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폭우로 50여 명 사망, 반복되는 재난 사전경고 목소리 있었지만 또다시 대처 못 해 현장 주민 적극 참여하는 재난 시스템 필요하다
이수곤 전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
매년 여름에 폭우가 내리면 저지대에서는 침수 피해, 산지에서는 산사태가 반복되고 있다. 지난달 집중호우 때는 전국에서 50여 명이 희생됐다. 세계 10대 경제 강국인 나라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을 납득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사고를 막을 수 있는 골든타임을 이번에도 놓쳤다는 것이다.
충북 청주 궁평2지하차도 침수 참사 때도 마찬가지였다. 지하차도에 침수가 본격적으로 일어나기 1∼2시간 전에 지역 주민과 인근 공사 관계자가 112 등에 신고했지만 차량 통제와 같은 적절한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 경북의 산사태 피해도 사전에 줄일 기회가 있었다. 인명 피해가 가장 컸던 예천군에서 산사태가 난 곳들은 상당수가 임도와 벌목지대 등으로 산사태에 취약했다. 그러나 대부분 산림청의 산사태 취약지역이 아니었다. 산사태 취약지역을 조속히 정비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산사태 취약지역을 다시 선정하고, 대비 작업을 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 이에 비교적 시급하게 할 수 있는 대비책도 있다. 국내 지질은 1m 정도의 얇은 토사가 암석 위에 얹혀 있는 형태가 많다. 이에 개발된 산 하부와 집 사이에 높이 2m가량의 철근콘크리트 보호벽을 설치하면 인명 피해를 막거나 상당 부분 줄일 수 있다.
최근에 발생한 궁평2지하차도 침수 사고와 작년 10월 말 이태원 참사는 서로 전혀 다른 재난 종류로 보이지만 여러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참사 전에 지역 주민이나 현장에 있던 사람들의 신고가 빗발쳤다. 침수나 압사 가능성을 예측하지 못했고, 상황이 발생하자 일선 공무원과 경찰이 허둥대는 행태도 같았다. 이는 국가 재난 관리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럼 무엇을 해야 하나. 재난이 나면 컨트롤타워의 부재, 즉 톱다운식 대처를 문제 삼아 왔다. 물론 컨트롤타워도 제 역할을 해야 하지만, 이제는 역으로 보텀업식 재난 관리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우리와 같은 기후조건에서 매년 여름 폭우 피해를 겪고, 지진 등의 재난 경험이 많은 일본에서는 지역 주민자치회가 활발한 역할을 한다. 평시에 대피소를 지정하여 관리하고 훈련하며, 재난 상황 시 1차적인 대응과 응급 복구까지 담당한다. 현장을 상시 파악하는 지역 조직이 기민한 대응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비해 우리는 중앙정부가 재난을 주도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1차적 책임은 지자체장에게 있지만 지역에 밀착해 적극적인 재난행정을 펴는 모습을 보기 어렵다. 지자체의 일선 공무원들은 인원이 부족해 넓은 관할 지역에서의 복잡다양한 재난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없다고 호소하기 일쑤다.
우선 일선 지자체와 현지 경찰, 소방 인력들의 적극적인 재난 대응 자세가 필요하다. 주민들도 평상시 재난 사고에 관심을 기울이고 대비해야 한다. 재난 현장과 맞닿아 있는 주민들이 사고 징후도 빨리 알아차릴 수 있고, 대응도 가장 빨리 할 수 있다. 이번 기회에 주민들이 적극 참여하는 재난 대응 시스템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국가 재난 관리 시스템의 하부조직으로서 재난 민간조직인 의용소방대, 자율방범대를 통합하고, 전국 240여 개 시군구 및 3500여 개 읍면동에 재난민방위조직을 구성하는 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현장 주민이 24시간 상시적인 실태 파악과 아울러 1차적 재난 예방의 초기에 발 빠르게 대응하고, 중앙정부 또한 상시적으로 사고 위험 요소를 살펴보고 적극 예방하는 정책을 펴야 한다.
지난 궁평2지하차도 침수 때도 승객 탈출을 도운 시내버스 운전사,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여러 명을 살린 화물차 운전사와 공무원의 용감한 행동이 있었다. 이런 사람들이 있었기에 더 큰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 이런 살신성인 정신은 높이 평가해야 하지만 재난 대응을 특정인의 기지와 용기에만 맡길 수 없는 노릇이다. 재난 피해의 반복을 막을 국가와 지자체, 주민 간을 연결시키는 긴밀한 재난 시스템 마련이 절실한 때다.
이수곤 전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