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리 에세이스트
폭염에 에어컨이 고장 났다. 무더위에 지친 건 사람뿐이 아니었던지 고장 난 에어컨이 많아서 상담 연결조차 어려웠다. 가까스로 출장 서비스를 예약했지만, 열흘 만에야 수리기사가 방문했다.
“고생 많으셨어요. 생수는 가져가서 드세요.” 기사님은 단숨에 보리차를 마시더니 웃으며 말했다. “물이 달아요. 잘 마셨습니다, 선생님.” 그러곤 운동화 뒤축을 꺾어 신은 채 다음 출장을 떠났다.
연일 이어지는 폭염에 밖을 나서기 무섭다. 더워도 너무 덥고 습해도 너무 습해서 불쾌지수가 높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숨이 턱 막혔다. 살갗에 달라붙는 더위에 오늘은 또 얼마나 힘들려나 찌푸려졌다. 그때, 이웃집 문 앞에 놓인 얼음물과 메모를 발견했다. ‘택배기사님, 고생 많으십니다. 얼음물 편히 가져가세요.’ 퐁당, 더위와 짜증으로 끓어올랐던 마음이 얼음 세 알 넣은 듯 차분해졌다. 금세 녹아 따뜻해졌다.
배려는 얼음 세 알만큼이어도 충분하다. 너무 뜨거우면 다치니까 조심스럽고 세심하게, 그리고 친절하게. 누구에게나 사정이 있어 한여름에 시원한 물이 절실한 사람이 있고, 따뜻한 물이 필요한 사람도 있다. 얼음 세 알만큼의 배려를. 불볕더위가 아무리 뜨겁더라도 마음의 체감온도는 따뜻할 수 있다.
폭염경보 안전 안내 문자로 경보음이 울렸다. 택배기사를 기다리며 송골송골 녹아가는 얼음물을 보며 다짐했다. 마주치는 이들에게 조금만 친절해지자고.
고수리 에세이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