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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보증금 1억 빼내 올인”… 2차전지株 ‘묻지마 투자’

입력 | 2023-07-31 03:00:00

에코프로 등 급등에 “벼락거지 될라”
예탁금 1년새 최대… ‘빚투’도 급증
증시 日거래대금 한달새 41% 증가
2차전지 업종이 전체의 48% 달해… 매도 의견 낸 증권사엔 집단항의도




“두 달 뒤 돌려줘야 할 전세보증금까지 올인했는데 가슴이 철렁했죠.”

40대 직장인 석모 씨는 보증금 1억 원을 끌어모아 지난주 포스코홀딩스 주식을 샀다. “더 늦기 전에 사야 돈을 벌 수 있다”는 지인의 말에 무리하게 급전을 마련했다. 이차전지 업체 에코프로나 에코프로비엠에 비해 안전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26, 27일 이틀에 걸쳐 장중 최고가(68만2000원) 대비 10% 넘게 주가가 급락했다. 석 씨는 “다행히 28일 주가가 반등했지만 전세금 반환 시점까지 오를지 안심할 수 없어 주말에도 마음이 편치 않다”고 말했다.

아직 투자금을 마련하지 못한 이들도 마음이 편치 않기는 마찬가지. 20대 직장인 박모 씨는 진작에 이차전지 주식을 사지 못한 걸 생각하면 한숨이 나온다. 박 씨는 “‘벼락거지’(타인의 주식 등 자산가격만 급등해 상대적 빈곤감에 시달리는 사람) 신세를 면하려고 매일 주가를 검색하고 인터넷 종목토론방을 기웃거린다”고 했다.

연초 10만 원대였던 에코프로 주가가 장중 150만 원을 넘기며 1000% 이상 급등하는 등 이차전지 투자 열풍이 불고 있다. 이전 닷컴 버블 등에 비해 증시에서 2차전지 쏠림 현상은 더 두드러지고 있다. 개인투자자들의 투자 과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 ‘포모(FOMO) 심리’에 역대급 자금 몰려
30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투자자예탁금은 27일 기준 58조1900억 원으로 지난달 말(51조8000억 원)보다 6조3900억 원 늘었다. 지난해 7월 1일 이후 1년 만에 최대 규모다. 예탁금은 투자자가 주식을 사려고 증권사 계좌에 맡겨두거나 주식을 팔고 찾지 않은 자금으로, 주식 투자 열기를 가늠하는 지표다. ‘빚투’(빚내서 주식 투자)도 이달 들어 급증했다. 신용거래융자 잔액은 지난달 말 19조4000억 원에서 이달 28일 20조1000억 원으로 늘었다.

이달 코스피·코스닥 시장을 합친 일평균 거래대금은 약 27조300억 원에 달했다. 전월(19조1000억 원) 대비 41% 급증한 규모다. 일평균 거래대금이 27조 원을 넘어선 건 2021년 8월(27조4530억 원) 이후 처음이다.

증시 자금은 이차전지로 몰리고 있다. 메리츠증권에 따르면 2014∼2017년 당시 증시를 주도한 셀트리온 등 제약업종은 코스닥 거래대금의 30% 정도를 차지했다. 이에 비해 이차전지 업종은 26일 기준 코스피·코스닥 전체 거래대금의 47.6%에 달했다.

이는 개인투자자들 사이에서 ‘상승장에서 나만 낙오될지 모른다’는 포모(FOMO·Fear Of Missing Out) 심리가 확산된 영향이 컸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포모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으면 무조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본능적 심리”라며 “다른 사람이 소유한 걸 나도 갖고 싶어하면 이를 실제 가치보다 더 높게 책정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 매도 리포트에 투자자 집단 항의도
이차전지 투자가 ‘묻지 마 투자’ 행태로 변질되면서 경고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개인투자자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는 종목토론방에서는 과도하게 높은 주가를 목표가로 잡고 선동하는 행태가 나타나고 있다. 부정적 주가 전망을 내면 ‘공매도 세력’으로 몰거나, 주식을 판 투자자에게 ‘배신자’ 꼬리표를 붙여 공격하는 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증권사가 이차전지 종목에 대해 ‘매도’ 의견을 내면 일부 강성 투자자가 해당 증권사와 애널리스트를 대상으로 집단 항의를 벌이기도 한다. 이에 증권사들이 5월 하순 이후로는 에코프로에 대해선 리포트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최근 주가가 급락하자 일부 투자자는 “일부 세력이 장난을 치고 있다”며 금융감독원에 민원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래 수익에 대한 기대만으로 주가가 급등하는 건 비정상”이라며 “유튜버 등의 조언만으로 묻지 마 투자를 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말했다.





이동훈 기자 dhlee@donga.com
소설희 기자 facth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