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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칼럼/조은아]‘축구 경기’가 돼 버린 스페인 총선의 교훈

입력 | 2023-07-30 23:57:00

거대 양당 중심의 정치-이념 양극화 심화
시급한 경제 개혁-국가 현대화 발목 잡아



조은아 파리 특파원


투표 열기가 폭염처럼 뜨거웠던 지난주 스페인 총선 결과는 예상과 달리 미적지근했다. 제1야당인 중도 우파 국민당(PP)이 페드로 산체스 총리가 이끄는 중도 좌파 집권 사회노동당(PSOE)에 압승을 거둘 것으로 전망됐지만 실상은 달랐다.

국민당은 1위를 차지하긴 했지만 하원 전체 의석 350석 가운데 136석을 얻는 데 그쳤다. 33석을 얻은 극우 정당 복스(VOX)를 끌어들이더라도 과반 기준인 176석에 미치지 못한다. 좌파나 중도 좌파 정당과 손잡지 않으면 연립정부를 꾸리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국민당이 사회노동당과 연정을 할 이유는 없기에 벌써부터 총선을 다시 치러야 할 수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PSOE가 122석을 얻은 데서 알 수 있듯 이번 선거에서는 정치 양극화가 두드러졌다. 투표율은 70%를 넘겼고 부재자 우편 투표가 사상 최다였다. 그만큼 좌우 양 진영이 지지자 결집에 애썼다는 얘기다. 우파 지지자는 스페인 국기 색상인 노랑과 빨강 리본을, 좌파 지지자는 무지개색 리본을 손목에 차고 거리로 나왔다. 그 결과 거대 정당인 국민당과 사회당 합산 득표율이 2019년 45%에서 65%로 뛰었다. 영국 BBC 방송을 비롯한 외신은 ‘선거가 축구 경기가 됐다’ ‘부족끼리 겨루는 격’이라고 논평했다.

이런 모습은 기성 거대 정당이 힘을 잃고 중도나 극우 성향 정당이 부상하며 다극화하는 다른 유럽 국가와 대조된다. 프랑스에서는 현대 정치사를 양분하던 우파 공화당과 좌파 사회당이 지난해 대선에서 각각 당선 의석수 5위, 10위에 그쳤다. 초라한 몰락이라는 소리가 나왔다. 독일에선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 지지율이 역대 최고인 20%대를 찍으며 올라프 숄츠 총리가 이끄는 연정에 참여하는 주요 3당을 제쳤다.

스페인 정치 양극화의 뿌리는 깊다. 1975년 파시스트 프란시스코 프랑코 독재가 막을 내린 이후 민주화 과정에서 두 진영 갈등이 깊어졌다. 좌우가 열린 토론을 제대로 하지 못해 양극화가 심해졌다는 후회 목소리가 들린다. 여기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심각해진 경제 양극화가 이념 갈등에 불을 질렀다.

지난해 10%대로 치솟은 물가를 비롯해 경제가 어려워지자 집권당에 대한 민심이 악화됐지만 물밑에서는 ‘극우를 경계해야 한다’는 심리가 견제하는 힘으로 작동했다. 달궈질 대로 달궈진 ‘양극화’라는 프라이팬에 기름을 부은 것이다. 결국 양당은 정책 대결보다는 서로에 대한 네거티브전에 좀 더 치중했고 이는 양 진영 유권자들에게 제대로 먹혔다.

유럽연합(EU) 국가들은 이런 스페인을 안타깝게 지켜보고 있다. 산적한 민생 문제를 삼켜 버린 정쟁이 경제 규모 세계 14위 국가 경쟁력을 갉아먹고 있기 때문이다. 스페인 경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이 완화된 지난해 5.5% 성장했지만 올해는 2.1%, 내년에는 1.9% 성장하는 데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경제포럼(WEF)은 “양극화가 스페인의 현대화와 개혁을 방해한다”고 지적했다.

스페인보다 경제 순위가 한 계단 앞선 13위 한국으로서는 스페인의 현실이 결코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최근 미국 홍보(PR) 컨설팅 기업 에덜먼 조사에서 내년 4월 총선을 앞둔 한국은 브라질 멕시코 등과 함께 ‘정치, 경제 양극화 위험국’으로 꼽혔다. 정치인도 유권자도 진영 논리에만 빠져 선거를 무조건 이겨야만 하는 축구 경기로 삼는 우를 범해 노동 금융 복지 같은 시급한 경제 개혁 과제들을 더 후퇴시켜서는 안 된다.





조은아 파리 특파원 ac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