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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죗값을 치를 수 있게 도와주세요. 간절히 청원합니다.”
지난해 10월 4일 아버지의 가정폭력 살인으로 어머니를 잃은 아들은 사건 발생 8일 뒤 국회 국민동의청원 사이트에 “아빠가 심신미약을 주장하며 형량을 줄이려고 노력 중”이라며 “접근금지 (위반)과 심신미약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달라”고 청원을 냈다. 청원을 올린지 3주 만에 국민 5만 명이 동의해 지난해 11월 5일 국회에 청원이 제출됐다. 하지만 8일 현재 276일이 지났지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상정되지 않았다. 법사위 관계자는 “여야 간에 해당 청원을 처리하자는 의견이 모이지 않았다”고 했다.
8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1대 국회 들어 접수된 청원 145개 중 83%인 120개가 계류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105개는 국회법상 국회의장에게 청원 접수뒤 심사 결과를 보고하도록 정한 90일도 넘긴 상태다. 입법 기관인 국회가 5만 명의 동의를 받거나 의원을 통해 접수된 청원을 심사하고 입법을 통해 문제 해결책을 모색하는 역할에 소홀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현재 처리 속도라면 청원 대부분이 폐기될 전망이다. 지난달 서울 서초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1학년 담임교사가 극단적 선택을 한 뒤 교사 권리 보호, 확대와 관련한 청원 3개가 국민 5만 명 동의로 접수됐지만 논의조차 시작되지 않았다. 앞서 20대 국회에서 접수된 청원 207개 중 166개(80%)도 임기 만료로 폐기된 전례도 있다.
국회가 청원 처리에 손을 놓은 이유는 상임위 의결만으로 심사 기간을 얼마든지 연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개선하고자 더불어민주당 진성준 의원 등이 청원 심사 무기한 연장을 폐지하는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이 역시 계류 중이다. 국회 관계자는 “의원들이 입법 실적 채우기 목적으로 무분별하게 법안을 발의하면서 이들 법안을 심사하느라 정작 국민의 간절한 호소를 담은 청원 심사가 지연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조권형 기자 buzz@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