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톨이 테러’ 공포] 영재 출신인 서현역 흉기난동범 3년 전 조현병 前단계 판정받아… 가족 “특목고 진학 실패 뒤 은둔” 정부, ‘가석방 없는 종신형’ 추진… 중증 정신질환 ‘사법입원제’ 검토
경찰 조사 받으러 이동하는 서현역 흉기 난동범 경기 성남시 분당구의 한 백화점 인근 도로에서 차량으로 행인을 들이받은 뒤 백화점으로 들어가 ‘묻지 마 흉기 난동’을 부린 범인 최모 씨(오른쪽 모자 쓴 사람)가 4일 오후 성남수정경찰서 유치장에서 나와 조사실로 이동하고 있다. 최 씨는 ‘조현성 인격장애’(분열성 성격장애)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성남=전영한 기자 scoopjyp@donga.com
도심 번화가인 서울 관악구 신림역과 경기 성남시 분당구 서현역에서 잇달아 ‘묻지 마 흉기 난동’ 사건이 벌어진 것을 두고 전문가들은 “사회 내 은둔해 있다 계기만 생기면 갑자기 테러를 일으키는 ‘외톨이 테러’가 일상화 단계에 들어섰다”고 경고했다. 미국 등 외국에서나 벌어졌던 총기 난사 사건 같은 테러 범죄가 우리의 일상 생활까지 파고든 것이다. 경찰이 4일 “흉기 난동과 모방 범죄에 대해 총기 사용도 주저하지 않는 특별치안활동을 벌이겠다”고 선포했지만 ‘외톨이 테러’에 대한 시민들의 공포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서현역에서 차량과 흉기로 무차별 습격 난동을 벌인 최모 씨(22)는 4일 경찰 조사에서 “사람을 죽여서 경찰의 관심을 끌고 싶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조사 결과 최 씨는 전과는 없었지만 2020년 조현병 직전 단계인 ‘조현성 인격장애(분열성 성격장애)’ 판정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다만 진단 전까지 약을 복용했던 최 씨는 이후엔 치료를 받지 않았다. 최 씨는 “나를 스토킹하는 집단 구성원 다수가 서현역에 있을 것 같았다”며 서현역을 범행 장소로 선택한 이유를 밝혔다.
특히 최 씨는 대기업에 다니는 아버지 등 중산층 집안에서 자란 영재 출신인 것으로 확인됐다. 최 씨의 가족은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최 씨가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올림피아드에 나가 수상하는 등 공부에 소질이 있었지만 특목고 진학에 실패한 뒤 삐뚤어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특히 이번 사건이 지난달 21일 서울 관악구 신림역에서 발생한 무차별 흉기 난동 사건 이후 불과 13일 만에 발생한 것을 두고 이번 사건이 또 다른 무차별 범죄를 자극하는 ‘방아쇠’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박사는 “본인이 현실화하지 못했던 범죄들이 실제로 행해지는 것을 목격하는 것이 일부 ‘위험군’들에게 그동안 눌러왔던 사회적 분노를 일시에 폭발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전했다.
한편 경찰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흉기 소지 의심자 또는 이상행동자에 대해서는 법적 절차에 따라 선별적 검문검색을 실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흉기 소지 범죄자에 한해서는 급박한 상황에서 경고사격 없이 실탄 사격도 허용할 방침이다. 또 이번 사건 이후 무차별적으로 올라오는 ‘살인 예고 글’ 및 가짜뉴스에 대해 경찰은 “예외 없이 강력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법무부는 가석방을 허용하지 않는 무기형을 형법에 신설하고, 중증 정신질환자의 입원 여부를 사법기관이 결정하도록 하는 ‘사법입원제’ 도입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서울-부산 등서 모방범죄 예고 27건… “위험군 외톨이 파악 시급”
‘외톨이 테러’ 줄예고, 불안 확산
서울 강남 학원에 “학생 몰살” 글
고속터미널선 흉기소지 남성 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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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 오리역에 경찰특공대 순찰 4일 오후 ‘살인 예고’ 장소로 온라인에서 거론된 경기 성남시 분당구 오리역에서 무장한 경찰특공대가 순찰을 돌고 있다. 잇따른 모방성 협박 범죄에 경찰 기동대원들도 역 곳곳에서 경비를 서고 있다. 성남=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4일 오전 2시 인터넷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에 올라온 ‘살인 예고 글’의 일부다. 이날 서울 강서구에서는 “오늘 16시 왕십리역 다 죽여버린다”란 제목의 살인 예고 글을 올린 20대 남성 민모 씨가 검거됐다. 서울 강남구 한티역에서의 살인을 예고하는 글을 쓴 작성자는 자수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3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서현역 AK플라자 백화점 인근에서 무차별 흉기 난동 사건을 벌여 14명에게 중상을 입힌 최모 씨(22)처럼 불특정 다수를 노린 ‘외톨이 테러’를 예고하는 글이 확산되고 있다. 서울 송파구 잠실역, 경기 성남시 오리역, 부산 서면 등 전국 각지에서 살인을 예고하는 글이 올라와 경찰이 대대적으로 추적에 나섰다. 4일 오후 8시 기준 경찰이 추적 중인 글은 최소 27건이며 이 중 5건이 검거됐다.
● “같이 죽어 보자” 글에 학원가 초비상
‘묻지 마 흉기 난동이 발생했다’는 내용의 가짜 뉴스도 빗발쳤다. 대구의 한 PC방에서 칼부림 사건이 발생해 범인이 도주 중이라는 글이 확산되자 대구경찰청은 4일 “사실이 아니다”라며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이날 오전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경기 포천시 종합터미널에서 흉기 난동과 방화 사건이 발생했다”는 글도 빠르게 확산됐으나 역시 가짜 뉴스로 밝혀졌다.
● “정신 병력 치료 중단 없도록 전수 조사해야”
서초 고속터미널 흉기소지 20대 체포 4일 오전 서울 서초구 반포동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서 흉기를 소지한 채 건물 안을 돌아다니던 20대 남성(가운데)을 경찰이 긴급 체포하고 있다. 경찰은 현장에서 흉기 2개와 장난감 총 1개 등을 압수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캡처
경찰도 강경 대응하겠다는 방침이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이날 오후 2시 대국민 담화에서 “지금 이 순간부터 흉악 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특별치안활동을 선포한다”며 “흉기 소지 의심자, 이상 행동자에 대해 선별적 검문검색을 하고 필요한 경우 총기 등 물리력을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외톨이 테러’가 또 다른 모방 범죄를 불러일으키는 방아쇠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배상훈 우석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심리적으로 불안한 이들이 타인의 범죄를 접한 후 억눌러온 자신의 분노를 표출하기 위해 ‘탈출구’로서 그대로 범죄를 모방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특히 정신 병력이 확인된 사람의 경우 전수조사를 통해 치료가 시급한 이들을 파악해 치료 중단 위기를 맞이하지 않도록 국가가 관리해야 한다”고 전했다.
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
성남=최원영 기자 o0@donga.com
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
최미송 기자 cm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