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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칼럼/김현수]모두가 모두에게 화가 난 시대

입력 | 2023-07-31 23:45:00

美 인종-性-이념 전쟁, 정치 거치며 더 확산
세계로 퍼진 혐오의 일상화, 韓도 예외 없어



김현수 뉴욕 특파원


올해 4월 4일(현지 시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뉴욕 맨해튼 지방법원에 출두하던 날, 눈앞에 펼쳐진 법원 앞 공원 풍경은 흥미진진했다. 뉴욕경찰(NYPD)이 설치한 울타리는 공원을 대각선으로 가로질렀다. 울타리 양쪽에서는 반(反)트럼프와 친(親)트럼프 진영 사람들이 울타리에 기대어 서로에게 소리치고 있었다. 어차피 서로 상대 말은 듣지도 않았다.

울타리 양쪽을 오가며 사람들을 만났다. 양쪽 모두 자신은 애국자인데 상대편이 나라를 망치고 있다며 목청을 높였다. 한 트럼프 지지자는 언론에 대한 불신과 불만을 터뜨리며 “내 발언은 익명으로 해 달라. FBI(연방수사국)가 나를 쫓을 수 있다”고 말했다.

두 쪽 난 이날 공원 풍경은 미국에서 확산되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분노’를 시각화한 느낌이었다. 내가 속한 집단이 아닌 다른 집단에 대한 적개심은 점점 커지고 있다. 지지하는 정당, 낙태, 성(性)정체성, 인종을 중심에 둔 ‘문화 전쟁’은 물론이고 남과 여, MZ세대(밀레니얼+Z세대)와 베이비부머(1946∼1964년 출생자) 간 갈등도 뜨겁다. 오죽하면 미합중국이 아닌 ‘미분열국(Devided States of America)’이란 말이 나올까.

얼마 전 뉴욕에선 ‘자전거 캐런’ 논란이 일었다. 캐런은 한국의 ‘김 여사’나 ‘맘충’처럼 중년 백인 여성을 비하하는 용어다.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90초짜리 영상에서 한 백인 임신부는 전기자전거 대여를 놓고 10대 흑인 여럿과 실랑이를 벌이다가 ‘도와 달라’고 소리 지른다. 인종의 틀로 보면 백인이 흑인 자전거를 빼앗고는 피해자 행세하며 흑인을 범죄자 취급한 것이다. 남녀라는 틀에서는 남성들이 임신부를 두고 압박하는 모양새다. 대중은 인종 프레임에 손을 들어줬고 그 임신부를 ‘인종차별주의자 캐런’으로 낙인찍었다.

이후 반전이 일어났다. 백인 여성이 먼저 자전거를 빌렸는데 청소년들이 빼앗으려 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영수증이 나온 것. 뉴욕타임스(NYT) 칼럼니스트도 “여성 측 증거가 좀 더 신빙성 있어 보인다”며 무분별한 ‘캐런 낙인찍기’를 경계했다. 실상을 파악할 수 없는 짧은 영상만으로 미워해야 할 대상을 정하고,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사람들이 희생자를 만드는 전형적 사례다.

타협과 중재를 해야 할 정치는 표에 눈멀어 되레 갈등과 분노를 부추긴다. 모든 사안이 정치 의제로 탈바꿈해 기후변화나 에너지 정책까지 진보와 보수 대결장이 됐다. 전기차나 트위터도 정치적 성향을 의심받는다. 내년 대선을 앞둔 미국 여러 주는 ‘금지 도서 관련 도서관 사서 처벌’이나 ‘제3의 성(性) 보호’같이 이념 대결에서 선명성을 부각시키는 법안을 쏟아낸다.

갈등과 논란이 정치를 거치며 더 증폭되는 악순환은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결혼율도 떨어뜨린다. 미 시사주간지 디애틀랜틱에 따르면 젊은이들은 데이트 앱에서 정치 성향을 보고 상대를 거른다. 2010년 이후 여성은 진보 성향으로, 남성은 보수 성향으로 이동하며 진보는 여성 1명당 남성 0.6명, 보수는 남성 1명당 여성 0.6명에 그쳐 연애하기조차 힘들어졌다. 디애틀랜틱은 한국을 빼놓지 않았다. “결혼율과 출산율이 사상 최저인 한국에서 남녀 이념 격차는 더 크다”고 했다.

왜 서로 다른 집단에 분노하며, 상대를 조롱하고 혐오하는 말이 세계적 현상으로까지 됐을까. 정치와 경제 양극화나 소셜미디어 영향을 비롯해 그 이유로 여러 가지를 든다. 진단은 어렵고 해결은 더 어렵다. 그렇다고 손놓고 있기엔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 크다.




김현수 뉴욕 특파원 kimh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