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원 TOP 100 차트인, TV 화제성 순위…. 매일 같이 쏟아지는 기사 제목입니다. 시선에서 자유로울 것 같은 예술계도 성공의 기준은 꽤 명확한 편입니다. 그럼 당장 순위권에 없는 이들은 어떨까요? ‘차트 밖 K문화’는 알려졌지만 알려지지 않은 이들의 이야기를 들려드리는 연재물입니다. 유치할지라도 대놓고 진지하게, 이 시대 예술가들의 철학을 소개합니다.
하현상은 작사 작곡 편곡이 가능한 싱어송라이터로, 5년간 경력을 쌓아왔다. 웨이크원 제공
하현상(25)은 5년 차 싱어송라이터다. 올해는 그에게 각별하다. 데뷔 후 첫 정규앨범을 내놓았다. 처음으로 단독 콘서트를 열기도 한다.
“긴장을 잘 안 하는 성격인데, 이번에는 긴장이 되네요.”
서울을 시작으로 5, 6일 열리는 그의 단독 콘서트 투어를 두고 한 말이었다. 콘서트 이름은 ‘시간과 흔적’. 정규 앨범명과 같다. “음악생활의 한 챕터가 끝난 것 같은 느낌”이라는 감회에 걸맞은 이름이다.
5년간의 작업량은 그의 성실함을 증명한다. 그간 발매한 곡만 58개다. 하현상은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며 “제가 세상에 내보낸 곡이 꽤 많더라고요. 쉬지 않고 음악을 만들었다는 점은 칭찬해주고 싶어요. 나머지 부분은 아직 부족한 게 많지만”하며 웃었다.
17살 때 데미안 라이스의 ‘The Blower‘s Daughter’를 처음 들은 하현상은 기타를 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웨이크원 제공
음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건 초등학교 시절이었다. 친한 형이 호텔 로비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나서부터였다. 피아노 연주자를 꿈꿨던 아이는 점점 노래가, 기타가, 작곡이 하고 싶어졌다.
창작자로서의 삶도 놓지 않았다. 하현상은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영감을 마냥 기다리는 편은 아니다. 차라리 작업실에 가 앉는다고 했다. 언제나 “좋은 글을 쓰는 방법은 책상에 앉아서 공책을 펴고 연필을 쥐는 것”이라는 소설가 마크 트웨인(1835~1910)의 말을 떠올리면서.
“이 길이 내 길이구나, 그런 생각은 딱히 한 적이 없어요. 계속하다 보니까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아요.”
하현상의 정규 앨범 ‘시간과 흔적’. 웨이크원 제공
그렇게 5년, 쌓아온 그의 고민이 담긴 것이 이번 앨범 ‘시간과 흔적’이다. 앨범명에서 알 수 있듯 그의 시선은 과거로 향한다. 11곡 중 가장 마지막에 완성된 동명의 타이틀곡은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게 영향을 미쳤다. 그는 앨범 제작기에서 “장례를 치르면서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는 뭔가를 지나왔구나’하는 느낌이 확 들었다. 그때 이 곡의 주제를 정했다”고 했다.
“작년 하반기, 한창 작업하던 중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그때 ‘왜 더 자주 찾아뵙지 못했나, 나는 대체 뭐하고 살았지?’ 하는 생각이 많이 들더라고요. 생전 가깝게 지내지 못해서 더 그랬어요.”
“어느 새벽달이 지나가네/난 오늘도/전하지 못한 말들이 있나/파도에 소리쳐 봐도/들리지 않으니/그렇게 억지라도/웃어 보이는 건/내일이 있어서야” (곡 ‘등대’)
그의 노래는 희망찬 미래를 약속하진 않는다. 다만 괜찮아질 앞날을 꿈꾼다. 함부로 예단하지 않기에 더 단단한 지지처럼 느껴지는 이유일 테다. 실제로 하현상이 노래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그럼에도 살아가야 한다”는 것. 이 말은 곧 “어떻게든 살다 보면 괜찮아질 날이 온다”는 하현상 만의 위로법이다.
“모든 건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라고 생각해요. 힘든 일이 있으면, 그만한 좋은 일이 있는 거라고, 그렇게 믿고 싶어요.”
실제 그는 한 팬으로부터 “인생을 포기하고 싶은데 곡 ‘등대’를 듣고 살아 본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고 했다. 하현상은 “예술가로 사는 게 힘들 때도 있는데, 자부심을 느끼는 순간이 있다면 이럴 때”라고 했다.
하현상은 “곡을 만들 때 외부의 의견을 듣기는 하되 최대한 내 직감을 따라 간다”며 “다른 사람 말을 듣고 실패하는 것보다는 내 뜻대로 하다가 실패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웨이크원 제공
과거 이야기로 시작해 조금 더 나아질 미래로 끝이 나는 줄거리. ‘5년간 변치 않는 본인의 음악적 뿌리와 변화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기자에게 되물었다.
“맨 처음에 써놓았던 글이 있는데, 별로인 것 같아 다른 글들을 막 써보다가 다시 처음으로 돌아오신 적 있지 않으세요? 여러 다른 시도들도 다 그 나름의 의미와 뜻이 있어요. 그렇지만 결국엔 처음으로 돌아오는 것. 노인이 아이처럼 변하듯 인생 모든 게 그런 것 같아요.”
하현상이 쫓는 처음은 “음악을 하며 느꼈던 순수한 즐거움”이다. 그리고 그 첫 순간은 기타를 처음 손에 쥐었던 17살로 돌아간다. 하현상은 17살의 마음으로, 계속 노래할 것을 다짐한다.
“늘 그런 생각을 해요. ‘이번 생에는 노래를 만들고, 하기로 마음을 먹었으니 주어진 삶 동안은 진짜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이요. 저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으면 돼요. 그러면 성공이라 믿어요.”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