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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칼럼/김기용]中, 안중근-윤동주 유적지 폐쇄 부끄럼 없나

입력 | 2023-08-06 23:57:00

‘항일 운동’ 역사마저 정치적 관계 따라 악용
한국 내 반정부 여론 조성하려는 노림수 해석도



김기용 베이징 특파원


중국공산당은 선전선동에 강하다. 특정 의제에 대한 여론을 조성하는 행위에도 능수능란하다. 최근 중국 내 한국 독립투사 관련 유적지를 연이어 폐쇄한 중국의 행보가 우연이 아닐 수 있는 이유다.

당국은 북동부 랴오닝성 다롄에 있는 뤼순(旅順) 감옥 박물관 내 ‘안중근 전시실’을 폐쇄했다. 인근 지린성 옌볜조선족자치주 룽징(龍井)에 있는 ‘윤동주 생가’도 관람을 금지했다. ‘안중근 전시실’은 올 4월, ‘윤동주 생가’는 지난달 폐쇄된 것으로 보인다. 공교롭게도 모두 ‘내부 수리’가 이유다.

일제강점기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사살한 안중근 의사. 또 ‘서시’ ‘별 헤는 밤’ 등 수많은 명시를 남긴 윤동주 시인. ‘총’과 ‘펜’으로 한민족의 망국(亡國) 아픔을 달랜 두 사람은 한국인에게 특별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다롄을 찾는 한국 관광객에겐 ‘안중근 전시실’이 필수 관람 코스다. 전시실 내 안 의사의 흉상 아래는 한국인들이 두고 간 국화꽃이 늘 수북하다. 그가 뤼순 감옥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지 113년이 지났지만 그의 정신을 추모하고 계승하려는 움직임이 여전하다. 영화, 뮤지컬, 소설 등 안 의사를 소재로 한 다양한 콘텐츠가 지금도 끊이지 않는 이유다.

‘윤동주 생가’ 역시 인근 백두산을 관광하는 한국인이 꼭 찾는 곳이다. 그의 작품 대부분이 시비(詩碑)로 만들어져 있다. 특히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이라는 문구가 담긴 ‘서시(序詩)’ 시비 앞에서는 모든 한국인이 뭉클함을 느낀다. 그러나 중국인은 거의 찾지 않는다. 대부분의 중국인은 윤 시인을 아예 모른다.

중국은 왜 ‘안중근 전시실’과 ‘윤동주 생가’를 폐쇄했을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한중 갈등이 커지면서 중국 지방정부가 중앙의 눈치를 보고 과도하게 움직인 결과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4월 마오닝(毛寧)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사실상 욕설에 가까운 ‘불용치훼(不容置喙·말참견을 허용하지 않겠다)’ 표현을 사용해 외교 결례 비판을 받았다. 두 달 뒤 싱하이밍(邢海明) 주한 중국대사는 “중국의 패배에 베팅하지 말라”는 협박성 발언까지 했다. 중앙정부의 이런 기조에 부응하기 위해 지방정부 또한 한국 관련 유적지를 홀대하고 있다는 의미다. 특히 경제적으로 낙후한 동북 3성(랴오닝성, 지린성, 헤이룽장성)은 더더욱 중앙정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처지다.

이번 사태를 ‘한한령(限韓令·한류 제한령)’과 비슷한 맥락에서 보는 시각도 있다. 지금도 중국 중앙정부는 “한한령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즉, 한국 유적지 홀대 또한 지방정부와 관련 단체가 중앙정부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알아서 눈치껏 움직이고 있다는 의미다. 중앙정부는 ‘모른 척’만 하면 된다.

‘안중근 전시실’ 및 ‘윤동주 생가’ 폐쇄 관련 기사 댓글에는 윤석열 정부를 비판하는 내용이 적지 않다. 현 정부의 반중 정책이 이번 사태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이 또한 중국이 한국 내 반정부 여론을 교묘히 만들어 낸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지울 수 없는 대목이다. 중국은 늘 그렇듯 모르쇠로 일관할 것이다.

한중은 항일 운동의 역사를 공유할 수 있다. 일제 침략이라는 아픔을 함께 겪었기 때문이다. 안중근과 윤동주의 항일 정신도 함께 계승할 수 있다. “내부 수리 때문”이라는 중국의 변명이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만을 바랄 뿐이다.




김기용 베이징 특파원 k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