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車로 5명 친뒤 백화점서 9명 찔러… 경찰청장 “사실상 테러”

입력 | 2023-08-04 03:00:00

[분당 백화점 흉기 난동]
퇴근길 시민들 “서현역 오지마” 문자… 목격자들 “화장실로 대피해 숨어”
20대~70대 남녀노소 안가리고 범행… 차에 받힌 1명 심정지, 뇌사 가능성
시민들이 범인 지목, 현장서 붙잡혀



3일 오후 경기 성남시 분당구 서현역 AK플라자에서 피의자 최모 씨(22·점선 안)가 선글라스를 쓴 채 흉기를 들고 활보하고 있다. 사진 출처 트위터


“서현역에 가지 마세요. 사람들 칼 맞고 난리 났습니다.”

3일 오후 경기 성남시 분당구 서현역 AK플라자에서 20대 남성이 흉기로 난동을 부리는 사건이 벌어지자 퇴근길 지하철역과 연결된 백화점 내부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온라인상에서도 범행 사진이 급속도로 유포되며 서현역 인근에 가지 말라는 글이 속속 올라왔다. 배달업 종사자 최모 씨(22)가 10분 동안 차량과 흉기로 벌인 무차별 ‘묻지 마’ 난동 사건으로 14명이 부상을 입고 이 중 1명은 심정지 상태다. 차량에 들이받힌 이 환자는 뇌사 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고, 다른 차량 사고 부상자도 위중한 상태다.



● 목격자들 “화장실에 숨어 있었다” 공포 휩싸여

경기남부경찰청 등에 따르면 이날 최 씨는 오후 5시 55분경 다른 사람 명의의 모닝 차량을 몰고 인도로 돌진해 4명을 들이받았다. 차량이 움직이지 않자 최 씨는 흉기를 들고 백화점 안으로 난입해 1, 2층을 뛰어다니며 9명에게 20∼30cm 길이의 칼을 휘둘렀다.

이날 오후 6시 반경 동아일보 취재팀이 찾은 서현역 앞은 테러 현장을 방불케 했다. 건물 내부에서 도망쳐 나온 시민들과 백화점 직원 등 수백 명이 공포에 휩싸여 있었다. 근처를 지나가던 행인들도 “무슨 일이 있느냐”며 몰려들었다. 백화점 직원 조모 씨는 “1층 출입구 쪽 판매대에서 일하다가 사람들이 밖으로 뛰어나가는 걸 보고 같이 대피했다”고 했다.

온라인에서는 최 씨의 범행 현장 사진과 영상이 급속도로 유포됐다. 부상자로 보이는 시민들이 피를 흘린 채 바닥에 쓰러져 있는 모습과 선글라스를 쓴 채 칼을 들고 1, 2층을 활보하는 최 씨의 모습 등이 고스란히 유포된 것. 한 시민은 “난생처음 겪는 공포였다”며 “말로만 듣던 외국의 총기 난사 현장에 있는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최 씨는 모닝 차량을 타고 인도에서 행인을 친 후 AK플라자 내부로 들어가 흉기를 휘두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으로 14명이 다쳤다. 성남=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

범행에 쓰인 차량은 이날 검거된 피의자가 아닌 다른 사람 명의였다. 차량 소유주는 이날 동아일보 기자와의 통화에서 “너무 혼란스럽다. 내 차가 왜 거기에 있느냐. 서현역 사건에 쓰인 차가 내 차가 맞느냐”며 여러 차례 되물었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목격자는 언론 인터뷰에서 “너무 무서워서 화장실로 도망가 문을 잠그고 숨어 있었다”며 “옆 칸에도 다른 시민들이 숨어들어 와 모두 문을 걸어 잠그고 있었다”고 전했다. 다른 목격자는 “근처 매장 공사 현장에 있던 냉동창고로 들어갔다”고 말했다.



● 20대부터 70대까지 닥치는 대로 흉기 휘둘러
최 씨는 이날 10분 동안 차량과 흉기로 난동을 부리면서 성별과 연령대를 가리지 않고 범행을 저질렀다. 20대 남녀와 60대 여성 등 5명을 차량으로 들이받은 뒤 백화점 안에서 20대 여성 3명, 20대 남성 2명, 40대 남성 1명, 50대 여성 1명, 60대 남성 1명, 70대 여성 1명 등 9명에게 무차별적으로 흉기를 휘두른 것. 이 중에서 복부에 칼이 찔린 여성 1명은 분당제생병원으로 이송돼 수술을 받았지만 위중한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나머지 피해자들은 옆구리와 등, 복부 등 부위를 가리지 않고 최 씨가 휘두른 칼에 부상을 입었다.

경찰에 따르면 이날 오후 6시 5분경 최 씨는 분당경찰서 서현지구대 소속 경찰관에게 붙잡혔다. 당시 112상황실에 90여 건의 신고가 빗발쳤는데, 최 씨를 피해 달아나던 시민 2명이 서현지구대로 들어와 “칼을 든 범죄자가 이쪽으로 오고 있다”며 다급히 신고한 것. 시민들이 “바로 저 사람이다”라고 최 씨를 지목하자 박모 경장이 최 씨의 팔을 꺾고 넘어트려 현장에서 붙잡았다. 당시 흉기를 들고 있지 않았지만 다른 시민들이 “저쪽에 범죄자가 뭘 버렸다”고 신고해 화분 뒤편에서 최 씨가 버린 칼을 발견한 것으로 전해졌다.



● “모방 범죄 심리 작용해… 대책 마련 시급”
전문가들은 신림역 사건 이후 커진 ‘모방 범죄 심리’가 작용한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윤정숙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실장은 “최근 살인 예고 글이 잇따라 인터넷에 올라오는 등 모방 범죄 심리가 커졌다는 신호가 여러 차례 나왔었다”며 “정부 측에서 관련 범죄를 강하게 처벌한다고 경고해 모방 심리를 억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신림역, 서현역 등 역에서 묻지 마 범죄가 일어나는 건 사람이 밀집한 장소에서 범행을 일으키려는 심리가 작용한 것”이라며 “다중 밀집 지역에 대한 순찰 등을 강화해 시민들을 안심시키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고 설명했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이날 전국 시도경찰청장 긴급 화상회의를 소집해 “사실상 테러 행위”라며 모방 살인 예고 글 작성에 대해서도 “피의자를 신속히 특정하여 끝까지 추적해 검거하겠다”고 밝혔다.



성남=이경진 기자 lkj@donga.com
성남=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
최원영 기자 o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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