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시각장애인용 전시실, 맹학교 교사와 가다 올해 9월 개관 목표 ‘오감’ 전시실 실물 크기 반가사유상 등 선보여 ‘유물 맘껏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시각장애인인 서울맹학교 교사 이진석 씨가 20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1층에 조성 중인 ‘오감’ 전시실에서 실물과 같은 크기, 재질로 만든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국보)의 얼굴을 손끝으로 만져 보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느껴져요. 이건 확신의 미소예요.”
20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1층 전시실. 앞을 전혀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인 서울 맹학교 교사 이진석 씨(44)가 한 손으로 국보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1962-2호) 모형의 입가를, 다른 손으로 오른발 끝을 만졌다. 손끝으로 불상의 발가락을 하나하나 만지던 이 씨는 입가에 옅은 미소를 보이며 이같이 말했다.
“발가락 끝이 하늘을 향해 서 있어요. 옆에 있는 국보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1962-1호)이 발끝에 힘을 빼고 있다면, 이 불상은 힘을 꽉 주고 있어요. 마음속으로 어떤 결단을 내린 듯해요. 두 불상이 같은 미소를 지은 것 같지만, 미소의 의미는 서로 다르네요.”
국립 박물관이 시각장애인을 위한 상설전시실을 마련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이 씨 등 시각장애인 30여 명을 자문위원과 사전체험단으로 선정해 공간을 함께 디자인하고 있다. 이날 이 씨도 예리한 평가를 했다. 그는 “큐레이터나 안내자가 일일이 동선을 알려 주며 체험을 돕는 것도 좋지만 사유는 누가 대신해 주는 것이 아니라 결국 내가 스스로 해내야 하는 것”이라며 “시각장애인이 홀로 감상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물관은 이 씨의 의견을 받아들여 시각장애인이 안내자의 도움 없이 체험할 수 있도록 전시실 내 동선과 유물에 대한 설명을 함께 담은 오디오 가이드를 준비하기로 했다.
오감 전시실을 기획한 장은정 국립중앙박물관 교육과장은 “‘시각장애 학생들이 기피하는 현장학습 장소 1위가 박물관’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아 전시실을 만들게 됐다”고 했다. 맹학교 학생들 사이에선 박물관이 미술관, 수족관과 함께 3대 기피 공간으로 꼽힌다는 것. ‘사유의 방’ 전시 역시 시각장애인에게는 무의미한 공간이었다는 자성도 이 전시실을 마련하는 동기가 됐다.
이 씨는 장애인을 위한 프로그램을 비(非)장애인과 함께 하고 싶다고 했다.
“시각장애인이 손끝으로 느낀 유물과 비장애인이 두 눈으로 본 유물이 어떻게 같고 다른지 이야기해 보고 싶어요. 어쩌면 마음속에 그린 유물의 모습은 생각보다 서로 다르지 않을지도 모르지요(웃음).”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