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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폭우 대비 급한데… 서울 ‘빗물 고속道’ 착공, 내년 상반기로 미뤄

입력 | 2023-08-08 03:00:00

지하 50m에 터널 만들어 빗물 배수
서울시, 당초 올해말 착공 계획
사업비 늘면서 적정성 검토 추가돼
완공도 2028년 상반기로 늦춰질 듯




올해 말로 예정됐던 서울시의 대심도 빗물배수시설(대심도 터널) 착공 일정이 내년 상반기(1∼6월)로 연기된 것으로 확인됐다. 당초 9000억 원이었던 총사업비가 1조4000억 원대로 늘면서 재정 당국이 설계 적정성 검사 등을 검토하면서다. 가장 효과적인 집중호우 대비책으로 평가받는 대심도 터널 착공 연기로 서울의 재난 대응 속도가 늦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 기재부, ‘설계 적정성 검토’ 결정

7일 정부, 서울시 등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획재정부는 한국개발연구원(KDI)에 서울시가 제출한 대심도 터널 1단계 사업계획에 대한 설계 적정성 검토를 의뢰했다. 기본계획 수립 과정에서 총사업비가 변경되면서 국비 투입 사업인 대심도 터널에 대한 적정성 검토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대심도 터널은 지하 40∼50m 아래 큰 터널을 만들어 폭우 시 빗물을 보관하다 하천으로 방류하는 시설이다. 일명 ‘빗물 고속도로’라고도 불린다. 공사비와 기간이 많이 들지만 대규모 물을 저장할 수 있어 집중호우 피해를 막는 데 가장 효과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서울시는 지난해 8월 115년 만의 기록적인 폭우를 겪은 후 2032년까지 서울 시내 6곳에 대심도 터널을 짓겠다고 밝혔다. 특히 서울 광화문, 강남역, 도림천 일대에 9000억 원을 투자해 2027년까지 1단계 대심도 터널 사업을 완공하기로 했다. 지난해 환경부의 국비 25% 지원도 결정돼 올해 말 착공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문제는 당초 9000억 원이었던 총사업비가 약 1조4150억 원으로 57%가량 뛰었다는 점이다. 도림천은 3000억 원에서 5010억 원으로, 강남역은 3500억 원에서 5640억 원으로 뛰었다. 2500억 원이었던 광화문 공사비도 3500억 원으로 올랐다. 서울시 관계자는 “타당성 조사 및 기본계획 용역 과정에서 대심도 터널과 가장 유사한 사업인 GTX-A 공사비를 적용하게 돼 비용 차이가 생겼다”고 설명했다. 대심도 터널에 중장비 진입이 가능하게 하기 위해 수직구 크기를 넓히고, 하수관 지름 등을 확대한 영향도 있었다.

서울시는 대심도 터널이 재해 예방을 위한 사업인 만큼 검토 절차를 생략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기재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기재부 관계자는 “시급성이 인정돼 과거 예비 타당성 조사 등도 면제된 만큼 증액 과정의 적정성을 검토하는 최소한의 절차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설계 적정성 검토에는 최소 3개월가량이 걸릴 전망이다. 이에 따라 착공이 내년 상반기로 연기되고 완공 시기도 당초 2027년 말에서 2028년 상반기(1∼6월)로 밀릴 것으로 보인다. 장석환 대진대 건설시스템공학과 교수는 “대규모 토목 공사는 공기가 밀리기 쉬운 만큼 최대한 착공을 서둘러야 1년이라도 빨리 사용할 수 있게 된다”고 지적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관제 시스템과 펌프가 완공되기 전에도 터널 일부에 빗물을 담아두는 것은 가능하다”며 “2027년 여름이라도 집중호우가 오면 시설을 활용할 수 있게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 박원순 전 시장 때 7곳 중 6곳 백지화

일각에선 대심도 터널 건설이 지연된 것은 박원순 전 시장 시절 소극적으로 대응한 탓이라는 지적도 있다. 2011년 오세훈 시장 시절 상습 침수지역 7곳에 대심도 터널 설치 계획이 세워졌지만, 박 전 시장이 양천구 신월동을 제외한 6곳의 계획을 ‘대규모 토건 사업’이라는 이유로 백지화한 바 있다. 서울시 고태규 전 하천관리과장은 “대심도가 완공된 신월동은 최근 수해가 거의 없다”며 “당시 계획대로 대심도 터널이 설치됐다면 현재의 극한호우 피해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개발 공간이 부족한 서울 특성상 공사를 서둘러야 한다는 전문가 지적도 나온다. 조원철 연세대 토목환경공학과 명예교수는 “지표면 개발이 더 이상 어려운 서울은 사실상 대심도 터널 말고는 대안이 없는 실정”이라며 “최대한 공사를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