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위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과 관련해 2021년 여론조사를 실시했는데, 찬성률이 기관별로 큰 차이를 보였다.
한규섭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여론조사 개선의 필요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된다. 허위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관련 여론조사는 여론조사 난맥상을 잘 보여준다. 2021년 4월부터 10월까지 약 7개월 사이 발표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관련 5개 여론조사에서 ‘찬성’ 비율이 43%부터 80%까지 무려 40%포인트 가까이 차이가 났다.
이런 편차를 납득할 만한 이유로 설명할 수 있을까. 우선 시간이 흐름에 따라 징벌적 손해배상제에 대한 여론이 변했을 수 있다. 그러나 ‘여론 변화’ 가설은 조사 간 차이를 설명하기 어려워 보인다. 리서치뷰가 2021년 4월 27∼30일 실시한 조사에서는 찬성 80%, 반대 13%였다. 하지만 약 4개월 뒤인 8월 30일∼9월 1일에 실시된 NBS의 설문조사에서 찬성은 43%로 떨어졌고, 10월 15∼19일 언론진흥재단이 실시한 조사에서는 오히려 76%가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에 찬성했다.
조사 방식의 차이였을까. 5개 조사 중 NBS만이 전화 면접 조사였는데 실제 국제기준 응답률(접촉률×응답률)이 8.0% 정도로 가장 높았던 이 조사에서는 43%만이 찬성이었다. 반면 실제 응답률이 1.5%와 3.5%였던 리얼미터와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의 ARS 조사에서는 찬성이 각각 54.1%와 56.5%로 NBS보다 10%포인트 이상 높았다.
리서치뷰의 설문지에서 의심되는 원인을 발견했다. 리서치뷰는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에 대해 묻는 설문 바로 직전 “한국은 3년 연속 아시아에서 ‘언론 자유’는 가장 높은 반면, 세계 주요 40개 국가 중 ‘언론 신뢰도’는 5년째 최하위를 기록했다”며 “언론 개혁 필요성”을 묻는 설문을 삽입했다. 이것은 설문조사의 교과서적 문제인 ‘순서 효과(Order Effect)’를 유발하는 전형적인 예다. 즉 “언론 자유는 과도하고 언론 신뢰는 최하위”라는 프레임이 응답자 머릿속에서 활성화하도록 유도하여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에 ‘찬성’ 의견이 나올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76% ‘찬성’ 의견이 나왔던 언론진흥재단의 조사는 어떨까. 설문지에 ‘언론의 허위, 조작 보도로 인해 재산상 손해 또는 인격권 침해를 당한 경우’라는 긴 수식어구를 붙여 ‘언론의 잘못이 명확한 경우’라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징벌적 손해배상제’에 대한 거부감이 줄었을 수 있다. 이런 수식어는 ‘표현 효과(Phrasing Effect)’를 유발할 수 있어 웬만하면 피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다른 조사도 ‘언론의 고의나 중과실에 의한 허위·조작 보도’(KSOI), ‘허위-조작 보도’(리얼미터), ‘가짜뉴스’(NBS) 등의 비중립적 수식어를 썼기 때문에 수식어 차이만으로는 25%포인트 이상에 달하는 차이를 유발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언론진흥재단의 조사는 온라인 조사였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국내 온라인 패널 등에서 추출된 표본은 진보 편향성이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령 같은 60, 70대라도 온라인 패널에 속해 정기적으로 설문조사에 참여하는 응답자는 동 연령대 유권자에 비해 진보적 성향을 보인다. 이런 이유로 중앙여론조사심의위원회(여심위) 등록이 의무화된 언론 보도용 선거여론조사 중 온라인 조사는 거의 없다. 정당 지지율 등에서 다른 조사들과 확연한 차이가 드러날 수 있어 여심위 등록이 필요한 조사를 온라인으로 수행해 주겠다는 업체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언론진흥재단 조사는 지지 정당 등을 묻지 않아 여심위 등록을 하지 않아도 됐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대해 공공기관인 언론진흥재단에서 왜 굳이 온라인으로 조사를 실시하여 다른 곳과 판이한 결과를 발표했을까.
사실 NBS 조사도 문재인 정부 말기에 ‘징벌제 손해배상제’ 앞에 ‘여당이 내놓은’이란 불필요한 수식어를 삽입하여 당시 민주당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징벌적 손해배상제에 대한 응답에 영향을 미치도록 유도한 측면이 있다. 따라서 실제 징벌적 손해배상제 찬성 여론은 NBS보다는 높을 것이라 추측된다.
한규섭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