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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하라에 태양전지 깔아도 이게 없으면 안 됩니다[딥다이브]

입력 | 2023-08-02 08:00:00


올여름 전 세계가 폭염으로 펄펄 끓고 있습니다.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실감하게 되는데요. ‘2050년 탄소중립(넷제로)’이란 목표엔 더 힘이 실릴 전망입니다.

탄소중립을 위해선 무엇이 가장 시급하고도 중요할까요. 전기자동차 확산과 이차전지 기술? 태양광이나 풍력 발전? 수소에너지? 혹시 이건 어떨까요. 구리 전선과 변압기.

친환경 첨단 기술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고요? 네, 그다지 멋져 보이진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엄청난 성능의 전기차가 나오고 태양광 패널을 대규모로 깔아놔도, 전기가 필요한 곳으로 흘러가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일까요. 탄소중립에서 ‘잊혀진 거인’이었지만 최근 그 존재감이 다시 드러나고 있는 전력망 이야기를 딥다이브 하겠습니다.

친환경? 신재생? 그게 다 전력망 없으면 안 된다고요. 게티이미지 

*이 기사는 1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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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가 흐르지 않으면 무슨 소용?
프랑스 남서부 푸아투사량트엔 ‘콩투어 풍력발전소’가 세워져 3만 가구에 전력을 공급할 계획입니다. 아마도 8년 뒤에나 말이죠. 풍력발전소 건설이 그렇게 오래 걸리냐고요? 아닙니다. 건설은 12개월이면 충분합니다. 문제는 전력망이죠. 발전소에서 생산하는 전기를 가정∙사무실∙공장으로 보내줄 전력망을 구축하는 데 8년쯤 걸릴 거라고 합니다. 이미 대기 중인 다른 프로젝트가 워낙 많기 때문입니다. 프랑스 이외의 다른 유럽 국가에서도 마찬가지이죠. 콩투어 풍력발전소 프로젝트를 맡은 베이와의 마티스 타프트 CEO는 FT에 이렇게 말합니다. “전력망 연결 지연이 유럽뿐 아니라 미국과 호주의 재생에너지 프로젝트의 주요 장애물입니다. 우리는 전력망 연결을 위해 5년, 10년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입니다.”

유럽의 태양광, 풍력발전소 건설 프로젝트 중에 전력망과 연결되지 못한 채 대기 중인 경우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게티이미지  

미국 주택시장은 여전히 호황이지만 미국 전역엔 공사를 하지 못한 빈 주택부지가 흩어져 있습니다. 건설 노동자가 부족하거나 착공허가를 얻지 못해서가 아닙니다. 변압기가 부족해서입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사우스캐롤라이나주 그린빌의 주택건설업자 발언을 소개합니다. “목재와 장비 부족을 걱정해 대비해왔지만 이제 갑자기 전력 변압기를 구할 수 없게 됐습니다. 106개의 타운홈 부지를 보유하고 있는데 6곳만 공사를 진행할 수 있었죠.” 미국 공공전력협회에 따르면 주택 프로젝트 5건 중 1건은 변압기 부족 문제로 건설이 지연되거나 취소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가정용 작은 변압기는 조달하는 데 18개월, 대형 변압기는 20~39개월이 걸립니다.

도대체 왜 선진국들이 전기를 연결하지 못해서 이 아우성일까요. 이른바 ‘전기 인프라 혁명’이 시작됐기 때문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전력망 관련 수요는 폭발하는 데 공급은 심하게 부족합니다. 그 얘기인즉슨 앞으로 전력망 부족 문제가 더 심각해질 수 있는 겁니다.


전기 인프라 혁명이 시작됐다  

태양광 발전단지를 새로 만들면 전력망도 새로 깔아야 한다. 게티이미지

갑자기 전기 인프라 혁명이라니. 뜬금없게 느껴지시나요? 그럼 전문기관들이 내놓은 이 예측을 한번 보시죠.

①블룸버그NEF 3월 발표 보고서
=전 세계가 탄소중립으로 가기 위해선 2050년까지 전력망에 최소 21조4000억 달러를 투자해야 한다. 전 세계 연간 전력망 투자 금액은 2022년 2740억 달러였지만, 2040~2050년 기간엔 연간 8710억 달러로 늘어나야 한다. 전력 케이블은 엄청나게 확장돼, 2022~2050년 동안 총 8000만㎞가 새로 깔려야 한다. 이는 오늘날 전 세계에 깔린 전력 케이블 전체 길이와 맞먹는 수준이다. 새로 설치될 케이블 중 약 6800만㎞는 지상 케이블, 1200만㎞는 지하 케이블, 20만㎞는 해저케이블이 될 전망이다.

②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 전망치
=전 세계가 합의한 목표치(지구 기온 상승 폭을 산업화 이전 수준 대비 1.5도 이내로 유지)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전 세계의 재생에너지 전력이 현재 3000GW에서 2030년 1만GW로 증가해야 한다. 매년 평균 1000GW씩 늘어나야 한다는 뜻이다. 이에 따라 전력망에 대한 전 세계 투자 금액(연간)도 2022년 3300억 달러에서 2030년 5500억 달러로 늘어야 한다.

③미국 국립신재생에너지연구소(NREL) 2022년 8월 연구 결과
=미국 에너지부의 로드맵(2035년까지 탄소배출 없는 전력망 구축) 달성을 위해선 태양광∙풍력발전 같은 재생에너지 기술이 전례 없는 규모와 속도로 배치돼야 한다. 바람과 태양광이 많은 지역에서 (전기 사용이 많은) 미국 동부로 에너지를 전달하기 위한 송전망이 필요하다. 2035년 미국의 총 송전용량은 현재의 3배가 돼야 한다. 연간 최대 1만 마일의 대용량 라인을 깔아야 한다는 뜻이다.


가뜩이나 정전사태에 시달리고 있는 미국. 탄소중립으로 가려면 훨씬 더 많은 전기와 전력망이 필요하다. 게티이미지  

전문기관의 예측이 썩 와닿지 않는다면 이건 어떤가요.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지난주 캘리포니아 전기회사 PG&E가 연 컨퍼런스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속가능한 에너지 미래로 전환하려면 (미국은) 전기 출력이 (지금의) 3배가 필요합니다. 가장 큰 걱정은 긴급성이 부족하다는 겁니다. 사람들이 전기 수요가 얼마나 될지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한마디로 태양광∙풍력 같은 재생에너지를 이용한 발전량을 크게 늘릴 거고, 그러려면 전력망을 엄청나게 새로 깔아야 한다는 게 공통적인 전망입니다. 기존에 깔려있는 석탄발전소용 전력망으로는 커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시다시피 태양광 패널이나 풍력발전기가 설치되는 곳은 외딴 지역이나 연안이거든요. 대도시나 공장지대와는 한참 떨어져 있을 가능성이 크죠. 재생에너지의 간헐성도 문제입니다. 햇빛이나 바람은 일정하게 공급되지 않죠. 태양광∙풍력은 기후에 따라 제때 전력을 공급하지 못할 수 있어서 ‘백업용 배전망’이 필수입니다.

영국 엑스터대학의 피터 크로슬리 교수는 FT에 “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력을 경제 중심으로 전달하기엔 현재의 전력망은 잘못된 위치에 있다”고 설명합니다. 즉, 새로 다시 깔아야 합니다.


문제는 돈, 그리고 금속!

막대한 전력망 투자 비용. 누가 부담할까. 게티이미지

그럼 재생에너지라는 물 들어왔으니 당장 기업들이 케이블과 변압기 생산 라인을 왕창 늘리고, 전력망 구축에 속도를 올려야 하지 않냐고요?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돈 때문입니다.

전력망 투자를 늘리는 비용을 누가 댈까요. 국가? 지자체? 발전회사? 아마도 상당 부분은 전기요금을 통해 소비자에 전가될 겁니다. 바로 우리 모두가 내야 하는 거죠. 썩 내키지 않는다고요? 그게 바로 전력망 투자가 생각처럼 빠르게 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기업 측면에서 보자면 이는 원자재, 즉 금속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일단 전기 하면 떠오르는 금속은 구리이죠. 전선은 물론 전기차, 풍력터빈, 태양광 발전부품 등에 모두 들어가니까요. 자연히 ‘전기화’가 가속화될수록 더 많은 구리가 필요한데요.

문제는 구리가 당장은 아니지만 곧 부족해질 거란 점입니다. 지난해 시장조사기관 IHS마킷은 구리 수요가 2035년까지 현재의 두배(2500만t→5000만t)로 늘어나면서 세계 경제 전반에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전망했죠. 세계적인 케이블 업체 넥상스의 크리스토퍼 게랭 CEO는 FT에 “우리는 이제 희소성의 시대로 전환하고 있다”면서 구리 공급에 따른 위험을 감안할 때 투자에 조심스럽다고 설명했습니다.

참고로 구리 자체의 매장량은 충분합니다(국제구리연구그룹 “구리 고갈 가능성 매우 낮음”). 다만 이를 파내서 제련하는 설비가 그렇게 빠르게 늘지 않는 거죠. 이런 시설을 재생에너지로 운영하려고 한다면 그 비용도 만만찮고요.

빠르게 늘어나는 전선 수요로 인해 구리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할 수 있다. 넥상스 홈페이지

미국 변압기 업계에서는 또 다른 금속도 논란거리입니다. 바로 강철인데요. 미국 행정부가 배전용 변압기 코어용 강철을 미국에선 쉽게 구할 수 없는 ‘비정질 강철(에너지 낭비 적지만 더 비쌈)’로 바꾸도록 2027년부터 의무화했기 때문입니다. 변압기 제조업체들은 괜히 생산설비를 늘려봤자 4년 뒤 그 제품 판매가 불법이 될까봐 주문이 밀려들어도 증설을 안 합니다. 폭풍과 산불이 한 번에 수백 대의 변압기를 파괴하는 기후변화까지 겹치면서 미국의 변압기 대란과 정전 사태는 점점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사하라 사막에 태양전지판 깔려면
답은 모두가 알지만(전력망을 대폭 확충해야 한다), 그리로 가기까진 적잖은 어려움이 따르는데요. 전력망 부족 현상은 팬데믹 당시의 ‘반도체 대란’처럼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해결될 문제는 아닐 겁니다. 어쩌면 꽤 오랫동안 전 세계가 탄소중립으로 가는 길의 발목을 잡을지 모르겠습니다.

이쯤에서 전력망과 관련 있는 좀 다른 이야기를 간단히 소개해볼까 합니다. 바로 ‘전기 고속도로’라고 불리는 유럽의 인터커넥터(Interconnector) 프로젝트입니다. 인터커넥터란 떨어져 있는 두 국가를 해저케이블로 연결해 각 국가에서 생산한 전력을 서로 사고팔 수 있게 하는 건데요. 이미 2021년부터 가동된 영국과 노르웨이를 잇는 세계 최장 해저 전력 케이블(720㎞) ‘노스씨링크(North Sea Link)’가 있고요. 영국-덴마크, 영국-독일, 그리스-이스라엘-키프로스를 잇는 인터커넥터도 건설 중이거나 곧 착공됩니다.

영국-노르웨이를 연결하는 인터커넥터 ‘노스씨링크’ 건설 모습. 노스씨링크 홈페이지

인터커넥터의 장점은 명확합니다. 재생에너지가 남아도는 나라(예-노르웨이의 수력에너지, 아일랜드의 지열에너지)는 전기를 좋은 가격에 팔 수 있고, 에너지가 부족한 국가는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할 수 있죠.

사실 유럽이 인터커넥트 관련해 주목하는 지역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입니다. 사하라 사막 면적의 1.2%를 태양전지판으로 덮으면 전 세계가 쓸만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었죠.

만약 이게 된다면 “아프리카가 세계 청정에너지의 가장 중요한 강국이 될 수 있다”(국제재생에너지기구의 프란체스코 라 카메라 대표)는 주장도 나오는데요. 물론 이를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게 케이블을 포함한 대규모 전력망 구축입니다. 아프리카 지역은 물론 국제 전력망까지 필요하겠죠. ‘기승전 전력망’인 재생에너지의 세계. 인류 모두의 문제이니 관심을 좀 기울여야 겠습니다. By. 딥다이브

전력인프라 관련 수요가 늘어나는 건 우리나라 수출 기업들엔 호재입니다. 요즘엔 미국의 변압기 수요 급증으로 관련 기업들이 좋은 실적을 거두기도 했죠. 장기적으로 에너지 시장을 보면 전력인프라 쪽에 대한 투자는 계속 커질 수밖에 없을 듯합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

-2050년 탄소중립이라는 목표 달성을 위해 각 국이 재생에너지 투자를 늘리면서 전력망 확축 필요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2050년까지 전 세계 전력케이블이 지금의 두배 수준으로 늘어나야 할 거란 전망입니다.

-문제는 돈입니다. 전력망 투자 비용은 전기요금에 전가되기 때문에 생각처럼 빠르게 늘리기가 어렵습니다. 원자재 문제도 있습니다. 조만간 구리 공급량이 수요를 밑돌 거란 예측이 나옵니다.

-사하라 사막에 태양광 패널을 깔아서 전 세계에 전기를 공급하면 어떨까요. 글로벌 전력망 구축만 가능하다면 현실이 될 수도 있는 이야기인데요. 재생에너지 전환과 탄소중립의 필수품 전력망을 기억하세요.

*이 기사는 1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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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란 기자 har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