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 70주년] 다시 한국땅 밟은 참전용사 3인 美-加 노병 “다시 선택해도 참전”… 전장서 도움준 한국소년 찾기도 당시 아리랑은 韓-유엔 ‘연대 상징’… 70년만에 ‘아리랑 스카프’도 복원
美-英-加에서 온 90대 참전용사 정전 70주년을 맞아 한국 땅을 다시 밟은 콜린 새커리 옹(93·영국·오른쪽), 에드워드 버크너 옹(91·캐나다·가운데), 윌리엄 워드 옹(91·미국·왼쪽) 등 유엔 참전용사 3인이 25일 서울 송파구 한 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이들은 6·25전쟁 참전 당시 경험담을 나눈 뒤 “오늘부터 우리는 친구가 됐다”며 손을 맞잡았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하도 많은 사람들이 ‘아리랑’을 불러 애국가인 줄 알았습니다.”
6·25전쟁 정전협정 70주년을 맞아 국가보훈부 초청으로 방한한 영국인 참전용사 콜린 새커리 옹(93)은 영국군 소속으로 부산 땅을 밟았던 73년 전을 떠올렸다. 그는 24일 서울 송파구의 한 호텔에서 기자들과 만나 “함께 근무하던 한국 병사가 아리랑을 자주 불러 금방 친숙해졌다. 처음에 들었을 땐 자장가인 줄 알았다”며 웃었다.
2019년 영국의 대표적 경연 프로그램인 ‘브리튼스 갓 탤런트(Britain’s Got Talent)’에서 역대 최고령 참가자로 우승해 화제가 됐던 그는 27일 부산에서 열리는 ‘정전협정 70주년 및 유엔군 참전의 날 기념식’에서 직접 아리랑을 부를 예정이다. 그는 “당시에 배운 가사와 발음을 정확히 기억하면서 부를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 “다시 선택하라 해도 똑같이 참전”
그는 1952년 귀국하기까지 숱한 전투를 치렀다. 그 과정에서 함께 참전한 6명의 전우 가운데 4명을 잃었다. 새커리 옹은 “한국에 배치되자마자 갔던 곳이 ‘수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했다. 그는 북한군을 “테러리스트(terrorist)”라고 불렀다. “테러리스트들은 민간인 여성, 아이들을 총으로 위협하며 겁을 줬다”고 했다. 그는 영국군 글로스터 연대 600명이 중공군 3만 명과 처절하게 맞서 싸운 임진강 전투 현장에도 있었다. 새커리 옹은 “중공군이 많다고 듣긴 했지만 얼마나 많은지는 알 수 없었다. 정말 귀신(ghost)처럼 많이 나타났다”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참전용사에 ‘영웅의 제복’ 선물 윤석열 대통령(오른쪽)이 2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그자비에 베텔 룩셈부르크 총리(왼쪽)와의 정상회담에 앞서 정전협정 체결 70주년을 맞아 방한한 룩셈부르크 참전 용사 레옹 무아얭 씨(가운데)를 만나 ‘영웅의 제복’ 재킷을 선물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총상을 입고 일본으로 후송돼 치료받은 뒤 다시 참전했는데, 어떻게 그렇게 용기 있게 두 번이나 참전을 결심하게 되셨느냐”고 물었다. 대통령실 제공
워드 옹과 버크너 옹은 전쟁터에서 인연을 맺은 한국 소년들을 찾고 있다. 워드 옹은 당시 부산 캠프에서 매일 자신의 빨래를 해주겠다던 12세 소년 ‘장(Chang)’을 찾기 위해 70년 넘게 간직한 사진을 들고 왔다. 그는 “장과 그 가족은 정말 성실하게 일했고 끝까지 용기를 잃지 않은 사람들이었다”며 “그 친구도 80세가 넘었을 텐데 나를 그리워할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버크너 옹도 당시 초소 청소를 했던 ‘조적송(Cho Chock Song)’이라는 소년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당시 내가 열아홉 살이었는데 이 친구는 나보다 어렸을 거다. 70년도 더 지났는데 이 친구가 절대 기억에서 잊혀지지 않는다”며 울먹였다.
● 참전용사들 고국에 보냈던 ‘아리랑 스카프’ 복원
6·25전쟁 당시 유엔 참전용사들이 고국의 어머니와 부인에게 보낸 인기 기념품 ‘아리랑 스카프’가 70년 만에 원형으로 복원됐다. 아리랑 악보를 태극기와 참전 국가 국기가 둥글게 에워싼 모양이다. 왼쪽이 원형 버전, 오른쪽이 복원된 버전. 국가보훈부 제공
전쟁 당시 아리랑이 국군과 유엔군을 하나로 묶어 주는 매개가 되자 1951년 스카프에도 아리랑 악보와 가사가 새겨졌다. 새커리 옹처럼 유엔군은 생사를 같이한 한국군 전우에게 아리랑을 배웠다. 서로 다른 국적의 유엔군은 전쟁터에서 함께 익힌 아리랑을 흥얼거리며 연대했고 미 7사단은 군가로도 채택했다.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