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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바오, 네가 어디 있건 넌 영원한 할부지의 아기 판다야”

입력 | 2023-07-29 01:40:00

[위클리 리포트] 곧 한국 떠나는 ‘국내 1호 아기판다’
에버랜드서 아이돌 못지않은 인기
유튜브 구독자도 100만 명 돌파
영상보며 멍때리는 ‘푸멍족’ 양산




판다 푸바오가 강철원 사육사와 팔짱을 끼고 있다. 강 사육사가 스마트폰 화면을 보여 주려 하지만 푸바오는 강 사육사에게 더 관심을 보이며 가까이 안기고 있다.

국내 1호 아기 판다 푸바오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푸바오가 노는 모습을 영상으로 보며 멍 때리는 ‘푸멍’이 확산되고 푸바오 생일날 팬들은 지하철역에 축하 광고판을 걸어줬다. 내년에 중국으로 돌아가는 푸바오의 ‘역주행 인기’를 분석했다.》




이달 20일 세 살 생일을 맞은 ‘푸바오’가 대나무와 당근으로 만든 케이크를 먹고 있다. 에버랜드 제공

“푸바오, 네가 어디에 있건 넌 영원한 할부지의 아기 판다야.”

2020년 7월 20일 태어난 ‘국내 1호’ 아기 판다 푸바오의 만 3세 생일파티는 어느 때보다 특별했다. 어쩌면 한국에서 보내는 마지막 생일이 될 수 있어서다. 이르면 다음 달 중국 야생동물보호협회와 푸바오를 언제, 어떻게 보낼지 반환 논의가 시작된다. 푸바오가 세상에 나왔을 때부터 자라나는 매 순간을 함께해온 에버랜드의 강철원 담당 사육사(54)는 훗날 푸바오에게 어떤 작별인사를 건네고 싶은지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돌잡이에서 행복을 뜻하는 ‘워터우’(빵)를 잡은 아기 판다 푸바오를 강철원 사육사가 웃으며 바라보고 있다. 

아기 판다 푸바오가 ‘역주행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생일을 이틀 앞둔 이달 18일 서울 지하철 2호선 삼성역 3, 4번 출구 사이에 ‘해피 바오 데이’라는 생일 축하 광고판까지 걸렸다. 온라인 커뮤니티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모금해 푸바오 생일을 축하해줬다. 아이돌 스타들의 전유물이었던 지하철 생일 축하 광고의 주인공이 바로 푸바오가 된 것. 80명까지 참석할 수 있는 푸바오 생일파티 현장에는 지원자 8000여 명이 몰려 100 대 1 경쟁률을 보였다.

경기 용인 경전철 전대·에버랜드역에 걸린 푸바오 생일 축하 광고판 앞에서 푸바오 인형이 ‘인증샷’을 찍고 있다. 푸바오 팬들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모금해 푸바오 생일 축하 광고를 내걸었다.

경기 용인시 에버랜드 판다월드에는 대형 렌즈가 달린 ‘대포 카메라’로 푸바오를 촬영하는 팬부터 “마음이 편안해진다”며 3∼4시간씩 푸바오를 바라보며 ‘멍 때리는’ 이른바 ‘푸멍족’을 쉽게 볼 수 있다. 용인시의 에버랜드까지 가진 못해도 유튜브로 ‘랜선 푸멍’을 자청하는 이들도 많다. ‘용인 푸 씨’ 푸바오가 한국인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 세상 무해한 ‘가족 드라마’

에버랜드 판다월드 내에서 생활하고 있는 엄마 판다 아이바오(왼쪽)와 아기 판다 푸바오.

이보다 귀엽고 무해한 가족이 있을까. 엄마(아이바오), 아빠(러바오), 딸(푸바오)에 이어 이달 7일 엄마 아이바오가 출산한 국내 첫 쌍둥이 판다 자매까지 합류해 다섯 식구가 된 바오 가족 얘기다. 여기에 강철원, 송영관 사육사는 각각 ‘강바오’, ‘송바오’라는 애칭으로 ‘바오 세계관’에 합류했다. 아이바오·러바오의 아빠이자 푸바오의 할아버지 역할이다.

바오 가족의 일상은 에버랜드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시시각각 공유된다. 27일까지 550여 편의 다채로운 판다 영상이 올라와 있다. 에버랜드 유튜브 채널은 최근 구독자 수가 급증해 100만 명을 돌파했다. 유명 유튜버나 K팝 스타, 콘텐츠 제작 전문 채널을 제외하고 일반 기업의 유튜브 채널이 구독자 수 100만 명을 달성한 사례는 드물다. 올해 상반기(1∼6월) 새로 늘어난 구독자만 해도 23만 명에 이른다.

이달 7일 태어난 푸바오 동생인 쌍둥이 판다들이 보살핌을 받고 있다. 생후 20일 만에 찍은 것으로 판다 특유의 검은색 털이 나와 있다.

이달 11일에는 쌍둥이 출산 과정을 책임진 사육사의 뒷이야기가 ‘전지적 할부지 시점’이라는 제목으로 공개됐다. 출산 전날인 6일 오후부터 7일 새벽까지 12시간 동안 사육사가 밤새 아이바오 곁을 지키는 모습이 담겼다. 영상 속 아이바오는 출산 직후 예민한 와중에도 갓 태어난 새끼를 입에 물고 마치 보여주려는 듯 사육사 쪽으로 다가온다. 사육사는 아이바오가 진통을 시작한 순간부터 출산하기까지 분 단위로 행동과 상태를 체크해 ‘출산 일기’를 남겼다.

팬들은 ‘바오 가족’ 구성원들의 캐릭터와 관계성에 열광한다. 강 사육사는 “러바오는 활발한 개구쟁이”로, “아이바오는 모성애가 아주 강해 새끼들을 잘 돌보며 필요할 땐 단호하게 교육할 줄 아는 좋은 엄마”로, “푸바오는 엄마 아빠 성격을 골고루 닮아 호기심이 많고 애교가 많은 친구”로 각각 묘사한다. 여기에 푸바오를 영락없는 ‘손녀 바보’의 얼굴로 바라보는 강바오 사육사까지 더하면 한 편의 가족 드라마가 뚝딱 완성된다. 퇴근하고 바오 가족 영상을 2시간씩 본다는 직장인 황모 씨(29·여)는 “아이바오가 딸 푸바오에게 주는 사랑을 내가 함께 받는 기분이 들어 힐링된다”고 말했다.





● 다가온 이별, 역주행의 시작

2020년 11월 4일 푸바오(福宝)는 생후 100일을 맞아 ‘행복을 주는 보물’이라는 이름을 선물받았다. 판다는 초기 생존율이 낮아 안정기에 접어드는 100일 즈음 중국어로 이름을 지어주는 것이 관례다.

푸바오는 성 성숙이 이뤄지는 만 4세가 되기 전 짝을 만나기 위해 중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에버랜드를 운영하는 삼성물산과 중국 야생동물보호협회가 체결한 협의서에 따라 만 3세가 되면 관련 협의를 시작한다. 내년이면 푸바오를 못 볼 수도 있다는 아쉬움에서인지 최근 들어 푸바오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실제로 2021년 7월 첫 생일 기념으로 에버랜드 동물원에서 펴낸 ‘아기 판다 푸바오’ 도서가 출간 2년이 지나 역주행 중이다. 출간 당시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에세이 분야 15위로 시작해 20위권 밖으로 내려가 집계가 안 되다가 올해 6월 넷째 주 15위에 재진입해 7월 넷째 주엔 12위까지 올라왔다.

푸바오의 3세 생일을 기념해 예스24 한정 특별판으로 나온 ‘아기 판다 푸바오’ 개정판(시공주니어)은 예약 판매만으로 예스24 7월 셋째 주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표지를 바꾸고 푸바오의 미공개 사진 10종, 강철원 사육사의 친필 사인, 푸바오 발도장 등을 새롭게 수록했다. 예스24 판매 현황을 보면 구매자의 87%가 여성이었다. 연령별로는 20대(28.9%)와 30대(47.4%) 구매자 비율이 76.3%로 높았다. 2030 여성 독자들에게 압도적 지지를 받은 셈이다.

2021년 7월 첫돌을 맞은 푸바오가 에버랜드 판다월드 내 나무 위에 올라가 있다. 이날 에버랜드는 푸바오의 생일을 축하하는 ‘랜선 돌잔치’를 열었다.

카카오톡 대화방에서 쓰는 ‘푸바오는 한 살’ 판다 이모티콘 역시 출시 2년여 만에 인기 순위 톱100에 재진입했다. 첫 출시 당시 판매량 기준 6위까지 올랐다가 시간이 흐르며 자연스럽게 순위 밖으로 밀렸다가 말 그대로 ‘역주행’한 것. 에버랜드 굿즈 판매에도 푸바오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에버랜드 전체 방문객 10명 중 1명은 인형, 헤어밴드 등 판다 관련 굿즈를 기념품으로 구입한다. 푸바오와의 추억을 일상에서 이어가는 셈이다.

떠나기 전 푸바오의 모습을 눈에 간직하기 위해 에버랜드를 직접 방문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그동안 ‘랜선 이모’만 하다가 이달 말 직접 푸바오를 보고 온 직장인 이모 씨(28·여)는 “‘언젠가 한번은 꼭 보러 가야지’ 하면서 시간을 못 내고 있었는데 이제 푸바오가 떠난다고 하니 막차를 타는 마음으로 다녀왔다”고 말했다.





● “할부지를 만난 건 행운이야”



만남과 이별에 익숙해져야 하는 사육사라는 직업. 정든 동물과 헤어질 때 특별한 마음가짐이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강 사육사는 “어느 누구와도 예정된 이별이기에, 이별 후에 잘해주지 못했음을 후회하지 않기 위해 진심을 다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그는 매년 봄 바오 가족의 방사장에 유채를 심는다. 2016년 각각 3세, 4세 때 한국에 온 아이바오, 러바오의 중국 고향 방사장에 유채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기 때문이다.

자기 몫의 삶을 살기 위해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여행을 떠나야 할 푸바오. 푸바오에게 고향 땅 한국은 어떻게 기억될까. 그저 아름다운 소풍으로 기억되길 바랄 뿐이다. 강 사육사에게 푸바오가 사람처럼 말을 할 수 있다면 ‘딱 한마디’ 어떤 말을 듣고 싶은지 물었다. 돌아온 강바오의 대답. “할부지를 만난 건 행운이야.”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