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은 전통적으로 남성의 전유물이었다. 그리스에 소크라테스는 있었어도 그에 상응하는 여성 철학자는 없었다. 조선에 퇴계는 있었어도 그에 상응하는 여성 철학자는 없었다. 그러고 보면 임윤지당이라는 18세기 조선 여성은 무척 예외적인 존재다. 그는 남성이 중심인 시대에 ‘내가 비록 부녀자이기는 하지만 천부적으로 부여받은 성품은 애당초 남녀 간에 다름이 없다’고 생각하고 성리학적 경전을 섭렵한 여성 철학자였다.
그의 삶은 불행했다. 그는 맹자가 말한 ‘네 부류의 불쌍한 사람’ 즉, 늙은 홀아비, 늙은 과부, 고아, 자식 없는 노인 중에서 자신이 “세 가지를 골고루 갖추고 있다”며 복도 지지리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아버지를 여덟 살에 잃었고 결혼한 지 8년 만에 남편을 잃고 청상과부가 되었다. 자식이 있었으나 어려서 죽었다. 마흔이 넘어 시동생의 큰아들을 양자로 들였지만 스물여덟 살의 나이로 죽었다. 그는 그 아들을 잃은 충격으로 눈이 나빠져 거의 실명에 이를 지경이 되었다.
그의 말대로 그의 삶은 “강인한 심장을 가진 대장부라고 하더라도 참고 견디지 못할” 시련의 연속이었다. 특히 말년이 그러했다. 그러나 그는 버텼다. 가혹한 운명이 어길 수 없는 것이라면 자신을 수양하여 자연의 순리를 따르겠다며 버텼다. 그는 낮에는 집안일을 돌보고 밤에는 틈을 내어 아무도 모르게 경전을 읽고 글을 썼다. 여자가 학문을 하면 눈을 흘기는 시대였기에 그랬다. 그가 죽은 후 남동생과 시동생이 간행한 ‘윤지당유고’만 달랑 남아 그의 깊은 사유를 조용히 전한다. 최근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리건 피날루나라는 학자가 윤지당유고를 ‘경시된 세계 여성 사상가들의 10대 저서’ 중 하나로 소개하며 ‘천부적으로 부여받은 성품은 애당초 남녀 간에 다름이 없다’는 그의 말을 인용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는 남자로 태어났으면 위대한 철학자가 되었을 사람이었다. 시대의 한계이자 비애였다. 동서양이 마찬가지였다.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석좌교수