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부동산원, 청약제도 해설서 7개월 만에 개정판 2: 청약제도 45년 간 162번 수정으로 누더기 평가 3: 불임자 우대에서 다자녀가구 우대로 바뀌기도 4: 제도 안정성 높일 제도적 보완 방안 마련 필요
황금알: 황재성 기자가 선정한 금주에 알아두면 좋을 부동산정보매주 수십 건에 달하는 부동산 관련 정보가 쏟아지는 시대입니다. 돈이 되는 정보를 찾아내는 옥석 가리기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동아일보가 독자 여러분의 수고를 덜어드리겠습니다. 매주 알짜 부동산 정보를 찾아내 그 의미를 정리해드리겠습니다.
청약제도는 1978년 5월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이 제정되면서 현재와 같은 모습을 갖췄다. 이전까지는 민영아파트의 경우 단순 추첨방식으로 공급됐다. 사진은 1975년 서울 송파구 잠실 아파트 분양 현장에 신청자들이 장사진을 이룬 모습이다. 동아일보 DB
“대한민국 모든 국민들에게 이 책이 주택 마련의 꿈을 이룰 수 있는 믿음직한 길잡이이자 친구가 되기를 바랍니다.”
한국부동산원이 지난해 11월 발행한 책 ‘주택청약의 모든 것’의 서문에 실린 인사말입니다. 부동산원은 또 “지금까지 제대로 정리되어 있지 않던 청약제도의 탄생과 역사, 유형별 신청 자격과 당첨자 선정방식, 그리고 청약홈 시스템 메뉴의 설명까지 총망라했다”며 “좀 더 쉽게 청약제도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한 글자, 한 글자 고심하여 작성했다”고 밝혔습니다.
3장(‘특별공급으로 청약 신청하기’)과 4장(‘일반공급으로 청약 신청하기’)는 관련 공급방식의 특징과 내용 등을 집중적으로 설명해주고, 5장(‘청약 신청, 이제부터는 실전이다’)은 실제 주택 청약 방법 등을 소개했습니다.
그동안 언론 등을 통해 청약제도는 ‘난수표’를 방불케 할 정도로 어렵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책 출간에는 이런 비판에 대응하겠다는 의도도 담긴 것으로 풀이됩니다. 실제로 부동산원은 책의 도입부(프롤로그)에서 “이 책은 청약 초심자부터 다년간의 청약 경험이 있는 분들까지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했고,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기 위한 든든한 나침반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부동산원은 7개월 남짓 지난 올 6월 27일 ‘2023년 최신 개정판’을 내놨습니다. 책 발행 이후 추진된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이하 ‘공급규칙’) 개정 사항을 반영하기 위한 불가피한 결정이었습니다. 지난해 10월 26일 발표됐던 ‘청년·서민 주거안정을 위한 공공주택 50만 채 공급계획’과 올해 2월 28일 자로 개정된 공급규칙입니다. 그 결과 새 책은 기존 틀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한눈에 모아보기-2023년 주택청약 뭐가 달라지나요?’와 ‘만화로 보는 청약부터 입주까지의 모든 것’ 등이 추가됐습니다.
문제는 부동산원이 조만간 개정판을 다시 내야 할 처지라는 점입니다. 2월 이후 이미 차례에 걸쳐 ‘공급규칙’이 개정된 데다 연내 추가 개정도 예정돼 있기 때문입니다.
시장 상황 변화에 따라 기존 제도의 운용상 미비점을 보완하기 위한 정책 개정은 불가피합니다. 또 이를 반영한 개정판을 내는 것은 당연해 보입니다. 하지만 그게 지나치게 잦다면 문제입니다. 청약제도가 난수표로 불릴 정도로 어려워진 직접적인 이유도 잦은 제도 변경에서 비롯됐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이기 때문입니다. 공급규칙의 변경 과정과 문제점, 해결방안 등을 짚어보는 이유입니다.
1978년 5월 제정된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은 현재(2023년 7월 21일 기준)까지 무려 162차례에 걸쳐 개정되면서 ‘누더기’가 됐다는 평가마저 나온다. 사진은 1984년 3월 서울의 한 아파트 당첨자 발표장에서 대형 게시판에 붙여진 당첨자 명단을 신청자들이 확인하는 모습이다. 동아일보 DB
부동산원의 책(‘주택청약의 모든 것’)에 따르면 우리나라 최초의 주택공급 제도는 1963년 제정된 ‘공영주택법’입니다. 당시에는 저소득자이면서 무주택자, 분양대금을 상환할 수 있거나 임대료를 지급할 수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공공주택의 일환인 공영주택을 저렴하게 공급하기 위해 정해진 것이었습니다. 당시 공급방식은 현재처럼 복잡하지 않고, 단순 추첨방식이었습니다.
1970년대에 접어들면서 도시 주택 부족 문제가 심각해지자 정부는 1972년 제정된 ‘주택건설촉진법’에 근거해 1977년 8월 ‘국민주택 우선 공급에 관한 규칙’을 신설하고, 국민주택청약부금 가입자에게 주택 분양 우선권을 부여하기 시작합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공급규칙은 공공주택에만 적용됐습니다.
변화와 진화는 외환위기 이전까지는 규제 중심으로 진행됐습니다. 주택에 대한 과수요 상황에서 주택을 실수요자에게 나눠주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습니다. 당시 대표적인 조치로는 소형 공공주택에 대한 소득제한과 민영주택의 채권입찰제, 전매제한 및 재당첨 제한 기간 연장 등이 있습니다.
1990년대에는 수도권 1기 신도시를 앞세운 주택 200만 채 건설과 금융실명제, 토지거래허가제도 등이 시행되면서 부동산시장이 안정세를 보이면서 큰 변화는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1997년 말 외환위기가 터지자 정부는 분양가 전면 자율화나 전매제한 폐지 등과 같은 규제 완화책을 쏟아냅니다. 민영주택 청약 자격도 세대주에서 20세 이상 성인으로 전환해 청약 자격 문호를 대폭 넓힙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공급규칙 개정은 연 1회 수준에 머물렀습니다. 그만큼 안정적으로 운영됐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2000년대 접어들어서 상황은 크게 바뀝니다. 2000년 이후 올해까지 개정 횟수는 무려 129회에 달합니다. 연 평균으로 5.4회입니다. 특히 2010년에는 한 해 동안 무려 10차례나 공급규칙이 개정됩니다. 정부의 정치적인 성향에 따라 공급규칙이 규제 강화와 완화라는 냉탕과 온탕을 오가면서 발생한 결과인데, “청약제도가 ‘누더기’가 됐다”는 평가를 받는 직접적인 이유가 됩니다.
공급규칙은 시대적인 수요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바뀌는 경우도 많다. 대표적인 게 인구정책 변화에 따른 청약 혜택이다. 1978년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이 제정될 때부터 불임시술자에 대해 우대책을 펼쳤지만 1997년 중단됐다. 이후 2006년부터는 저출산 해결을 위해 다자녀가구 우대 정책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은 1977년 대한가족계획협회(현 인구보건복지협회)가 행사를 갖는 모습이다.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플래카드가 선명하다. 동아일보 DB
시대적인 수요 변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는 인구정책 변화에 따른 청약 혜택 변화입니다. ‘아들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라는 길거리 현수막이 나부끼던 1970년대 정부는 공공아파트 청약에 ‘불임시술자’ 우대를 제시합니다.
그 시작은 1976년입니다. 당시 경제기획원(현 기획재정부)은 제4차 경제 5개년 개발계획 기간에 연평균 인구증가율을 1.6%로 억제하기로 정합니다. 이에 정부는 1977년 ‘국민주택 우선공급에 관한 규칙’을 제정하면서 공공부문이 짓는 아파트 청약 우선순위 조건에 영구불임시술자를 포함시킵니다. 그 결과, 1976년 말까지 8만여 명에 불과했던 영구불임시술자는 1977년 8월 말 14만여 명으로 불어날 정도로 큰 효과를 거둡니다.(대한민국 정책브리핑, ‘운 좋으면 주택 뽑기 당첨’ 30년)
불임시술자에 대한 우대 조치는 1978년 제정된 공급규칙에도 이어져 20년간 유지되다 1997년 7월 18일 폐지됩니다. 전년도인 1996년 6월 당시 정부가 “35년간 시행돼온 출산 조절을 통한 인구억제정책을 폐기하겠다”고 선언한 뒤 이뤄진 후속조치였습니다.
그런데 9년 뒤인 2006년 인구정책은 다시 주택청약제도와 연결됩니다. 다만 이전과는 완전히 상반된 방식입니다. 저출산 문제가 발등의 불이 되자 2006년 8월 당시 건설교통부(현 국토교통부)가 “민법상 미성년자인 3자녀 이상의 자녀를 둔 무주택 세대주에게 건설 양의 3% 범위 안에서 1회에 한해 특별 공급할 수 있다”는 규정을 공급규칙에 끼워 넣은 것입니다. 이후 다자녀 우선공급은 현재까지도 유지되고 있습니다.
이 밖에 공급규칙 도입 초기에 15년 이상 무사고 운전자나 동일 직장 10년 이상 취업자에 대한 청약 우선제도 등이 도입됐다가 1999년 대대적인 규제 완화 방침에 따라 폐지되기도 했습니다.
반면 개정의 필요성에 의구심이 드는 경우도 보입니다. 정부가 이달 초 입법 예고한 개정령안에 포함된 ‘해외근로자 특별공급 근거 명확화’는 그런 유형입니다. 개정령 안은 국외에서 1년 이상 ‘취업한’ 근로자를 ‘근무한’으로 바꾸는 게 전부입니다. 정부는 이와 관련해 “현행 규정의 문언 해석상 해외기업에 취업한 근로자만이 대상이 되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어 국내기업 소속 해외파견자도 인정됨을 명확하게 기술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이 규정은 1978년 공급규칙에 제정된 이후 한 번도 누락된 적이 없이 유지돼온 것입니다. 굳이 덧대거나 바꿀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정부가 최근 총력전을 펼치고 있는 해외 건설 수주 지원방안에 가짓수를 늘리기 위한 수단으로서 공급규칙 개정을 추진하는 것이라는 평가마저 나옵니다.
공급규칙의 잦은 개정은 편법 부추기기와 같은 적잖은 부작용도 불러왔다. 사진은 1982년 11월 서울 시내 한 아파트 분양 현장 모습이다. 당시 추첨이 끝나고 당첨자 명단이 나붙자 부동산 중개업자들이 즉석 인화 카메라까지 동원해 당첨자를 파악하고 있다. 1인당 국민소득이 141만 원이던 시절 당첨자들은 무려 1500만 원이 넘는 웃돈을 얹어 받으며 당첨 통장을 되팔았고, 이렇게 ‘강남 복부인’들이 탄생하기 시작했다. 동아일보 DB
복잡해진 청약제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부적격 처리되는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부동산원과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지난해 국회에 제출한 자료(‘청약 부적격 당첨 현황’)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2년 7월까지 주택청약 신청자 중 부적격 당첨자가 5만 1750명으로 집계됐습니다.
2021년 7월 진행된 3기 신도시 1차 사전청약에서는 최초 당첨자 4333명 가운데 493명(11.4%)이 부적격 당첨자로 처리되기도 했습니다. 당시 10만 명 가까이 몰리며 21.6 대 1이라는 경쟁률을 뚫은 당첨자 10명 가운데 1명 이상이 문제가 된 셈입니다.
복잡해진 공급규칙은 이용자인 국민들의 불필요한 비용 지불이나 불법이나 편법 부추기기와 같은 부작용도 가져옵니다. 1970~1980년대 등장했던 ‘강남 복부인’이나 1990~2000년대의 ‘떴다방’ 등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최근 들어서도 편법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2017~2018년에는 특별공급으로 미성년자나 20대 사회 초년병이 당첨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편법 증여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쏟아졌습니다. 2020년 8월 국토부가 발표한 ‘부동산 범죄 수사 결과’에서는 수도권지역의 한 고시원에 위장 전입한 18명이 인근 아파트에 당첨된 사실이 무더기로 적발되기도 했습니다.
문제는 현행 공급규칙을 근본적으로 수정할 만한 뾰족한 방법이 보이질 않는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전체 국민(5174만 명·2021년 기준)의 절반을 훌쩍 넘어선 2734만여 명(2023년 6월 기준)에 달하는 청약통장 가입자가 큰 걸림돌입니다. 이들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공급규칙 전반을 손대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공급규칙이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현행보다 상위 규정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국회입법조사처 국토해양팀 장경석 입법조사관(선임연구관)은 “현재는 국토부 자체적으로 개정이 가능한 상황이어서 남발되는 경향이 있는 만큼, 공급규칙 개정에 대한 원칙과 기준을 상위 규정으로 정해 제도의 안정성을 회복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공급규칙이 결국 주택을 나눠주는 방법이라는 점에 초점을 맞춰 필요한 곳에 필요한 시기에 적절한 공급이 이뤄질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즉 나눠줄 파이(집)를 키워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모두 돌아갈 수 있다는 신호를 보내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만성적으로 수요가 초과된 도심지역에 원활한 주택 공급이 이뤄질 수 있도록 관련 재건축 등 관련 규제를 서둘러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황재성 기자 jsonh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