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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기업 “엔저 방어 마지노선 902원”… 조선-가전 등 이미 피해

입력 | 2023-07-31 03:00:00


국내 수출기업들이 방어할 수 있는 원-엔 환율 마지노선은 100엔당 평균 약 902원인 것으로 조사됐다. 원-엔 환율은 28일 905.26원까지 떨어졌지만 일본은행이 금리 억제정책을 일부 완화하기로 하면서 엔저(円低) 현상이 끝날 것이란 시장의 기대도 나오고 있다.

30일 본보가 대한상공회의소에 의뢰해 국내 수출기업 300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엔저로 직간접의 피해가 시작됐거나 시작될 것으로 예상되는 마지노선’은 평균 901.84원(263개사 응답)이었다. 조사 시점은 원-엔 환율이 905∼912원을 오가던 이달 17∼20일이다.

원-엔 환율 마지노선에 대해 대기업 응답 평균은 907.41원으로 28일 기준 피해 영향권에 들어 있었다. 중소기업(905.07원)과 중견기업(897.21원)의 한계선은 대기업보다 낮았다. 주로 중간재 기업 간 거래(B2B) 비중이 높은 중소·중견기업에 비해 글로벌 시장에서의 완제품 경쟁도가 높은 대기업이 엔저에 따른 가격 경합에 민감한 것으로 대한상의는 분석했다.

업종별로는 일본과 수출 경합도가 높은 조선(935.83원), 가전(916.67원), 섬유(914.17원), 철강(913.03원) 기업들이 피해를 보고 있는 상황이다. 철강업계 한 관계자는 “상대적으로 비싸게 거래되던 일본산 고품질 철강이 가격 경쟁력까지 갖추게 되면서 수주 경쟁에서 우리가 불리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만 국내 수출기업들이 체감하는 영향은 8년 전 슈퍼 엔저 시기와 달리 크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엔저의 장기화 추세가 귀사의 경영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응답 기업의 73.0%가 ‘영향 없음’이라고 답했다. ‘다소 피해’(16.7%), ‘큰 피해(3.3%)’를 합친 것보다 월등히 높은 비율이다. ‘다소 도움’(7.0%)이라고 응답한 기업도 있었다. 업종별로는 기계, 철강업종에서 ‘다소 피해’ 응답 비중이 높았다.

김문태 대한상의 산업정책팀장은 엔저에 대한 국내 산업계 방어력 상승을 놓고 “일본산 소재·부품을 들여와 고부가 기술을 더하는 식의 공급망 구조가 확대되고, 일본 제조업계의 후퇴로 수출 품목도 차별화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기업들은 엔저 장기화가 영향이 없거나 오히려 도움이 되는 이유로 원화 동반 약세로 영향 미미(44.6%)를 가장 많이 꼽았지만, △일본산 부품·소재 등 수입 비용 하락에 따른 채산성 개선(24.8%) △한일 수출 구조 및 주력 품목이 차별화됨에 따라 영향 미미(21.9%) △국내 산업의 기술력 향상으로 가격 요인에 의한 타격 미미(10.7%) 등의 응답도 많았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기업들의 체질 개선으로 환율 영향이 과거보다 줄어들긴 했지만 급격한 환율 변화는 여전히 위협적인 요인”이라며 “만약 엔저 시대가 마무리된다 해도 기업들은 ‘환 리스크 관리’를 계속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곽도영 기자 no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