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퍼 대반전’ 꿈꾸는 세터 이고은 트린지 감독에다 야스민-필립스… 원활한 소통 위해 영어 열공 중 6일새 2번 이적 ‘대사건’ 겪기도 “팬들 덕분 기운 내… 더 잘해야죠”
이고은(페퍼저축은행)이 19일 팀 안방 구장인 광주 페퍼스타디움에서 세트(토스) 자세를 취한 채 미소 짓고 있다. 여자부 7개 구단 중 4개 팀을 거친 이고은은 “신인급 어린 선수들이 많다 보니 분위기가 활기차고 배우려는 의지도 강하다”고 팀 분위기를 전했다. 광주=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이고은(28·페퍼저축은행·세터)은 요즘 영어 과외 선생님을 열심히 찾고 있다. 혼자 영어 단어 공부부터 시작했지만 뜻대로 잘 되지 않자 ‘헬프 미’를 외치게 된 것이다. 프로배구 데뷔 이후 11번째 시즌을 앞두고 있는 이고은이 갑자기 영어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팀에 ‘네이티브 스피커’가 세 명이나 되기 때문이다.
페퍼저축은행은 이번 시즌을 앞두고 미국 여자 대표팀 지도자 출신인 조 트린지 감독(36·미국)에게 지휘봉을 맡겼다. 외국인 선수는 미국 출신 야스민(27)이고 아시아쿼터 선수 엠제이 필립스(28)도 미국, 필리핀 이중 국적으로 영어를 쓴다.
19일 팀 안방인 광주 페퍼스타디움에서 만난 이고은은 “감독님께서 디테일한 주문을 많이 하신다. 감독님의 배구에 부합하는 플레이를 하려면 영어를 배우는 게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또 세터로서 좋은 선택지가 많아진 만큼 기회를 살릴 수 있도록 원활하게 의사소통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고은은 “처음에는 속상하기도 했고 기분도 많이 안 좋았다. 그러다 ‘어느 자리에 있든 응원하겠다’는 팬들의 격려에 기운을 차리기로 했다. ‘이게 다 내가 필요하니까 일어난 일이구나’ 싶더라. 앞으로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뿐”이라고 말했다.
이고은은 대구여고를 졸업하고 2013∼2014시즌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 3순위로 한국도로공사에 입단하면서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프로 4년 차였던 2016∼2017시즌을 앞두고 IBK기업은행으로 트레이드됐다. 당시까지 백업이었던 이고은이 주전 세터급으로 성장하는 데 도움을 준 선수가 바로 박정아였다.
이고은은 “당시 주전이던 김사니 언니(42)가 부상을 당하면서 처음으로 주전이 됐다. 긴장해서 얼어 있었는데 정아 언니가 ‘나한테 공을 올려’라며 정신을 차릴 수 있게 해줬다”면서 “워낙 오래 같이 선수 생활을 하다 보니 이번에 다시 만나서 딱히 특별한 이야기도 없었던 것 같다”며 웃었다. 두 선수는 이고은이 GS칼텍스를 거쳐 두 번째로 한국도로공사 선수가 된 2020∼2021시즌부터 두 시즌 동안에도 호흡을 맞췄다.
2022∼2023시즌 개막을 앞두고 페퍼저축은행과 FA 계약을 맺은 이고은은 이번 트레이드까지 총 6차례 이적을 경험했다. 한국배구연맹(KOVO)에 따르면 프로배구 여자부 역사상 팀을 가장 많이 옮긴 선수가 이고은이다. 뒤집어 말하면 그만큼 이고은을 탐낸 지도자가 많았던 것이다.
이고은은 29일 막을 올리는 2023 구미·도드람컵 프로배구대회를 통해 페퍼저축은행 유니폼을 입은 박정아와 실전 첫 호흡을 맞춘다. 공교롭게도 페퍼저축은행의 개막전 상대가 한국도로공사다. 페퍼저축은행은 지난해 컵대회 때는 조별리그 세 경기에서 모두 0-3으로 패하며 조기 탈락했고 V리그 결과 역시 최하위였다.
광주=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