이 호들갑을 떤다는 뉘앙스로 말했지만, 미국은 대통령의 건강에 지대하게 관심이 많은 나라입니다. 국정 최고책임자의 건강은 아무리 사소한 정보라도 국민이 알 권리가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권력자의 건강 문제를 일종의 접근금지 구역으로 보는 한국 문화와 크게 다릅니다. 미국 대통령은 정기 검진 기록에서부터 사소한 치과 진료 내역까지 모두 공개 대상입니다. 국민은 대통령의 키 몸무게는 물론, 혈압 콜레스테롤 체질량지수 심박수까지 알 수 있습니다. 수술 경력, 복용 약도 가차 없이 드러납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고령이라서 더욱 관심을 받는 것입니다. 건강검진 기록에 나타난 미국 역대 대통령들의 건강상태를 알아봤습니다.
딸과 함께 자전거를 타며 건강을 챙기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 백악관 홈페이지
Uncorrected visual acuity(distant and near) is 20/20 in both eyes.”
(교정하지 않는 양쪽 눈의 원거리 근거리 시력은 모두 양호하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재임 기간 8년 동안 4차례 정기 건강검진을 받았습니다. 그때마다 ‘올 A’급 검진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특히 많은 부러움을 산 것은 오바마 대통령의 시력입니다. 나이가 들면 시력이 약화하고 노안 증상을 겪기 쉽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55세 때인 2016년 건강검진 기록을 보면 교정하지 않은 원거리 근거리 시력이 모두 ‘20/20’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비슷한 연령대의 역대 대통령들이 대부분 시력 교정용 안경을 쓴 것과 대조적입니다. (교정하지 않는 양쪽 눈의 원거리 근거리 시력은 모두 양호하다)
맥도널드 레스토랑에서 식사하고 나오는 빌 클린턴 대통령. 빌 클린턴 대통령 도서관 홈페이지
What the heck, it was my last time.”
(젠장, 마지막이었어)
2001년 빌 클린턴 대통령 퇴임 일주일을 앞두고 마지막 건강검진 결과가 공개됐습니다. 내용은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동안 열심히 먹은 햄버거, 감자튀김 때문에 콜레스테롤 수치가 233까지 올랐습니다. 나쁜 콜레스테롤은 177로 이전(134)보다 크게 올랐습니다.(젠장, 마지막이었어)
주치의는 “영양 불균형 식단, 이동 중 음식을 먹는 바쁜 일정, 긴 업무 시간, 운동 부족”을 이유로 꼽았습니다. 클린턴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애써 태연한 척을 했습니다. ‘what the heck’은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했을 때 ‘아이고, 나도 몰라’의 의미로 후회와 배짱이 뒤섞인 말입니다. “임기 마지막인데 뭐 어떠냐”라는 것입니다. 크리스마스 명절 때 과식한 케이크를 탓하며 6개월 이내에 콜레스테롤 수치를 정상으로 돌려놓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하지만 퇴임 후에도 식습관을 고치지 못해 4년 뒤 막힌 심장 혈관을 대체하는 관상동맥 우회술을 받았습니다. 2010년 2차 수술을 받은 뒤에야 채식주의자로 변모했습니다.
1975년 백악관 수영장 완공식에서 수영 시범을 보이는 제럴드 포드 대통령. 백악관역사협회(WHHA) 홈페이지
The completion of the new White House swimming pool provides him with short intervals for relaxation.”
(새로운 백악관 수영장의 완공은 대통령에게 짧은 휴식 주기를 마련해준다)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백악관 웨스트윙에서 브리핑룸으로 가는 길목에 야외 수영장이 있습니다. “백악관에 웬 수영장?”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외출하기 쉽지 않은 대통령 가족의 휴식처와 같은 곳입니다. 오바마 대통령, 힐러리 클린턴 여사, 바버라 부시 여사 등이 즐겨 이용했습니다. (새로운 백악관 수영장의 완공은 대통령에게 짧은 휴식 주기를 마련해준다)
수영장을 만든 것은 제럴드 포드 대통령입니다. 재임 기간이 2년 6개월로 짧은 포드 대통령의 최대 업적은 백악관에 수영장을 만든 것이라는 농담까지 있습니다. 집에 수영장이 있을 정도로 수영광인 포드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백악관 수영장 건설 계획에 착수했습니다. 하지만 전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불명예 퇴진한 터라 주변에서는 수영장 계획을 탐탁지 않게 여겼습니다. 재선에 성공한 뒤 만들라는 충고가 많았지만, 포드 대통령은 밀고 나갔습니다. ‘백악관 수영장 건설 태스크포스’가 꾸려졌습니다. 현재 금액으로 28만 달러(3억6000만 원)에 달하는 건설 예산은 세금이 아닌 사적 기부금으로 충당했습니다.
1975년 포드 대통령 취임 1년 만에 길이 15m, 폭 6m의 수영장이 완공됐습니다. 기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대통령은 가운을 벗고 수영복 차림으로 물에 뛰어들었습니다. 백악관 수영장은 포드 대통령 건강검진 기록에도 등장합니다. 업무 틈틈이 신체를 단련하는 데 수영장이 도움을 주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반대를 뚫고 만든 수영장인만큼 잘 사용되고 있다는 홍보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검진 기록에는 14분대에 수영장을 24바퀴 돈다는 포드 대통령의 주파 실력도 나옵니다.
명언의 품격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주치의 해럴드 본스타인 박사. 위키피디아
If elected, Mr. Trump, I can state unequivocally, will be the healthiest individual ever elected to the presidency.”
(만약 트럼프가 당선된다면 역대 대통령직에 선출된 사람 중에 가장 건강하다는 것이라고 명백하게 말할 수 있다)
다른 대통령들과 구체적인 비교 없이 “unequivocally” “healthiest” 등의 단어를 써서 트럼프 후보의 건강을 역대 최상급으로 평가한 것은 황당하다는 지적을 낳았습니다. 110/65 수준인 혈압에 “astonishingly excellent”(기가 찰 정도로 훌륭한)라는 수식어가 붙었습니다. 과장된 수식어들이 자주 등장하는 소견서는 정작 틀린 철자는 고치지 않았습니다. 편지 첫 문장에 흔히 등장하는 “To Whom It May Concern”(관계자분에게)을 “To Whom My Concern”이라고 잘못 썼습니다. (만약 트럼프가 당선된다면 역대 대통령직에 선출된 사람 중에 가장 건강하다는 것이라고 명백하게 말할 수 있다)
수준 미달인 본스타인 박사의 소견서에 “odd”(독특하다)라는 조롱이 잇따랐습니다. 어쨌든 소견서가 발표된 뒤 트럼프 대통령은 “좋은 유전자를 물려받은 덕분”이라고 행복한 소감을 밝혔습니다. 나중에 대통령 주치의 자리에서 밀려난 본스타인 박사는 소견서를 자신이 작성한 것이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이 부르는 대로 받아쓴 것이라고 실토했습니다.
실전 보케 360
백악관에서 열린 독립기념일 불꽃놀이 행사에 어린 딸을 안고 참석한 대통령 아들 헌터 바이든(오른쪽). 백악관 홈페이지
I’ll just leave it there.”
(이 정도에서 그만두겠다)
‘leave’는 ‘떠나다’ ‘남겨두다’라는 뜻입니다. 이별을 통보하는 연인에게 “don’t leave me”이라고 하면 “나를 떠나지 마” “나를 남겨두지 마”라는 뜻입니다. 잔피에어 대변인의 말에서 ‘it’는 ‘한창 진행되던 대화’를 말합니다. 대화를 거기에(there) 남겨두겠다(leave)는 것은 ‘더는 언급하지 않겠다’라는 것입니다. 할 얘기는 많지만 계속해봤자 상대를 이해시킬 수 없을 때 씁니다. 양측의 논쟁이 계속될 때 한쪽에서 “let’s leave it there”라고 하면 “이쯤하고 그만두고 다음 주제로 넘어가자”라는 것입니다. “leave it at that”(그 지점에 남겨두다)도 똑같은 뜻입니다.(이 정도에서 그만두겠다)
이런 저런 리와인드
동아일보 지면을 통해 장기 연재된 정미경 기자의 이런 영어 저런 미국 칼럼 중에서 핵심 아이템을 선정해 그 내용 그대로 전해드리는 코너입니다. 2019년 11월 18일 소개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연방 대법관에 관한 내용입니다. 최근 대법원이 대입, 낙태, 소수자 보호 등에서 보수적인 판결을 잇달아 내놓으면서 긴즈버그 대법관을 그리워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2020년 긴즈버그 대법관 타계로 대법원은 보수 우위 체제가 확실하게 굳어졌습니다. 투병 중에도 꼿꼿하게 법원을 지킨 긴즈버그 대법관은 일에 대한 열정, 소신 있는 발언, 젊은 감각으로 가장 인기 있는 법관으로 통했습니다.▶2019년 11월 18일 PDF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191118/98411204/1
1993년 윌리엄 렌퀴스트 연방대법원장 앞에서 취임 선서를 하는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 위키피디아
최근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연방 대법관이 암이 재발해 치료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언론에는 “조속한 회복을 바란다.”라는 글이 넘쳐나고, 그녀의 건강을 기원하는 격려 카드까지 발매됐습니다. 다섯 번이나 암과 사투를 벌여야 한다는 것은 매우 불행한 일이지만 그래도 위로해주는 이들이 이렇게 많으니 그녀는 복 받은 사람입니다. ‘진보의 아이콘’이자 말도 똑 부러지게 잘하는 긴즈버그 대법관의 발언들을 모아봤습니다.
I would remain a member of the Court as long as I can do the job full steam.”
(전력으로 일을 할 수 있는 한 법원의 일원으로 남겠다)
긴즈버그 대법관이 최근 연방대법원 홈페이지에 올린 글입니다. “법원의 일원으로 남겠다”라는 것은 “은퇴하지 않겠다”라는 다짐입니다. 현재 보수 쪽으로 기울어진 대법원 구도 속에서 자신마저 은퇴하면 안 된다는 의미입니다. 산업혁명에서 유래한 ‘full steam’은 ‘전속력’ ‘전력’이라는 뜻입니다.(전력으로 일을 할 수 있는 한 법원의 일원으로 남겠다)
All I ask of our brethren is that they take their feet off our necks.”
(내가 남성 친구들에게 부탁하는 것은 여성의 목을 밟고 있는 발을 치우라는 것이다)
긴즈버그 대법관이 좋아하는 명언이라고 합니다. 19세기 여성 운동가 사라 그림케가 한 말입니다. 상대의 목을 밟으면 숨을 못 쉬고 꼼짝 못 하게 됩니다. 여성을 옭아매는 사회적 억압을 ‘목을 밟고 있는 발’이라고 했습니다. 얼마 전 조지 플로이드 사건이 촉발한 인종차별 반대 시위에서도 비슷한 구호가 등장했습니다. 시위대는 ‘get your knee off our neck’(흑인의 목에서 백인의 무릎을 치워라)’이라고 외쳤습니다. 사건 당시 백인 경찰은 플로이드의 목을 무릎으로 눌러 사망에 이르게 했습니다. ‘brethren’(브레드렌)은 남성 동지, 교우를 말합니다. 여기서 ‘brother’(형제)가 유래했습니다.(내가 남성 친구들에게 부탁하는 것은 여성의 목을 밟고 있는 발을 치우라는 것이다)
For most girls growing up in the 40s, the most important degree was not your B.A. but your M.R.S.”
(1940년대 성장한 여성들에게 가장 중요한 학위는 대학 졸업이 아니라 결혼이었다)
1940년대 대다수 미국 여성들의 인생 목표는 교육이 아닌 결혼이었습니다. 그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긴즈버그 대법관은 하버드대 법대를 졸업했고, 이후 가정과 사회생활을 훌륭하게 양립했습니다. 향학열은 어머니 덕분이었습니다. 긴즈버그 대법관은 최근 연설에서 “당시 여성들에게 가장 중요한 학위는 대학 졸업이 아니라 결혼이라는 타이틀이었다”라고 말했습니다. B.A.는 Bachelor of Arts(학사 학위)를 말합니다. M.R.S.는 기혼 여성 칭호 Mrs를 철자 하나씩 또박또박 말한 겁니다.(1940년대 성장한 여성들에게 가장 중요한 학위는 대학 졸업이 아니라 결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