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포’ 홍성흔이 씨름 훈련으로 다져진 전완근을 보여주고 있다. 팔뚝이 얼굴만하다. 홍성흔은 요즘 스포테이너로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야구 선수 시절 홍성흔(46)은 목소리가 큰 포수였다. 투수가 던진 공을 받을 때면 그라운드가 떠나갈 듯이 “나이스 볼”을 외쳤다. 타석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멋진 타구를 날린 뒤엔 보란 듯이 ‘빠던(배트 플립)’을 했고, 슬라이딩으로 베이스를 터치한 뒤엔 두 주먹을 불끈 쥐며 포효를 하곤 했다. 그래서 생긴 별명이 ‘오버맨’이다.
항상 투지가 넘쳤던 그는 야구도 잘했다. 1999년 두산에서 입단해 2016년 은퇴할 때까지 통산 타율이 3할이 넘는 0.301이다. 오른손 타자로는 사상 처음으로 2000안타 고지(2046개)에 올랐고, 통산 208개의 홈런과 1120타점을 올렸다. 포수로 2번, 지명타자로 4차례 골든글러브도 수상했다. 그는 한국야구위원회(KBO)가 출범 40주년을 기념해 뽑은 KBO리그 레전드 40명 명단에도 이름을 올렸다.
홍성흔 하면 오버, 오버 하면 홍성흔이었다. 선수 시절 그는 세리머니가 화려한 선수였다. KBO 제공
그라운드 밖에서도 끼가 넘쳤다. 잘생긴 외모의 그는 가무에도 능해 행사 때마다 팬들 앞에서 춤과 노래를 선보이곤 했다. 팬들과 함께 하는 축제 무대인 올스타전은 그를 위한 무대나 마찬가지였다. 2009년 올스타전 때는 금색 가발을 쓰고 나와 팬들을 웃기더니 최다득표로 올스타 무대를 밟은 2010년에는 수염까지 달고 나왔다. 쇼맨십이 강한 그는 2006년과 2010년에는 올스타전 최우수선수(MVP)로도 선정됐다.
홍성흔은 요즘 자신의 캐릭터에 꼭 들어맞는 ‘스포테이너(스포츠+엔터테이너)’로 선수 때보다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투지와 끼로 무장한 그는 특히 스포츠 예능프로그램의 단골손님이다.
얼마 전까지 그는 축구와 농구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한 데 이어 골프 예능에도 얼굴을 비췄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채널A에서 큰 화제를 모았던 씨름 예능프로그램 ‘천하제일장사2’에서 야구팀의 주역으로 맹활약했다. 그는 “‘몸 쓰는 예능’ 프로그램에 잇달아 출연하다 보니 몸을 만들지 않을 수가 없다”며 “야구선수를 할 때보다 몸이 훨씬 크고 좋아졌다”며 웃었다.
홍성흔(왼쪽)이 씨름 훈련 도중 격투기 선수 출신 김동현과 포즈를 취했다. 홍성흔 제공
농구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홍성흔. 주전 포워드로 활약했다. 홍성흔 제공
야구를 할 때도 그는 훈련을 열심히 하는 선수였다. 예능인이 된 지금도 그 모습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그는 “내 성격상 장점이자 단점이 중간이 없다는 것이다. 이왕 하기로 했으면 뭐든지 열심히 해야 한다. 어릴 때부터 지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다”고 했다.
스포츠 예능프로그램도 그런 마음가짐으로 준비한다. 농구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때 그는 경기 하남 미사리에 있는 농구아카데미에 등록해 하루에 슛을 400개 이상 쐈다. 그는 “아무리 예능프로그램이라 하더라도 백업으로 벤치를 지키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그렇게 그는 주전 포워드 자리를 차지했다.
골프 예능을 찍을 때는 수도권 한 골프 연습장에서 한 달 간 합숙하면서 샷을 연마했다. 90대 후반이던 스코어를 요즘엔 80대 초반까지 끌어내렸다. 최근에는 76타를 친 적도 있다. 드라이버는 온 힘을 다해 때리면 300m를 보낼 수 있지만 안정적으로 250~260m 정도를 친다고 한다.
홍성흔(오른쪽)이 격투기 선수 추성훈과 함께 포즈를 취했다. 동아일보 DB
씨름 프로그램 ‘천하제일장사2’을 준비했을 때는 아예 경기대 씨름부의 지방 전지훈련에도 동행했다. 조카뻘 선수들과 함께 대구 영남대와 공주 공주생명고를 돌며 체력 훈련을 하고 기술을 배웠다. 그는 “어린 선수들과 함께 산도 오르고 웨이트 트레이닝도 했다. 정말 오래간만에 모텔 생활을 했다. 옛날 생각도 나면서 어린 선수들의 좋은 기운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그는 “씨름은 오른쪽 중심을 잡는 게 아주 중요하더라. 그래서 하체 위주의 스쾃과 데드리프트 운동을 정말 많이 했다”며 “샅바 싸움 역시 씨름의 중요한 부분이다. 샅바 싸움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는 전완근을 집중적으로 키웠다”고 설명했다. 불과 몇 달 사이에 놀랍게 성장한 그는 “생활체육 대회 일반인 부문에 한 번 도전해보라”는 추천도 받았다.
야구 레전드들과 함께한 홍성흔(가운데). 왼쪽은 ‘코리안 특급’ 박찬호, 오른쪽은 ‘국민타자’ 이승엽 두산 감독이다. 홍성흔 제공
그는 건강을 위해 먹는 것에도 신경을 쓴다. 아침은 아내 김정임 씨가 만든 단백질 셰이크로 간단히 먹는다. 모델 출신인 김 씨는 곡물 등을 넣은 식물성 단백질을 위주로 한 단백질 셰이크를 직접 제조한다. 그는 점심도 야채와 샐러드 등을 중심으로 과하지 않게 먹는다. 대신 저녁은 먹고 싶은 것을 편안하게 먹는 편이다. 그는 “모임이나 만남이 있으면 외식을 하기도 하지만 아내가 워낙 요리를 잘해 가능하면 집에서 먹는 편”이라고 했다.
2021 골든글러브 시상자로 나선 홍성흔. 수트를 입은 모습도 잘 어울린다. 동아일보 DB
운동, 식습관과 함께 그의 건강을 지탱해주는 또 하나의 버팀목은 바로 명상이다. 그는 매일 아침 일어나면 15분가량 명상을 하며 자기 자신에게 긍정적인 암시를 준다. 그는 “뭔가 거창한 걸 하는 게 아니라 호흡을 하며 ‘나는 행복하다’, ‘나는 뭐든지 이겨낼 수 있다’ 등등의 주문을 건다”며 “하루를 명상과 함께 시작하는 것만으로도 자신감이 생기고 나 자신이 반듯해지는 걸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그가 대학생 때 했던 108배의 연장선이다. 경희대 재학 시절 소심한 성격이었다는 그는 한 스님의 조언에 따라 108배를 꾸준히 한 뒤 체력과 자신감을 얻었다고 했다. 그는 “108배가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됐다. 끈기가 없던 내가 유일하게 끈기 있게 한 게 108배였다. 7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108배를 하면서 하체를 키우면서 인내를 배웠다. 지금은 108배 대신 명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샌디에이고 마이너리그 코치 시절의 홍성흔. 영어를 잘 못했던 그는 특유의 친화력과 화이팅으로 정식 코치가 됐다. 홍성흔 제공
누구보다 바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홍성흔이지만 전 세계를 덮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없었다면 그는 여전히 야구장을 누비고 있었을 터였다. 은퇴 후 박찬호의 도움으로 미국 프로야구 샌디에이고 산하로 코치 연수를 떠났던 그는 특유의 성실함과 파이팅으로 샌디에이고 산하 마이너리그 팀의 정식 코치가 됐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리그가 축소 운영되면서 2020년 초 한국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그는 결혼 뒤 처음으로 가족과 함께 지낼 수 있게 됐다. 그는 “선수 때는 시합을 다녔고, 은퇴 후엔 곧바로 미국으로 연수를 떠나면서 아이들과 함께 하지 못했다”며 “지금은 어느 때보다 아빠가 필요한 때라 아이들을 뒷바라지 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했다. 큰 딸 화리는 대입을 앞두고 있고, 야구를 하는 아들 화철 군은 내년에 고교에 진학한다.
그는 “모처럼 가족과 함께 하는 요즘이 정말 행복하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은 여전히 고향과도 같은 야구를 바라보고 있다”며 “아이들이 조금 더 자란 후 다시 야구계로 돌아가 바닥부터 다시 시작할 생각을 갖고 있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다시 한번 투지 있게 부딪쳐 보겠다”고 말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