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항에서 출발해 일본 규슈 지방을 여행하는 크루즈선인 코스타 세레나호의 선상에서 감상하는 대한해협의 일출. 갑판에는 조깅코스도 있어서 떠오르는 아침 해를 배경으로 조깅을 즐기는 사람들도 있다.
크루즈 여행의 계절이 돌아왔다. 코로나19로 발이 묶였던 국내 크루즈 여행이 3년 8개월 만에 부산항, 속초항 등지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그런가 하면 홍해와 지중해 등 해외 크루즈 여행 상품도 본격적으로 손님을 모집하고 있다. 크루즈선은 배라기보다는 바다 위에 떠다니는 거대한 리조트다. 숙식은 물론이고 화려한 이벤트가 가득한 크루즈 여행은 가족과 친지, 동창과 함께라면 더욱 즐거운 단체 여행의 꽃이다.
● 크루즈 선상에서 댄스를
지난달 초 KTX 부산역에서 구름다리를 건너면 10분 만에 도착하는 부산항국제여객선터미널. 1700여 명의 승객과 1400명의 승무원이 탄 대형 크루즈선 ‘코스타 세레나’호가 정박해 있는 모습은 상상을 초월했다. 배라기보다는 11층 높이의 호텔 수십 채가 연결돼 있는 바다 위의 리조트를 연상케 했다. 승객들이 승선 수속을 마치자 크루즈선은 부산항대교 아래를 미끄러지듯 통과하며 출항했다. 코로나19로 크루즈선 운항이 중단된 지 3년 8개월여 만에 다시 시작된, 국내 항구에서 출발하는 전세 크루즈선 여행이었다. 부산항에서 출발한 이 배는 일본 규슈(九州) 지방의 나가사키(長崎)와 구마모토(熊本)에서 기항지 여행을 하고 되돌아오는 3박 4일짜리 코스였다.
크루즈선의 갑판에 있는 야외 수영장과 워터슬라이드 시설. 시원한 바다 풍경을 즐기며 수영장 물에 풍덩 빠지는 이색적인 경험을 할 수 있다.
크루즈 여행은 부모님 환갑이나 칠순을 맞아 형제 자매 가족끼리 온 사람들도 있고, 동창회와 향우회, 동호회원들끼리 온 단체 여행객들이 많았다. 세 형제가 부양 가족들과 함께 여행을 온 김현수 씨(52)는 “가족끼리 여행을 해봤어도 이렇게 많은 대화를 한 것은 처음”이라며 “한배를 타고 여유롭게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이 크루즈 여행의 묘미”라고 말했다.
바다가 바라보이는 정찬 레스토랑.
크루즈선 안에서 즐기는 대극장 공연.
선내 곳곳의 크고 작은 무대에서도 파티가 이어진다. 남성들은 여전히 아웃도어 차림이 많은 반면에 여성들은 대부분 파티용 드레스를 챙겨 와 갈아입고 나온 모습이 놀라웠다. 그중에서 가장 이목을 끄는 사람들은 전국에서 온 라틴댄스 동호회 회원들. 이들은 필리핀 악단이 직접 연주하는 탱고, 바차타, 왈츠 음악에 맞춰 날아갈 듯 춤을 추었다. 10여 년 전부터 동호회원들과 함께 아시아뿐 아니라 지중해, 알래스카, 멕시코 등 크루즈 여행을 주최해온 임상용 씨는 “크루즈선에서 춤을 추는 것은 라틴댄스를 배우는 사람들에게는 평생의 로망”이라며 “취미로 댄스를 배우던 사람들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화려한 선상 무대에서 춤을 추면 가슴이 벅차 오른다”고 말했다.
크루즈선의 바다 전망 객실 내부.
크루즈선 사우나의 휴식 공간.
유리창을 통해 하늘이 보이는 사우나 풀.
● 크루즈 승객들에 대한 열렬한 환영
부산항에서 출발한 크루즈선은 일본의 나가사키와 구마모토에서 각각 하루씩 기항지 관광을 한다. 나가사키는 1571년에 포르투갈선이 입항했던 항구로, 쇄국정책을 펼치던 에도시대 때 유일하게 해외에 개방한 도시다. 오페라 ‘나비부인’의 배경이 된 서양인들의 주거지였던 글로버가든, 유황 온천수가 솟아오르는 운젠지옥계곡 등을 구경할 수 있다. 또한 구마모토에서는 가토 기요마사의 성으로도 유명한 구마모토성이 관광 포인트다. 나가사키 항구에서 크루즈선 승객들을 환영하는 일본 연주자들.
크루즈선이 기항하는 일본의 지자체와 항구도시 주민들은 왜 승객들을 극진히 환대하고 있는 것일까? 바로 크루즈의 경제적 효과 때문이다. 크루즈선 1대가 기항지에 입항하면 2000∼3000여 명의 승객이 동시에 내려 식사와 쇼핑 등으로 돈을 쓰고 간다. 이는 200여 명이 탑승하는 대형 비행기 10대에 맞먹는 효과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크루즈 관광객들이 기항지에서 지출하는 금액은 1인당 평균 700달러(약 90만 원) 이상이다. 이는 비행기 등 다른 여행수단을 통해 찾아오는 관광객의 평균 지출액에 비하면 3배 이상 많다. 이뿐 아니다. 크루즈선은 기항지 항구에서 정박할 때마다 물과 식자재, 연료를 보충하기 때문에 지자체로서는 막대한 수입이 생기게 된다. 우리나라도 코로나19로 중단됐던 해외 크루즈선을 유치하기 위해 부산, 인천, 속초, 여수, 제주, 서산 등 6개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 크루즈 여행 정보올해 여름과 가을 시즌에는 부산, 속초, 제주 등지에서 일본 규슈, 홋카이도, 오키나와, 대만 타이베이 등으로 가는 다양한 크루즈선이 출발한다.
겨울 시즌에는 따뜻한 홍해 크루즈가 인기다.
11월에 출발하는 홍해 크루즈는 이집트, 요르단, 사우디아라비아 등 3개국을 10일간 여행하는 코스다.
항공편으로 카이로로 이동한 후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를체험한 뒤 수에즈만 인근의 수크나항에서 크루즈 여행을시작한다. 요르단의 페트라와 아까바, 사우디아라비아의 제다, 이집트 룩소르 등지를 여행한다. 9만2000t 규모에 길이가 290m에 이르는‘MSC오케스트라’호에는 승객 2600명, 승무원 900명이 승선한다. 출발은 올해 11월 24일, 12월 8일, 22일, 내년 1월 26일 등 4차례. 문의는 크루즈여행닷컴.
글·사진 나가사키·구마모토=전승훈 기자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