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영 연세대 명예교수
5.31 교육개혁 이후 역대 정부는 교육에 관한 장기적 정책기조 없이 분절적 정책설계와 미시적 차원의 ‘땜질 개혁’에 급급해 왔다. 그런 가운데 한국 교육은 학령인구 감소, 4차 산업혁명, 코로나 19 이후 ’뉴노멀‘ 시대 등의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학령인구 감소는 고도성장과 지속적인 인구 증가에 기초한 교육시스템의 전면적 개편을 요구하고 있다. 기하급수적 속도로 진행되는 AI 기술혁신과 ’뉴노멀‘ 의 충격은 학교와 교사의 역할, 교육의 내용과 방법에 변화를 압박하고 있다. 위기와 도전은 ’기회의 창‘이다. 5.31 교육개혁 30년을 목전에 둔 지금은 ’새 판‘을 짜는 거시적 교육개혁의 적기(適期)다.
거시 교육개혁 구상에 두 가지를 유념해야 한다.
오늘 우리는 인공지능 기술이 인간 삶의 일부로 편입되면서, 인간존재나 인간의 정체성에 대해 강하게 회의할 수밖에 없는 이른바 ’포스트 휴먼(post-human)‘ 시대에 진입하고 있다. 인간이 의식적 주체로서 능동적으로 불확실한 미래 상황에 대처하고, 인간이 중심이 되는 사회로 이끌기 위해서는, 기능적 접근을 넘어 그 완성도를 보다 높이기 위해, 정서적 지능과 도덕적 판단력을 함양하는 전인(全人)교육이 절실히 요구된다. 다듬어진 인격과 공감 능력, 공동체 의식, 자유의지와 창조적 자아가 없으면 ‘개인 맞춤형 교육’이나 ‘창의적 융복합 인재‘ 같은 멋지고 선진적 개념들도 실현되기 힘들다. 심화하는 교육의 시장화와 테크놀로지에 눌릴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사회의 인간화를 위한 보다 본질적인 교육과정 접근이 필요하다. 그것이 입시의 볼모가 된 우리 교육과 디지털 문명이 우리의 삶터를 디스토피아(dystopia)로 전락시키는 것을 막는 방파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거시 교육 문제 해결의 중요한 한 가닥은 인성교육의 부활에서 찾아야 한다. 그 첫걸음이 아주 크지 않아도 좋다. 지(知) 정(情) 의(意)의 조화를 추구하는 전인 지향의 인성교육은 그동안 지식교육·입시교육·경쟁교육, 그리고 한국적 ’지위 경쟁‘과 그때그때 기능적 필요성에 의해 크게 뒤져 이제 한갓 수사(修辭)에 머물고 있다. 더욱이 인성교육은 실효성 있는 실천적 프로그램으로 전환하기가 쉽지 않고, 그 성과를 측정하기도 어렵다. 따라서 심도 있는 정책연구와 사례 분석이 필요하고, 교육복지 프로그램과 같은 우회로를 모색하는 것도 정책적으로 연구해야 할 것이다.
둘째로 한국 교육의 미래 설계를 위해서는 정치적 양극화를 넘어야 한다. 문민정부 이후 역대 정권을 거치면서 우리 사회의 이념적, 정치적 양극화는 심화하였다. 그 소용돌이 속에서 주요한 교육 이슈들은 ‘정치화’, ‘이념화’됐고 교육개혁의 앞길이 가로막혔다. 굵직굵직한 교육 문제들이 정체, 표류하였던 까닭도 거기에 있다.
교육 이슈나 교육 정책 의제는 대다수 국민의 이해관계와 얽혀있고, 가장 예민한 주제다. 정치권의 교육에 대한 관심 또한 치열하다. 진영화한 정치 세력들은 교육을 미래세대의 마음을 선점하기 위한 주요한 권력자원으로 인식하고, 더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해 온갖 궁리와 방책을 동원한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가 뜨거운 정치적 이슈가 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미래 한국‘을 건설하기 위한 거시 교육 문제의 해결은, 5.31 교육개혁 당시처럼, 정권이 주도하는 ’위로부터의 개혁‘으로 성취될 일이 아니다. 단언컨대 그것은 여와 야, 보수와 진보가 진영 의식에서 벗어나 초당적, 초정권적, 대승적 관점에서 주요 교육 쟁점에 대해 ‘역사적 대타협’을 하지 않으면 성사될 수 없다.
거시적 차원의 교육개혁 성공은 정치권이 교육의 ‘정치화’ ‘이념화’를 자제하고, 교육을 정치의 도구로 삼는 일을 포기하는 역사적 결단에 달려있다. 교육 쟁점은 내밀적으로 이념과 깊이 연결되어 때문에 , 정파 간 대화와 협치가 매우 어려운 영역이다. 그렇기에 협치가 가장 필요한 부문이기도 하다. 이번 기회에 교육영역에서부터 역사에 크게 기록될 협치의 성공사례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
안병영 연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