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오늘 이 집 대문 안, 그 얼굴 볼그스레 복사꽃이 아른댔지.
그사람 어디 갔나 알 길이 없고, 복사꽃만 여전히 봄바람에 웃고 있네.
(去年今日此門中, 人面桃花相映紅. 人面不知何處去, 桃花依舊笑春風.)
―‘도성의 남쪽 어느 농장에서(제도성남장·題都城南莊)’ 최호(崔護·772∼846)
복사꽃 흐드러지던 작년 이맘때, 시인은 도성 근교 나들이길에서 한 농가를 만난다. 대문으로 들어가니 그를 맞은 건 아리따운 여인. 마침 햇살을 받아 복사꽃 그림자가 볼그스레 여인의 뺨 위에 일렁인다. 낯빛이 더없이 화사하다. 그 후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른다. 다만 시인이 여인을 맘속에서 아주 지운 건 아닌 듯 1년 후 다시 찾아간다. 하지만 복사꽃은 그대론데 여인은 간데없다. 잠깐 동안의 만남과 오랜 기다림 뒤의 실패한 해후가 결국 어떤 결말로 이어졌는지는 알 길이 없다. 시의 서사가 단순하기에 외려 더 풍성한 상상의 여지가 남는다. 절제된 감정과 담백한 표현이 주는 여운의 미다.
이 여운의 미를 살짝 흐트려 놓은 건 당 말엽 맹계(孟棨)의 ‘본사시(本事詩)’. 여기선 주로 당시에 얽힌 일화, 창작 배경 등을 기술하고 있는데 이 시의 사연을 이렇게 소개한다. 야외를 거닐던 시인이 목이 말라 농가를 찾는다. 한 여인이 물을 내왔고 둘은 한눈에 반했지만 별다른 언약 없이 헤어진다. 이듬해 시인이 다시 찾았지만 여인을 만나지 못했고 대문에다 이 시를 남겼다는 것이다. 이마저도 부족했을까. 후인들은 둘의 못다 이룬 사랑이 못내 안타까웠던지 이 모티프를 희극, 소설에 접목한다. 시를 남긴 시인이 며칠 후 다시 그 집을 찾았는데 집 안에서 곡성이 들렸다. 사연인즉 그간 상사병을 앓던 여자가 죽을 지경이 되었는데 극적인 상봉이 이루어짐으로써 웃음을 되찾았다는 내용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이별의 고통을 겪는 뭇 연인들에게 희망과 위로의 메시지라도 건네고 싶었을 것이다.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