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운 경제부 차장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반도체법 시행을 계기로 기업들의 중국 투자가 제약을 받고 있는 데 대해 최근 만난 고위 경제관료는 이런 속내를 털어놓았다. 그는 “그동안 대외경제에서 대중(對中)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았는데 이제는 정부가 나서지 않아도 기업들이 알아서 중국 리스크를 줄일 것”이라고 했다. 사실 중국 경제에 대한 과도한 의존이 위험하다는 경고는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그런데도 이제 와서야 미국의 중국 견제에 기대 리스크를 해소하려는 건 손 안 대고 코 풀려는 행태 아닌가.
사실 그동안 정부와 산업계는 이른바 ‘중국 특수(特需)’에 취해 그 이면의 위험을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았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달 14일 대한상의 포럼에서 “국내 산업이 지난 10년 동안 중국 특수에 중독돼 구조조정 기간을 놓쳤다”고 지적했다. 중국의 저임금 특수를 누리면서 국내 제조업 비중이 유지되는 등 산업 패러다임의 변화가 늦어졌다는 것이다. 이 총재는 “최근 대중 수출이 줄어드는 것도 단순히 미중 갈등 때문이 아니라 이 같은 구조적 원인이 숨어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국가 간 안보 갈등이 커지는 국면에서 경제적 상호 의존은 도리어 상대국에 취약점이 될 수 있다. 중국의 사드 경제 보복이 대표적이다. 7년째 중국을 최대 교역국으로 두고 있는 독일은 올 6월 국가안보전략을 발표하면서 원자재나 에너지 공급 등에서 대중 의존을 줄이고, 공급처를 다변화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하물며 중국과 영공·영해를 맞대고 있고 73년 전 전쟁까지 치른 한국의 대중 리스크는 지구상의 그 어떤 나라보다 크다. 그럼에도 한국의 높은 대중 의존도는 여전하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중국산 요소 수입 비율은 2021년 71.2%에서 지난해 66.5%로 떨어졌으나 올 상반기 89.3%로 도리어 높아졌다. 2021년 10월 중국이 요소 수출을 막아 차량용 요소수 품귀로 ‘물류 대란’이 벌어졌는데도 중국 수입 의존은 오히려 확대된 것이다. 중국산 요소수의 가격 대비 품질이 우수하다는 게 이유다. 이제 중국은 희토류에 이어 갈륨, 게르마늄 등 여타 희소금속에 대한 수출 통제도 강화하고 있다. 중국의 일방적인 핵심광물 통제에 대응할 수 있도록 관련국과의 네트워크 구축이 시급하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건 눈앞의 이익에만 휘둘리지 않고, 장기적인 차원에서 중국 리스크를 줄이겠다는 국가적 의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