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폴 카버 영국 출신·유튜버
효창경기장에서 열렸던 서울시청구단이 참여하는 WK 리그를 한 경기 걸러 한 번꼴로 보러 갔던 경력이 있어 여자축구에도 중간 열정팬 정도는 된다. 여자축구를 보는 묘미는 감정적으로 격앙될 필요 없이 90분 동안 스트레스 받지 않고 오롯이 관람을 즐기다 올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응원하는 FC서울팀이 경기를 할 때 내 모습을 한 번이라도 보았던 분들은 혹은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있는 분들은 이 말뜻이 뭔지 다들 잘 아실 거다. 축구공이 골대를 사이에 두고 이 방향 저 방향으로 굴러다니는 경기 내내 울분과 기쁨과 낙담, 환호 등 인생의 희로애락이 얼마나 극심하게 감정의 기복을 타고 오르락내리락하는지 말이다.
한국 선수들의 첫 경기를 앞두고 BBC 기사를 통해 이 페어 선수가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고, 올해 16세로 대표팀 최연소 선수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도 내 아이들이 태어났을 때 내가 못다 한 축구선수의 꿈을 한국에서든 잉글랜드에서든 이루어 주길 바랐는데 우리 집안 혈통은 선수 유전자보다는 관람 유전자가 우성인 것 같다. 그래도 우리 딸과 비슷한 나이의 페어 선수가 한국팀에서 활약하고 있는 걸 보자니 나도 모르게 흐뭇해졌다.
월드컵 국가대표의 자격 요건은 약간 까다롭게 들릴 수 있는데 기본적으로 할머니 혹은 할아버지 쪽 나라의 대표로 뛸 수 있다. 예를 들어 아일랜드 축구팀의 구성을 보면, 영국 여권 소지자인 선수들이 많은 것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선수의 조부모 중에 한 명이 아일랜드 출신이기 때문이다. 잉글랜드 국가대표가 되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려운 일이기도 해서 일부 선수들은 조부모의 나라, 예를 들면 자메이카나 나이지리아의 국가대표로 뛰는 사례도 종종 있다.
영국이나 프랑스의 대표팀은 다문화적이다. 가계도를 몇백 년 거슬러 추적할 수 있는 선수도 있고, 제2차 세계대전 후 조부모나 부모가 식민지에서 이주해온 이민자 2세대 또는 3세대인 선수도 있고, 심지어 어린 시절에 귀화한 선수도 있다. 한국도 다문화 사회로 접어들었지만 스포츠팀에 있어 다문화의 영향은 아직 그렇게 크지 않다. 일부 K리그 선수들, 아이스하키팀에 한국으로 귀화한 선수들 몇몇이 전부이다.
물론 한국 축구대표팀은 이미 강팀으로 부상했기 때문에 우수한 선수들을 발굴하기 위해 세계를 휘젓고 다닐 필요까지는 없지만 럭비, 스키, 조정 같은 비인기 종목은 국내 선수가 다소 부족한 실정이라 숨은 인재들을 해외에서 발굴하려는 노력이 필요할 수 있다. 내 친구 중에도 한국에서 태어나 호주에서 자란 크리켓 선수가 있는데 한국 크리켓팀에서 뛰어보고 싶지만 실제적으로 협회 차원의 도움을 받기가 어렵다고 했다.
폴 카버 영국 출신·유튜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