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글을 읽는 독자 중에는 ‘삼국지’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겁니다. 설령 잘 모른다 하더라도 삼국지 속 유비, 관우, 장비 삼형제 이름 정도는 들어봤을 텐데요. 이처럼 삼국지는 동아시아 최고의 스테디셀러이자, 역사상 가장 성공한 미디어 믹스라고 할 수 있는 소설입니다.
출처=코에이
촉나라는 녹색, 위나라는 파란색, 오나라는 적색 등 국가별 색상이나, 긴 투구 장식을 한 여포, 언제나 젊은 장수로 나오는 조운 등 우리가 흔히 삼국지에서 떠올리는 장수의 이미지 대부분이 이 코에이 삼국지에서 나왔을 정도죠.
출처=코에이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오랜 시간 진중한 역사물을 주로 선보인 이 코에이의 시작이 처가가 차려준 조그마한 염료 기업에서 시작됐다는 점입니다.
가세가 기운 염료 가게의 아들, 무남독녀 금지옥엽을 만나다
코에이의 창업자는 ‘에리카와 요이치’라는 인물로, 서서히 가세가 기울던 염료 가게를 운영하는 집안의 아들이었습니다. 에리카와 요이치는 가업을 잇기 위해 일본의 게이오대학 상업학부에 입학하면서 하숙집에 들어가게 되는데, 이곳에서 운명의 상대를 만나게 됩니다. 바로 하숙집 주인의 딸이자 지금의 부인인 ‘에리카와 케이코’를 만난 것이죠.출처=코에이
에리카와 케이코의 자택은 게이오대학 정문 바로 앞에 있는 이른바 금싸라기 땅에 있었는데, 남는 방(!)을 활용하고자 대학생 상대로 하숙을 운영했고, 바로 이곳에서 둘의 만남이 시작됐습니다.
그런데도 에리카와 요이치는 매일 케이코의 학교 앞에서 기다리고, 집까지 따라가는 뚝심으로 기어이 결혼에 성공하게 됩니다. (훗날 에리카와 케이코는 ‘저러다 죽을 것 같으니 사람 하나 살리는 셈 치고 결혼했다’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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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름에 빠진 남편에게 준 PC 1대가 인생을 바꾸다
그렇게 어렵게 결혼에 성공했지만, 현실은 역시 녹록지 않았습니다. 가업을 잇기로 한 염료 사업은 이미 시대의 흐름에 뒤처진 사양 사업이었고, 일을 시작하자마자 1년이 지나지도 않아 회사가 망해버렸죠. 그 이후 처가(일본식 표현으로 ‘처가의 처마를 빌려’)의 지원으로, 다시 염료 사업을 시작했는데, 1978년 설립된 이 회사가 바로 ‘광명’(光栄) 즉 ‘KOEI’(코에이)의 시작이었습니다.처가에서 돈을 빌려 다시 사업을 시작했지만, 매달 발생하는 적자를 처가의 돈으로 충당해야 할 만큼 경영 악화는 여전했습니다. 이 시기 에리카와 요이치는 사업 부진의 실망으로 침울해 있었고, 당시 태동하고 있던 OA(사무자동화) 프로그램을 한 잡지에서 본 이후 프로그래밍 언어인 베이식(BASIC)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PC를 선물 받은 에리카와 요이치는 낮에는 회사 업무를, 밤에는 평소 관심이 있던 프로그래밍 개발에 매진했고, ‘코에이 마이크로 컴퓨터 시스템’이라는 작은 상점을 열어, PC 판매 및 업무용 프로그램을 판매하기 시작합니다.
출처=코에이
이 게임은 코에이 최초의 역사 시뮬레이션 게임이자, ‘신장의 야망’, ‘삼국지’ 시리즈의 베이스가 된 작품입니다. 출시 후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그해에만 본업인 염료 회사의 3배에 달하는 매출을 올렸습니다. 이후 코에이는 서서히 염료 사업을 축소하고, 본격적인 소프트웨어 개발 회사로 전환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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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프로그래밍 실력과 아내의 미술 전공을 살려 개발된 삼국지
소프트웨어 판매 기업으로 전환한 코에이는 다양한 워게임 형태의 시뮬레이션 게임과 주식 투자 프로그램 등 다양한 분야의 소프트웨어를 출시했고 여러 게임을 성공시켰습니다. 이는 일본에서 독보적인 베이식 프로그래밍 실력을 갖춘 남편 에리카와 요이치와 미대 전공 경험을 살린 부인 에리카와 케이코의 시너지가 큰 역할을 했는데, 당시 게임 시장에서는 보기 힘든 퀄리티를 보여줬습니다. 이후 1983년 출시한 ‘신장의 야망’이 그야말로 초대박을 기록하자, 코에이는 이 게임을 토대로 한 중국의 소설 하나를 1985년에 게임으로 선보이니, 이것이 바로 현재까지 출시되고 있는 ‘삼국지’ 시리즈의 시발점인 ‘삼국지1’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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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1은 대만에 출시된 이후 국내 시장에도 흘러들어왔는데, 1989년 발매된 2편이 이 루트를 따라 국내 게이머들을 만나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유독 코에이의 게임이 다른 회사보다 비싼, 이른바 ‘코에이 프라이스’가 이때부터 시작됐다는 점인데요. 당시 PC 소프트웨어의 도매가가 ‘정가의 20~30%’로 책정되는 것이 업계 관습이었지만, 에리카와 케이코가 55%를 주장하면서 게임 가격이 높아진 것입니다. 55%에 구매하지 않는 업체에는 판매하지 않고, 이를 충족하면 그 업체에 총판을 넘긴다는 아주 대담한 방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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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코에이는 비록 ‘흙수저 남편’이 ‘금수저 부인’의 지원으로 설립됐지만, 자만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사업을 키웠고, 처가의 전폭적인 지원을 토대로 시총 7조 원이 넘는 일본 게임업계 2위 기업이 된 아주 독특한 역사의 기업입니다.
현재도 이 부부는 코에이 테크모의 사장과 회장을 역임하며 여전한 영향력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온갖 풍파 속에 성장한 코에이가 앞으로 어떤 작품으로, 전 세계 게이머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할지 앞으로 이 부부의 행보가 궁금해집니다.
조영준 게임동아 기자 jun@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