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계약갱신요구권 도입 3년 갱신 거부사유 바꿔도 다른 판단 사례별 하급심 판결 엇갈려 세입자-집주인 등 혼란 커져
서울 중랑구의 빌라 3층에 살던 세입자 A 씨는 지난해 2월 전세계약 만료를 3개월 앞두고 아래층에 살던 집주인 B 씨로부터 “계약이 끝나면 집을 비워 달라”는 통보를 받았다. 세입자가 위층에 있어 자신이 옥상을 이용하기가 불편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에 A 씨는 계약갱신요구권을 행사하며 전세계약을 2년 연장하겠다고 밝혔지만 B 씨는 거절했다. 또 A 씨가 집을 비우지 않자 퇴거 소송을 제기하며 말을 바꿔 “손자가 그 집에 살 것”이라고 했다. 주택임대차보호법상 본인 또는 직계존비속이 실거주할 경우 계약갱신을 거절할 수 있다는 조항을 활용한 것이다.
A 씨가 낸 소송을 심리한 서울북부지법 1심 재판부는 지난해 11월 “(집주인이) 제3자에게 임대하는 등 특별한 사정이 보이지 않는다”며 B 씨의 손을 들어줬다. B 씨가 거절 사유를 바꾸긴 했지만 실거주 목적이 분명한 만큼 계약갱신을 거절한 것은 정당하다고 본 것이다.
● 재판마다 다른 ‘실거주’ 요건
2020년 10월 개정 주택임대차보호법 시행으로 계약갱신요구권(세입자가 2년 더 살겠다고 요구할 권리)이 인정된 지 3년이 지났지만 임대인과 임차인 간 분쟁은 이어지고 있다. 임대차보호법은 임대인 측이 실거주할 때만 계약갱신을 거절할 수 있도록 하는데, 실거주 여부를 사전에 입증하기가 어렵다 보니 하급심 판례도 엇갈리는 모습이다.
1심 판결 후 A 씨 측은 “이미 퇴거당한 임차인은 임대인이 실제로 거주하는지 확인하기 어렵다”며 “(B 씨의 말이) ‘옥상 사용’에서 ‘손자 거주’로 바뀌는 등 진정성이 의심된다”며 항소했다. 2심을 맡은 서울북부지법 민사4부(부장판사 이동욱)는 지난달 14일 항소를 기각했고, A 씨는 상고했다.
반면 인천지법은 “아파트를 팔겠다”며 세입자에게 나가 달라고 요구했다가 “실거주하겠다”고 말을 바꾼 집주인이 세입자를 상대로 낸 퇴거 소송에서 2021년 5월 원고 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계약갱신 거절 사유를 바꾼 걸 보면 실거주 목적이 아닌 것으로 의심되므로 계약갱신 거절은 정당하지 않다”고 했다. 임대인이 실거주 목적임을 밝혔다고 하더라도 실거주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계약갱신 요구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 엇갈린 하급심 판단에 세입자-집주인 혼란
하급심 판례가 엇갈리다 보니 세입자와 집주인들의 혼란도 커지고 있다. 경기 성남시에 거주하는 세입자 김모 씨(32)는 올 초 아파트 전세계약을 갱신하려 했지만 집주인은 실거주를 이유로 거절했다. 그는 “집주인이 이미 같은 단지의 넓은 평수 아파트에 살고 있어 ‘실거주’ 사유가 의심스러웠지만 이를 입증할 방법이 없어 (소송 등을) 포기하고 이사를 갈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반면 서울 영등포구의 한 아파트를 임대하고 다른 아파트에 전세로 거주하는 임대인 박모 씨(53)는 “자녀의 대학 입학 후 원래 아파트로 돌아가려 했지만 세입자가 ‘실거주 예정 증거를 보여 달라’며 계약갱신을 요구해 난처한 상황”이라고 했다.
임대인이 실거주를 이유로 계약갱신을 거부할 경우 임차인은 주민센터에서 확정일자 부여 현황을 확인해 다른 세입자가 들어온 건 아닌지 확인할 수 있다. 임대인이 실거주하지 않는 것이 확인되면 임차인은 월 임차료 3개월분 한도 등 범위에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하지만 이미 전출 후라 현실적인 구제책으로는 부족하다는 지적도 많다.
김자현 기자 zion3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