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 솔루션 중심 사업방향 확립 부품 중심의 기존 전장업체와 차별화 저가 수주 멈추고 수익성 끌어올려 외부 영입·인력 재배치로 역량 강화
LG전자 VS사업본부가 메르세데스벤츠 EQS에 적용한 MBUX 하이퍼스크린. LG전자는 고객 지향적 솔루션을 앞세워 기존 전장(자동차 전기·전자장비) 업체들과 차별화하고 하이엔드 시장에 빠르게 안착했다. LG전자 제공
메르세데스벤츠가 LG전자 VS(Vehicle component Solution)사업본부에 던진 요청은 단순했다. 새롭게 출시할 플래그십 전기차 EQS의 앞좌석 디스플레이를 하나로 통합해 달라는 것이다. LG전자의 대답은 단순한 ‘예스’가 아니었다. 계기판과 중앙정보디스플레이(CID), 보조석디스플레이(CDD) 등 3가지 화면을 하나로 통합하는 것은 물론이고 운전석에서 조수석을 아우르는 대형 스크린을 구현하겠다고 약속했다. 요청을 한 벤츠가 오히려 반신반의했지만 LG전자는 LG디스플레이의 플라스틱 OLED(P-OLED) 기술을 활용해 이를 실현했다. 세계 최대 디스플레이 전시회 ‘디스플레이 위크 2022’에서 올해의 디스플레이 애플리케이션의 영예를 안은 벤츠 EQS의 MBUX 하이퍼스크린의 탄생에 얽힌 이야기다.
하이퍼스크린은 LG전자 VS사업본부의 달라진 위상을 여실히 보여준다. 세계적인 완성차 업체 벤츠가 프리미엄 라인에 전장 후발 주자인 LG전자 제품을 썼다. 그것도 승차 경험의 핵심인 IVI를 통째로 맡겼다. 명실상부하게 프리미엄 전장 제품으로 인정받은 셈이다. VS사업본부의 지난해 매출액은 8조6496억 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LG전자 전체 매출의 10.4%를 책임지며 당당한 주력 사업군으로 거듭났다. 만년 적자였던 영업실적도 지난해 1696억 원 흑자를 내면서 2013년 본부 출범 9년 만에 턴어라운드를 달성했다.
한때 ‘아픈 손가락’처럼 여겨졌던 VS사업본부가 이 같은 ‘대반전’에 성공한 비결은 무엇일까. DBR(동아비즈니스리뷰) 2023년 7월 2호(373호)에 실린 LG전자 VS사업본부의 성공 전략을 요약해 소개한다.
● 가전기술·노하우를 전기차 경쟁력으로
LG전자는 2018년 기존의 VC(Vehicle Component)사업본부를 VS사업본부로 전환하면서 반전의 신호탄을 쐈다. 개별 부품에 맞춰졌던 초점은 고객 지향적 솔루션으로 이동했다. 전기차·자율주행차 등 미래형 자동차와 관련된 모든 전자장비·소프트웨어를 통합 솔루션으로 판매한다는 방향성이 비로소 확립됐다. 고객의 숨은 욕구를 읽어내 근본적인 해법을 제시하는 솔루션 전략을 앞세워 LG전자는 기존 전장업체들과의 차별화에 성공했다. 벤츠 EQS의 하이퍼스크린이 대표적인 사례다.이는 LG전자가 기존에 축적한 가전 분야 기술·노하우를 십분 활용하는 길이기도 했다. 전기차 시대가 도래하면서 자동차는 그 자체가 하나의 전자제품이 됐다. 시장 변화를 미리 읽은 LG전자는 인간과 기계 간 인터페이스(HMI) 개선에 주안점을 두고, 탑승객에게 좀 더 나은 경험을 선사할 수 있는 ‘기술의 조합’에 집중했다. 가전과 모바일 분야의 노하우, 나아가 전자제품 소비자들에 대한 높은 이해도가 고스란히 자산이 됐다.
● 수익성 중심 체질 개선
수익성을 끌어올리기 위한 체질 개선도 뒤따랐다. VS사업본부 출범을 기점으로 LG전자는 기존에 펼쳤던 수주 확대 중심의 성장 전략을 중단했다. 만성 적자의 주범인 저가 수주를 전면 중단하는 동시에 북미·유럽 지역 주요 완성차 브랜드를 중심으로 거래처를 재편했다. 기존에 관계가 좋았던 GM은 물론이고 현대자동차나 폭스바겐 등을 중심으로 수익성이 확보된 일감을 따내는 데 집중했다. 나아가 텔레매틱스, 디스플레이 분야의 강점과 차별화된 솔루션 전략을 앞세워 하이엔드 시장도 적극 공략했다. 포르셰가 2019년 선보인 첫 전기차 타이칸에 CID를 공급하거나 랜드로버의 2021년형 뉴레인지로버 이보크의 IVI 시스템을 공동 개발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선택과 집중’ 전략이 강화된 것도 VS사업본부에 힘이 실린 배경이다. LG전자는 해마다 수천억 원의 적자를 내던 MC사업본부를 2021년 7월 전격 해체했다. 총 3300여 명의 MC사업본부 인력이 그룹 내 다양한 사업부문에 재배치됐다. 이 과정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에 잔뼈가 굵은 고급 인력들이 차량용 전장 소프트웨어 분야에 대거 투입됐다. 오랜 기간 글로벌 통신사를 상대해 경험이 많은 영업 인력과 해외 영업망도 전장 부문으로 이식됐다.
● 고객 신뢰 구축 및 공격적인 M&A·JV
LG전자는 철저히 납품업체 포지션을 유지하면서 고객사의 신뢰도 확보했다. IVI부터 파워트레인, 배터리, 자율주행 기술에 이르기까지 사실상 전기차를 직접 제작할 수 있을 정도의 포트폴리오는 이미 갖췄다. 하지만 대만 반도체 파운드리 기업 TSMC처럼 고객과는 경쟁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며 전장업체들과의 경쟁에만 집중하고 있다.LG전자는 공격적인 인수합병(M&A) 및 조인트벤처(JV) 전략으로 단시간에 사업군을 효과적으로 다각화했다. 기존의 핵심 역량을 수월하게 이전할 수 있으면서 부족한 역량을 빠르게 채울 수 있는 분야가 주요 타깃이었다. 2021년 7월 세계 3위 자동차 부품업체 마그나인터내셔널과 설립한 합작법인 LG마그나이파워트레인이 대표적이다. LG전자가 보유한 모터와 인버터 기술에 마그나의 풍부한 사업 경험과 글로벌 고객 네트워크를 융합하는 게 협력의 요체다. 유럽의 프리미엄 헤드램프 업체 ZKW를 2018년 8월 인수한 것도 마찬가지다. BMW, 벤츠, 아우디, 포르셰 등 최고급 브랜드를 고객사로 보유한 ZKW를 통해 하이엔드 시장 공략을 위한 포석을 놓을 수 있었다.
백상경 기자 bae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