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동남부의 힐링 명소
8월의 제주에서는 무더위를 피하면서 지친 심신을 달래주는 휴양지를 찾아가 보자. 한라산을 기준으로 동남쪽 권역에는 숨은 듯이 자리잡고 있는 힐링 명소들이 적잖다. 특히 천연의 기(氣) 스폿은 허해진 기력(氣力) 을 회복하는 데 도움을 주는 보양 명당이기도 하다.
● 천년의 향기 비자나무 숲
한라산이 빚어낸 제주의 숲에는 치유의 힘이 배어 있다. 한라산은 혈액 순환을 촉진하고 산소 및 수분 섭취와 배설을 원활하게 해주는 ‘삼초(三焦)의 기’가 강한 산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당연히 한라산의 자손뻘인 제주의 오름과 숲 또한 건강한 기운을 갈무리하고 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제주도 비자림(제주시 구좌읍 평대리)은 500∼800년생 비자나무 2800여 그루가 피톤치드 향기 그윽한 생기(生氣)를 뿜어내고 있다.
매표소를 거쳐 하늘을 가릴 듯 웅장한 숲을 이루고 있는 비자나무 숲길로 들어서니 한여름 무더위까지 비켜갈 정도로 그늘져 있다. 이곳 안내 간판에는 “피로를 해소하고 인체 리듬을 되찾고자 하는 사람들이 녹음이 짙고 울창한 비자나무 숲을 많이 찾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천천히 숲에서 발산하는 향과 기를 음미하며 거니는 동안 특별한 스토리를 지닌 비자나무를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다. 먼저 매표소에서 가까운 곳에 ‘벼락 맞은 비자나무’가 있다. 약 100년 전 벼락을 맞은 후 지금처럼 암나무와 수나무가 붙어 있는 상태가 됐다고 한다. 당시 오른쪽 수나무 일부가 불에 탔으나 다행히 암나무로는 불이 번지지 않아 두 나무가 공생하면서 수명을 이어오고 있다는 거다. 이곳 마을 사람들은 ‘금실 좋은 부부’라고 하면서 신령스러운 나무로 대접하고 있다.
숲 안쪽으로 더 진입하면 ‘새천년 비자나무’와 ‘비자나무 사랑나무’라는 간판을 단 비자나무가 기다리고 있다. ‘새천년 비자나무’는 이곳 비자림에서 가장 굵고 웅장한 나무다. 높이 15m, 둘레가 6m에 달하는 신목(神木)이다. 고려 명종 때인 1189년에 심은 것으로 전해지는 이 나무는 새 밀레니엄이 시작된 2000년 1월 1일 당시 21세기 제주의 무사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는 의미로 ‘새천년 비자나무’로 지정됐다. 이곳 비자림이 ‘천년의 숲’이란 이름을 얻게 된 배경이다.
비자림을 지키는 터줏대감답게 한눈에 보아도 명당 터에 자리 잡은 게 인상적이다. 무더위를 식힐 겸 나무 주위에 놓인 벤치에 앉아 잠시 쉬거나 가벼운 명상에 잠기면 좋은 에너지가 몸속으로 스며듦을 느낄 수 있다.
암수 두 나무가 맞닿아 한 나무로 된 연리목 비자나무.
비자나무 숲길을 탐방한 뒤 조선시대 비자림을 지키던 산감(山監)이 마시던 물로 목을 축이면 비자나무 숲의 정기를 오롯이 ‘섭취’한 셈이 된다.
● 우도의 멍때리기 성지
서귀포시 성산항에서 우도행 배를 탄다. 우도에 다가갈수록 양파 모양의 돔들이 인상적인 건축물이 눈길을 확 끈다. 친환경 건축물로 유명한 ‘훈데르트바서 파크’다. 20세기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3대 화가 중 하나이자 친환경 건축가로 유명한 훈데르트바서의 작품과 사상을 테마로 삼은 예술 공원이다. 이곳은 우도의 자연미를 그대로 살린 아름다운 채색 건축물로 유명하거니와, 편안하게 쉬면서 기를 충전할 수 있는 명당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곳이 ‘훈데르트 윈즈’라는 이름의 카페 공간이다. 성산 일출봉의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는 명소이자, 카페 스스로 ‘멍때리안을 위한 성지(聖地)’임을 표방할 정도로 몸과 마음이 이완되는 곳이다.
우도 지형에서 소의 머리에 해당하는 우도봉 아래로 알록달록한 외관이 인상적인 훈데르트바서 파크가 보인다.
우도 해변에서 갯바위 탐험을 하고 있는 가족 여행객.
● 천연 암반수와 바다가 만나는 쇠소깍
효돈천과 바닷물이 만나는 쇠소깍에서 뗏목이나 카약을 타고 물놀이를 즐기는 관광객들.
이곳 역시 우도처럼 소와 연관이 깊다. 효돈마을이 소가 누워 있는 형태라 해서 ‘쇠둔’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쇠소깍이라는 이름도 여기에서 나왔다. 효돈마을을 가리키는 ‘쇠’, 웅덩이를 의미하는 ‘소’, 끝을 의미하는 ‘깍’을 합친 제주도 말이라고 한다.
이곳은 용암이 흘러내리면서 형성된 계곡과 바다가 만나는 풍경이 아름다워 제주 올레길 탐방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비경뿐만 아니다. 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은 원래 상업이 발달하기 마련인데, 풍수적으로는 풍요와 부의 기운이 강한 곳으로 평가한다. 특히 쇠소깍에서는 민물과 바닷물의 기운을 몸으로 직접 느껴볼 수 있다. 카약 혹은 단체용 뗏목을 타고 쇠소깍 안쪽으로 깊숙하게 들어가면서 제주의 수(水) 기운을 흠뻑 쐴 수 있다.
이 외에 쇠소깍 인근의 소정방폭포(서귀포시 토평동)와 소천지(서귀포시 보목동)도 기 스폿에 해당한다. 소정방폭포는 정방폭포와 닮아 붙여진 이름인데, 높이는 7m 정도로 낮지만 떨어지는 물줄기 소리만큼은 크고 웅장하다. 백중날(음력 7월 15일)에 소정방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을 맞으면 일 년 내내 건강하다는 속설이 있어 물맞이 장소로 사랑받는 곳이다.
백두산 천지를 축소한 모습인 소천지(서귀포시 보목동). 제주관광공사 제공
글·사진=안영배 기자·철학박사 oj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