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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는 웃어버리고, 경계는 넘어서고…‘그러나 우리가 사랑으로’의 최수진, 나이트오프 인터뷰[영감 한 스푼]

입력 | 2023-07-29 11:00:00


미술가 최수진과 음악가 나이트오프의 뮤직 애니메이션 ‘그러나 우리가 사랑으로’의 한 장면. 사진: 포도뮤지엄 제공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제주도에 있는 ‘포도뮤지엄’에 가면 음악가 나이트오프(이이언, 이능룡)이 노래를 만들고 미술가 최수진이 영상을 만든 ‘그러나 우리가 사랑으로’를 들을 수 있답니다.

1년 전에 완성되어 미술관에서만 들을 수 있었던 이 음악과 영상이 최근 유튜브와 음원으로도 공개되었습니다. 목탄으로 그려 지우개로 지운 흔적을 그대로 볼 수 있는 드로잉은 따스한 손을 떠올리게 하고, 나이트오프의 가사와 음악은 소외된 모든 사람들을 어루만지려는 마음이 담겨있습니다.

이들을 직접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어보았습니다.


서로의 톤에 맞추고 절제하며 만들다

서울 용산구 티앤씨재단에서 만난 미술가 최수진(왼쪽)과 나이트오프의 이능룡(가운데), 이이언. 사진: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최수진과 나이트오프가 노래와 영상을 만들게 된 데에는 포도뮤지엄의 요청이 있었습니다. 미술관 전시 ‘그러나 우리가 사랑으로’를 기획한 김희영 대표는 뮤지컬 헤드윅의 ‘사랑의 기원’처럼, 나와 상관없는 일로 여겼던 타인의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줄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기로 했고, 그에 맞는 예술가로 두 팀에게 제안을 했다고 합니다.
김민(민): 제작 과정이 어떤 순서로 진행됐나요?

이이언(언): 처음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여러 고민을 하다가 최수진 작가에게 스토리보드와 인물 스케치를 먼저 받아 출발했어요.

이능룡(능): 수차례 소통의 과정이 있었죠. 음악을 만들어 들려 드리고, 작가님이 또 짧은 클립을 보여주시고. 서로 맞는 톤을 찾아가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 영상과 가사에 바다가 등장하고, 또 바닥에 선을 긋고 없어지는 장면이 인상깊어요.

최수진(최):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 미술관 전시 서문을 대신해 압축해서 설명할 수 있는 작업이라는 컨셉을 전달받았어요. 그리고 첫 회의에서는 ‘하나의 돌’이라는 키워드에서 출발을 했습니다.

: 하나의 돌에 모든 존재들이 모여 있다가 그 사이를 바다가 가로 막으면서 함께했던 사람들이 따로 지내게 되는… 그런 식의 우화적인 비유에 관한 이야기에요.

: 전시가 완성되고 난 뒤 음악과 영상을 만든게 아니라 초반 작업부터 함께 하다보니 완성되지 않은 아이디어와 말들이 섞여가며 작업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랑으로’의 첫 장면. 사진: 포도뮤지엄 제공



끊임없이 이어지는 드로잉
: 그렇게 만들어진 영상을 보면 목탄 드로잉의 흔적이 없어지지 않고 그 위에 다른 그림이 오버랩 되어 따뜻한 느낌이었어요. 어떤 것을 염두에 두셨나요?

: 기획 단계에서는 윌리엄 켄트리지 느낌의 목탄 이야기가 나왔는데, 따뜻한 이미지를 만들 수 있는 펠트나 털실을 사용해보기도 했어요. 그러다 지워도 흔적이 남는 목탄으로 결정했고, 흑백이지만 풍부한 화면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어요.

: 흔적이 남는 것을 왜 보여주고 싶었나요?

: 평화로운 마을이 급작스러운 재난을 맞고, 그런 사건의 여운이 계속해서 이어지길 바랐어요.

: 마을에 위성이 떨어져 사고가 났는데, 그것이 뭉게구름이 되고 그 구름 안에서 사람이 나와서 도망치고… 흔적 안에서 다른 스토리가 나와서 이어지는 것이 중요했던 것 같아요. 제작할 때 최수진 작가 작업실에 지우개 가루가 산처럼 쌓였었답니다.

: 봄에 3-4달 작업을 했는데, 유화 옆에서 목탄을 쓰면 가루가 다 달라 붙어서 방 하나를 따로 사용했어요. 공기청정기 두 개를 돌렸는데도 나중에 그 방 전체가 새카만 목탄 가루로 가득 찼어요.


소외된 모든 존재를 위한 사랑노래

나이트오프의 ‘그러나 우리가 사랑으로’.

: 음악은 제가 잘 알지 못하지만 사운드가 포근하게 감싸주는 느낌이 들어요.

: 첫 요청을 받을 때는 직설적이고 파워풀한 느낌을 이야기했는데, 나이트오프가 원래 하던 스타일대로 조용한 이야기가 더 깊게 전달하기 좋을 거라고 다시 의견을 냈고 흔쾌히 받아들여졌어요. 좀 더 부드럽고 조용한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것들이 작업의 흐름이었습니다.

: 사회적 이슈를 테마로 노래를 만들면 자칫 구호처럼 될 수도 있잖아요. 그걸 피하고 싶었고, 그래서 난민에 대한 이야기를 넘어 소수자, 혹은 사랑 이야기처럼 들리기를 바랐어요. 사람들의 감정을 다양한 관점에서 어루만져줄 수 있는 곡이 되길 원했고 이 때문에 섬세한 작업이 필요했어요. 지금까지 한 가사 작업 중에 가장 오래 걸렸고 힘들었던 곡이었어요.

: ‘우리가 택한 것과 택한 적 없었던 모든 것들로 우리가 우리가 된 걸요’ 라는 가사가 그렇게 느껴졌어요. (모든 사람은 다 다른 정체성을 갖고 있으니까…)

: ‘오래된 오해들을 웃어버려요’라고 하는 것은 사람들이 소수자에 대해 갖는 편견, 무지에서 비롯된 오해와 공포를 생각했어요. 그런 표현들을 잘 정리해 담으려고 애썼죠.

‘그러나 우리가 사랑으로’에서 음악이 절정에 달할 때 사람들은 주인공을 받아들이고 끊임없는 이야기를 나눈다.

: 그리고 음악이 절정에 달할 때 말풍선이 나타나고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이 공감이 됐어요.

: 사람들의 마음을 경계를 허무는 매개로 강아지가 등장한 것도 중요해요. 주인공이 배척을 당하지만, 그는 또 약자인 강아지를 구해주거든요. 이렇게 강자와 약자가 정해진게 아니라 누구든 약자이고 이방인일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리고 강아지는 흑이든 백이든 상관하지 않고 누구든 먼저 탐색하고 경계를 뚫고 나간 뒤 친구와 가족이 되거든요.

: 또 이 곡에서 ‘우린 다르기엔 너무 같아요’라는 가사가 있는데 저는 그 부분이 사람을 넘어 모든 생명에게 적용되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영상에서 강아지가 등장함으로서 동물권에 관한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연결이 되어서 좋았어요.

: 나이트오프의 음악이 미술관에서 보여지게 된 것은 어떤 기분이었나요?

: 우선 보통은 뮤직비디오 작업을 할 때 음악이 주가되고 영상은 그 다음이거든요. 그런데 이번엔 뭐가 메인이라고 할 수가 없었고, 계속해서 서로 맞춰가는 과정이 새로운 자극이고 재밌는 경험이었습니다.

: 전시장에서 기분이 묘했어요. 은유적으로 주제를 다루는 미술가들의 작품을 보다가 ‘그러나 우리가 사랑으로’ 영상을 보니 관객에게 좀 더 친절히 설명해주는 느낌이었고, 우리의 작업이 미술관에서 이런 역할을 하고 있구나 그 때 이해가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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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가 열리는 1년 동안 미술관에는 음원을 공개해달라는 요청도 왔다고 합니다. 또 ‘나이트오프’의 팬들은 제주도에 가야만 들을 수 있는 미공개음원을 멀리서 궁금해했고요.

다음달 초에는 이 음원이 한정판 LP로 발매된다고 합니다. 또 포도뮤지엄의 ‘그러나 우리가 사랑으로’ 전시는 9월 3일까지 무료로 공개된다고 하니 관심있는 분들은 전시장에 직접 가셔서 들어보세요!

※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금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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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