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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韓 과학기술 정책, 큰 그림이 없다”… 뼈아픈 OECD의 일침

입력 | 2023-08-04 00:18:00

동아일보 DB


한국의 과학기술 정책이 범정부 차원의 로드맵 없이 부처 간 예산, 사업 조정 수준에 그치고 있다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적했다. OECD는 최근 한국의 혁신정책을 검토한 보고서에서 “총괄적 혁신정책을 수립하기보다는 예산을 재조정하는 방식으로 새 우선순위와 문제들에 대응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정부가 과학기술 혁신의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한 채 기존 정책의 미시적 조율과 관리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다.

312쪽에 달하는 보고서는 한국이 과학기술과 경제발전을 아우르는 중장기 통합전략이 부족하다는 점을 주된 취약점으로 꼽고 있다. 종합적 청사진이 없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기획재정부 등의 정책적 연계도 부족하다는 것이다. 민간 부분 연구개발(R&D)의 경우 대기업과 제조업에 집중된 불균형 때문에 중소기업과 서비스업 혁신을 뒷받침하지 못하는 점이 문제로 언급됐다.

정부의 연간 R&D 예산은 31조 원, 민간 분야까지 합친 예산 규모는 국내총생산(GDP)의 4.93%로 OECD 회원국 중 두 번째로 높다. 이런 막대한 예산 투자가 기술 혁신과 고부가가치 산업의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OECD의 지적은 뼈아프다. 이런 문제가 그동안 고질적인 병폐로 지목돼 온 연구과제 쪼개기와 예산 나눠 먹기, 건수 채우기, 실적에 급급한 단기 투자 등과 맞물려 예산 효율성을 더 떨어뜨리고 있는 것이다.

인공지능(AI)과 양자컴퓨팅, 생명공학, 우주 항공 등 첨단 미래산업의 기술 개발은 점점 더 집중적인 대규모 투자를 요구하고 있다. 국가 대항전으로 치러지는 글로벌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선 예산 집행에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기술 개발과 경제 발전을 아우르는 전략적 틀 안에서 정부가 방향을 잡아주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정부가 최근 과학기술 분야의 ‘R&D 이권 카르텔’을 타파하겠다며 예산의 전면 재검토에 들어갔지만, 이 또한 정부의 정책 비전과 목표부터 분명히 하는 게 우선이다. 그때그때의 현안 대응을 넘어 장기적 전략 수립에 집중해야 한다. OECD의 지적대로 “핵심 분야에서 리더 아닌 추격자에 머물고 있으며, 새 연구를 시작할 때 위험을 회피하려 하는” 한국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서도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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