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한미일 회담 하는 캠프데이비드가 어떤 곳이야?[정미경의 이런영어 저런미국]

입력 | 2023-08-05 12:00:00

60년 전 케네디는 왜 쓸쓸하게 오솔길을 걸었나
한미일 정상회담 열리는 캠프 데이비드의 모든 것




미국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하십니까. 영어를 잘 하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정미경의 이런 영어 저런 미국’으로 모이십시오. 여러분의 관심사인 시사 뉴스와 영어 공부를 다양한 코너를 통해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공간입니다. 아래 링크로 구독 신청을 해주시면 기사보다 한 주 빠른 월요일 아침 7시에 뉴스레터를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뉴스레터 신청
https://www.donga.com/news/Newsletter

미국 워싱턴 근교에 있는 대통령 휴양시설 캠프 데이비드. 백악관 홈페이지



Camp David is where a president can be a human being again.”
(캠프 데이비드는 대통령이 다시 인간이 되는 곳이다)
다음 달 미국 캠프 데이비드에서 한미일 3국 정상회담을 열립니다. 백악관이 아닌 캠프 데이비드에서 만난다는 점이 이채롭습니다. 캠프 데이비드는 메릴랜드주 산속에 있는 대통령 휴양시설입니다. 백악관에서 헬기로 30분 정도 걸리는 곳으로 일반인의 접근이 통제됩니다.

외부의 방해를 받지 않는 분위기 때문에 대통령이 외국 정상을 초청해 협상이나 담판을 벌일 때 자주 사용됩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한국과 일본 정상을 이곳으로 초청했다는 것은 친한 사이라는 증거지만 다른 한편으론 협상의 구체적인 성과를 얻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캠프 데이비드 회담은 격식과 프로토콜(의전) 중심으로 돌아가는 백악관 회담과는 다릅니다. 한국 정부 당국자들은 캠프 데이비드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꿰뚫고 있어야 회담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습니다.

캠프 데이비드는 미국의 역사입니다.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은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를 이곳으로 불러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디데이(노르망디 상륙) 작전 계획을 수립했습니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니키타 흐루쇼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을 초청해 미소 관계개선, 데탕트를 논의했습니다. 이때 ‘the Spirit of Camp David’(캠프 데이비드 정신)라는 유명한 용어가 탄생했습니다.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합의를 끌어낸다는 뜻입니다.

미국 대통령들은 넥타이를 풀고 긴장에서 벗어날 수 있는 캠프 데이비드를 좋아합니다. “대통령이 인간으로 돌아가는 곳”이라는 백악관 연설문 작성자 켄 카치지안의 명언도 있습니다. 대통령들에게 “favorite place(애정 장소)가 어디냐”로 물으면 “캠프 데이비드”라는 답이 돌아온다는 것이 워싱턴의 정설입니다. 한국 대통령 방문에 앞서 캠프 데이비드를 알아봤습니다.

9·11 테러 직후 캠프 데이비드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왼쪽 3번째) 주재로 열린 국가안보회의. 조지 W 부시 대통령 센터 홈페이지



You will be asked for your patience; for, the conflict will not be short. You will be asked for resolve; for, the conflict will not be easy. You will be asked for your strength, because the course to victory may be long.”
(전쟁을 짧지 않기 때문에 인내가 요구된다. 전쟁은 쉽지 않기 때문에 결의가 요구된다. 승리의 길은 멀기 때문에 용기가 요구된다)
9·11 테러 후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백악관보다 캠프 데이비드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외부와 차단돼 테러 가능성이 적은 데다 백악관 못지않은 통신 시설이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시 대통령은 무너진 뉴욕 무역센터 현장을 찾은 뒤 곧바로 캠프 데이비드로 이동해 전쟁 내각을 소집했습니다.

이 회의에서 미국을 공격하는 집단은 지구 끝까지 쫓아가서 복수한다는 테러와의 전쟁 계획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공격 대상, 주변국 동참 여부를 두고 콜린 파월 국무장관이 이끄는 비둘기파와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 주도의 매파가 치열하게 맞붙었습니다. 투표를 통해 1차 공격 대상은 아프가니스탄으로 결정됐습니다. 부시 대통령은 캠프 데이비드에서 동맹국 정상들에게 전화를 돌려 동참을 요청했습니다.

국민에게 전쟁의 필요성을 알린 곳도 캠프 데이비드입니다. 부시 대통령은‘9·15 연설’로 알려진 주례 라디오 연설에서 인내(patience), 결의(resolve), 용기(strength) 등 3가지를 주문했습니다. 연설 그 어디에도 ‘war’(전쟁)라는 단어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미국의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해 ‘conflict’(갈등)로 대체됐습니다.

1961년 캠프 데이비드에서 만난 존 F 케네디 대통령(왼쪽)과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오른쪽). 위키피디아



They looked so lonely.”
(그들은 너무 외로워 보였다)

캠프 데이비드는 전·현직 대통령의 회동 장소로도 활용됐습니다. 1961년 존 F 케네디 대통령 때입니다. 취임 후 첫 군사 프로젝트인 피그만 침공 사건이 실패하자 케네디 대통령은 위기에 몰렸습니다. 피그만 침공 사건은 쿠바가 공산화되자 미국 정부가 쿠바 망명자들을 훈련시킨 뒤 피그만에 침투시켜 피델 카스트로 정권을 전복시키려던 계획이었지만 처참하게 실패했습니다. 국제적 망신을 당한 케네디 대통령은 피그만 계획 최초 수립자인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정치적 성향도, 연령대도 너무 다른 두 대통령은 캠프 데이비드에서 만났습니다.

케네디 대통령은 헬기를 타고 온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착륙장에서 맞았습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상심한 케네디 대통령의 어깨를 두드렸습니다. 두 대통령은 오솔길을 따라 걸으며 캠프 데이비드 실내로 향했습니다. 서로 시선을 마주치지 않고 앞을 향한 채 고개를 숙이고 있습니다. 케네디 대통령은 두 손을 양복 주머니에 넣고 얘기하고 있고,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모자를 들고 뒷짐을 진 채 듣고 있습니다. 인생의 실패를 경험한 아들과 묵묵히 듣는 것으로 위로를 전하는 아버지의 모습 같다는 평을 들었습니다.

두 대통령의 쓸쓸한 뒷모습을 찍은 AP통신의 폴 바디스 기자는 이 사진으로 이듬해 퓰리처상을 받았습니다. 사진 제목은 ‘Serious Steps.’(심각한 발걸음). 바디스 기자는 “그들은 너무 외로워 보였다. 세상의 모든 짐을 진 듯이 보였다”라고 촬영 순간을 전했습니다.

2012년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주요8개국(G8) 정상회담 때 축구 경기를 관람하는 정상들. 왼쪽부터 손을 들고 환호하는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심각한 표정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호세 마누엘 바로소 EU 집행위원장, 앞쪽에 앉아있는 프랑수와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위키피디아



What’s the point, we never win.”
(무슨 소용이야, 우리는 이긴 적이 없는데)
캠프 데이비드에서 심각한 회의만 열리는 것은 아닙니다. 때때로 재미있는 순간이 펼쳐지기도 합니다. 2012년 주요8개국(G8) 정상회의가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렸습니다. 원래 개최 예정지는 시카고였지만 대대적인 시위가 예고되자 급히 캠프 데이비드로 바꿨습니다. 회담은 공교롭게 UEFA(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결승전과 같은 시기에 열렸습니다. 결승전에는 영국(첼시)과 독일(바이에른 뮌헨)이 맞붙었습니다.

시리아의 화학무기 사용을 금지하는 문제로 G8 정상들이 머리를 맞대고 토론하던 중이었습니다. 아이패드로 득점 상황을 확인하던 독일의 축구광 앙겔라 마르켈 총리가 “이건 꼭 봐야 한다”라면서 회담 중단을 요청했습니다. 승부를 가리지 못한 경기가 승부차기에 돌입하는 순간이었습니다. 회의 주최자인 오바마 대통령은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에게 “당신도 보고 싶지 않으냐”라고 물었습니다. 모두 함께 시청할 용의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캐머런 총리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what’s the point”는 “요점이 무엇이냐” “소용없는 일이다”라는 뜻입니다. 독일팀과 붙을 때마다 지는 영국의 징크스를 “we never win”이라고 한탄했습니다. 앞서 2010년 주요20개국(G20) 정상회담 기간에 열린 월드컵 축구 경기에서 영국은 독일에 4 대 1로 대패한 전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옆방에서 들리는 경기 소리에 가장 먼저 뛰어간 것은 캐머런 총리였습니다. 다른 정상들도 줄줄이 그의 뒤를 따라 옆방으로 가서 TV 앞에 섰습니다. 손을 번쩍 들고 환호한 것은 처음에는 관심이 없다던 캐머런 총리였습니다. 손에 땀을 쥐는 승부차기에서 첼시는 바이에른 뮌헨을 4 대 3으로 이겼습니다. 캐머런 총리는 메르켈 총리를 이렇게 약 올렸습니다. “It was extremely exciting. It is a privilege of the job to watch a penalty shootout in the presence of the German chancellor and win.”(흥미진진한 경기였다. 독일 총리 앞에서 승부차기를 관람하고 이겼으니 이 직업의 특전 아니겠는가)

난데없는 축구 응원전이 펼쳐진 것은 일반 회담 장소가 아닌 캠프 데이비드였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지루한 회의보다 스포츠 경기에 마음을 뺏기는 것은 세계적인 지도자들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보여준 일화입니다. G8 정상들은 경기가 끝난 뒤 곧바로 회담 모드로 복귀했다고 캐머런 총리는 전했습니다.


명언의 품격

협상 타결 뒤 캠프 데이비드에서 악수를 나누는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 지미 카터 대통령, 메나헴 베긴 이스라엘 총리(왼쪽부터). 더 카터 센터 홈페이지

모든 미국 대통령들은 중동 평화 정착을 최대 외교 과제로 내세웁니다. 대부분은 취임 후 현실 인식이 달라지면서 중동 문제를 포기나 현상 유지하는 쪽으로 방향을 틉니다. 지미 카터 대통령은 달랐습니다. ‘도덕 정치’를 외교의 영역까지 확장한 그는 유혈 충돌이 계속되는 중동 사태를 해결하고자 했습니다. 미국의 석유 이권을 도모해야 한다는 현실적인 판단도 중요하게 작용했습니다.

1978년 카터 대통령은 중동의 숙적 이집트의 안와르 사다트 대통령과 이스라엘의 메나헴 베긴 총리에게 캠프 데이비드로 와달라는 초청장을 보냈습니다. 체류 기간이 명시되지 않은 ‘open-end invitation’(무기한 초청장)이었습니다. 백악관이 아닌 캠프 데이비드로 초청한 것은 외부의 간섭 없이 끝장 토론을 하자는 의미였습니다.

이집트-이스라엘 정상은 협상 테이블에서 앉기는 했지만, 양보는 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지미 카터 대통령은 다른 정무를 옆으로 치워두고 협상을 중재했습니다. 나중에는 본인도 아예 캠프 데이비드에서 머물렀습니다. 협상이 고비에 달하자 카터 대통령은 두 정상을 남북전쟁의 현장 게티스버그로 안내했습니다. 미국의 유혈 내전 남북전쟁의 메시지를 중동 영토를 두고 싸우는 이들에게 전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중재자인 미국의 최대 무기는 지원이었습니다. 경제 군사 분야에서 미국의 지원이 절실했던 두 정상은 섣불리 협상 테이블을 걷어찰 수 없었습니다. 꼼꼼한 베긴 총리와 통이 큰 사다트 대통령이 성격적으로 맞지 않는다는 깨달은 카터 대통령은 최대한 실무자들이 협상을 진행하게 하고 두 정상은 마주치지 않도록 했습니다. 사다트 대통령은 영화를 58편 보고, 매일 캠프 데이비드 산에 오르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1주일 정도로 예상됐던 회담은 13일이나 계속됐습니다. 9월 17일 2개의 부속 합의로 이뤄진 ‘캠프 데이비드 협정’(Camp David Accords)이 체결됐습니다. 카터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Let history record that deep and ancient antagonism can be settled without bloodshed and without staggering waste of precious lives,”
(아무리 뿌리 깊고 오래된 적대감이라도 귀중한 인명의 참혹한 낭비와 유혈 사태 없이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을 역사는 기록할 것이다)
사다트 대통령과 베긴 총리는 한 달 뒤 노벨평화상을 공동 수상했습니다. 캠프 데이비드 협정은 중동 문제를 대화로 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입니다. 협정 체결 후에도 중동은 바람 잘 날이 없지만, 이집트와 이스라엘 관계는 양호합니다. 초강대국 미국의 중재력을 보여준 캠프 데이비드 협정은 오늘날에도 외교 분야뿐 아니라 비즈니스 거래 등에서 ‘협상의 정석’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실전 보케 360

트위터의 새로운 로고 ‘X.’ 위키피디아

실생활에서 많이 쓰는 쉬운 단어를 통해 영어를 익히는 코너입니다. 소셜미디어 트위터가 ‘파랑새’를 버리고 알파벳 ‘X’를 새로운 로고로 채택했습니다. 트위터의 새 소유주 일론 머스크가 내린 결정입니다. X를 대화, 금융. 차량 호출, 오디오, 비디오 등 광범위한 기능을 갖춘 ’슈퍼 앱‘으로 만들겠다는 머스크의 비전을 반영한 것입니다.

머스크가 알파벳 X를 좋아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자녀 이름도 ‘X’이고, 그가 소유한 우주개발 회사 이름도 ‘스페이스X’입니다. 머스크의 결정에 비난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명함 연락처에 트위터 파랑새 로고를 넣었던 사람들은 명함을 새로 바꿔야 할 판입니다. 트위터가 없어지면 ‘트윗’이라는 단어는 어떻게 될까요. 머스크에 따르면 “트윗을 올리다”라는 앞으로 “X를 올리다”라고 해야 합니다.

트위터가 어느 날 갑자기 X가 된 것은 아닙니다. 머스크는 꾸준히 트위터의 변신을 예고하는 메시지를 올렸습니다. 재스민 엔버그라는 유명 마케팅 분석가의 말입니다.


The writing was on the wall.”
(불안한 조짐은 있었다)
‘writing’은 ‘글쓰기’ ‘글씨’를 말합니다. ‘on the wall’은 ‘벽 위’를 뜻합니다. ‘the writing on the wall’은 ‘벽 위의 글씨’라는 뜻은 아닙니다. ‘좋지 않은 기운’ ‘불행의 전조’를 말합니다. 좋지 않은 일이 닥칠 때는 사전에 기운이 감지되기 마련입니다. “I haven’t lost my job yet, but the writing is on the wall. My company just laid off 50 more people today”이라고 하면 “나는 아직 일자리를 잃지 않았지만, 불운이 감돈다. 회사가 50명을 추가 감원했다”라는 뜻입니다.

원래 성경에서 유래한 표현입니다. 바빌로니아의 마지막 왕 벨사살(Belshazzar)이 잔치를 벌일 때 벽에 수수께끼 글자가 나타납니다. 멸망을 예고하는 메시지였습니다. 이 글씨대로 왕은 죽고 나라는 멸망했습니다. ‘writing’ 대신에 ‘handwriting’을 써도 됩니다. 머스크의 트위터 인수 후 직원을 대량 해고하고, 부분 유료화 정책 등 운영 방식이 바뀔 때부터 불길한 조짐은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저런 리와인드


동아일보 지면을 통해 장기 연재된 ‘정미경 기자의 이런 영어 저런 미국’ 칼럼 중에서 핵심 아이템을 선정해 그 내용 그대로 전해드리는 코너입니다. 오늘은 2019년 9월 16일 소개된 휴가 후 우울증 대처법입니다. 여름 휴가 시즌입니다. 산으로 바다로 휴가는 즐겁지만 돌아오면 우울해집니다. 휴가나 연휴를 즐긴 뒤 일상으로 복귀해야 하는 압박감을 어떻게 이겨내야 할지 알아봤습니다.

▶2019년 9월 16일자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190916/97416011/1

미국 여름 휴가지로 인기 높은 텍사스 샌안토니오 리버워크. 텍사스 관광청 홈페이지

연휴 잘 보내셨나요. 이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연휴가 끝나고 일상에 복귀할 때 어떤 감정을 느끼시나요. 여러 감정이 교차하겠지만 아마 착잡함과 우울함을 느끼는 분들이 대부분일 겁니다. 이런 감정을 ‘post-holiday blues’(휴가 뒤 우울)이라고 합니다.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은 한국인뿐만이 아닙니다. 미국인들도 연휴가 끝나고 찾아오는 이 찜찜한 기분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라 고민합니다.


It’s time to get back to the grind.”
(이제 직장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워싱턴 특파원 시절 추수감사절 연휴가 끝나갈 즈음 뉴스를 보니까 앵커가 이런 마무리 멘트를 날립니다. 직장이라면 ‘work’ ‘job’ 등의 단어를 써야 하는 것 아닐까요. ‘grind’(그라인드)는 ‘갈다’라는 뜻으로, 직장을 가리키는 속어입니다. 생산성 높기로 유명한 미국의 직장 문화를 가리켜 ‘grind culture’라고 합니다. 육체적 에너지든, 정신적 에너지든 모두 갈아버릴 정도라는 뜻입니다.


What goes up, must come down.”
(올라갈 때가 있으면 내려올 때도 있다)
유명한 격언입니다. 세상의 이치가 이렇다는 겁니다. 한 심리학 전문가는 연휴 뒤 느끼는 우울함을 이 격언에 비유했습니다. 연휴나 방학이 되면 기대감과 즐거움으로 가득하죠. 하지만 이렇게 올라간 기분은 내려와야 합니다. 계속 높은 상태로 살 수는 없습니다. 이 전문가가 하고 싶은 말은 휴가 뒤 찾아오는 우울함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심리 현상이라는 겁니다. 병리학적 우울증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Count your blessings.”
(당신이 누리는 것들에 감사하라)
휴가 뒤 우울한 감정은 누구나 느낍니다. 이를 지나치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심리학자들은 말합니다. 업무에 복귀해 열심히 일하다 보면 사라지기 마련입니다. 다시 돌아갈 일상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입니다. 휴가가 끝나서 힘들다고 엄살을 떠는 사람에게 적절한 충고입니다, 직역한다면 “네가 가진 축복을 세어 봐라”가 됩니다.

정미경기자 mick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