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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국 떠나 타지 떠도는 조선백자를 제자리로”

입력 | 2023-08-03 03:00:00

10년째 달항아리 수집 이종열 중령
사비로 백자대호 35점 해외서 환수
“박물관 지어 함께 나누고 싶어”



이종열 공군 교육사령부 교육대대장이 경남 진주 큰누나의 자택에 보관하고 있는 달항아리를 손에 들고 있다. 이종열 대대장 제공


달 품은 둥근 달항아리, 대장부 육각 달항아리, 계란 달항아리…. 공군 교육사령부 교육대대장(중령) 이종열 씨(52)는 자신이 수집한 달항아리에 이 같은 이름을 붙였다. 높이와 몸체 지름이 각각 53cm로 같은 달항아리에서 보름달을, 하단부가 살짝 찌그러진 육중한 달항아리에서는 ‘대장부’를 봤기 때문이다.

높이 40cm가 넘는 둥그런 백자인 백자대호(白磁大壺)는 흔히 달항아리로 불린다. 이 씨는 2014년부터 9년 동안 중국과 일본에서 유통되는 조선 백자대호 35점을 사들인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 ‘달항아리, 하양꽃으로 피다’(궁편책)를 최근 펴냈다. 경남 진주에 사는 이 씨는 지난달 31일 전화 인터뷰에서 “군인 월급으로는 역부족이었지만 내 뜻에 공감해 마이너스 통장을 내주고 적금까지 깨서 보태준 가족과 친구들이 있었기에 수집이 가능했다”며 웃었다.

이 씨와 달항아리의 인연은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매실주를 담을 용기를 찾다가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현대 작가가 만든 달항아리 1점을 처음 구입한 게 시작이었다. 이 씨는 “가져온 달항아리를 매일 들여다보다 사랑에 빠졌다. 이후 한국 도자 역사를 공부하며 조선백자의 설움을 알게 됐다”고 했다.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수많은 백자대호가 파괴되거나 반출된 것으로 추정된다. 성하게 남은 백자대호도 6·25전쟁 때 폭격 등으로 파괴됐다. 그나마 북한에 남은 백자대호 역시 중국 단둥 등을 통해 적잖게 팔려나가 해외를 떠도는 실정이다.

“타지를 떠도는 조선백자를 고국으로 데려와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때부터 매달 100만 원씩 모으고 적금을 깨 2014년 단둥에 나온 조선 후기 백자대호 1점을 사들인 게 컬렉션의 시작이었죠.”

이 씨는 진주에 사는 큰누나 자택의 일부 공간을 빌려 수집한 백자들을 보관하고 있다. 이 씨는 달항아리의 매력으로 불완전성을 꼽았다. 그는 “완벽한 구형을 이루는 달항아리는 없다”며 “당대 기술적 한계로 인한 불완전성이 현대에 제작된 달항아리와는 다른 조선 달항아리의 매력”이라고 했다. 내년 전역을 앞둔 그는 “조선 백자대호가 지닌 아름다움을 더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다”며 “달항아리 박물관을 짓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